없던 개념 급조한 정부 “고령층 백신 다 맞으면 ‘1단계’ 집단면역”

유근형 기자 , 이지운 기자 , 김소민 기자, 이미지 기자 , 조종엽 기자

입력 2021-04-16 03:00:00 수정 2021-04-16 17:16:43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코로나 백신]‘70% 맞아야 집단면역’ 된다더니…
“고령자-기저질환자 접종 통해 방어력 확보되면 1단계 면역 완성”
정부 “해외승인 백신 8월 위탁생산”
계약 진행중인 사안… 종류 공개 안해
설익은 발표에 제약사 주가 요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글로벌 악재가 이어지면서 국내 접종계획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가뜩이나 초기 백신 확보에 실패한 상황에서 그나마 계약한 물량조차 실제 손에 들어오는 게 늦어지고 있다. 게다가 희귀 혈전 논란이 불거진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은 미국과 유럽에서 아예 폐기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우려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비할 뚜렷한 대책이 한국에 없다는 것이다.

○ 얀센 논란에 “지켜보자” 반복한 정부
15일 현재 국내에 도착한 백신은 181만1500명분이다. 정부가 계약했다고 발표한 물량(7900만 명분)의 약 2.3%다. 상반기 도입 예정 물량(1045만 명분)과 비교해도 17.3%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백신 도입과 관련된 질의에 “협상 중”, “추가 타진 중”, “이르면 ○○월부터 도입” 등의 답변을 반복하고 있다.


이날 미국의 얀센 백신 접종 중단에 대해서도 정부 관계자는 “국내 얀센 접종이 시작되지도 않았으니 미국과 유럽의 검토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다. 백영하 범부처 백신도입TF 백신도입총괄팀장은 “얀센 백신 문제가 커지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느냐’고 묻자 “계획 변경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미국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접종을 중단한 상황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한다”고 평가했다.

○ 실효성 낮은 ‘위탁생산’ 발표에 혼란만 가중
백 팀장은 이날 오전 “국내 제약사가 해외에서 승인된 코로나19 백신을 (위탁) 생산하는 계약 체결을 진행 중이고, 8월부터 국내에서 대량 생산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백신 종류를 밝히지 않았지만 제약업계에선 모더나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발표는 예고 없이 이뤄졌다. 관계 부처 간 사전 협의도 거의 없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해당 제약사로 예상된 기업들의 주가는 요동쳤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백신 위기가 악화되자 정부가 무리수를 둔 것”이라며 “제약업계 협상에선 기밀 유지가 핵심인데, 향후 협상에서 이번 해프닝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설익은 카드로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재훈 가천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 발표대로 8월부터 위탁생산을 시작해도 현 백신 수급 위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무책임한 발표”라고 말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아스트라제네카 사례처럼 위탁생산을 하더라도 그 물량을 우리가 다 받는 게 아닌데, 왜 이런 발표를 강행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이 이날 내놓은 ‘1단계 집단면역 형성’도 비판에 직면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이날 “1차로 65세 이상 고령자, 2차로 기저질환자에 대한 접종을 통해 방어력이 확보된다면 그 순간이 국내에 1단계 집단면역이 완성되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가 집단면역 시점으로 꼽은 11월 ‘전 국민 70% 접종’과는 거리가 있다.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방역당국이 ‘급조한’ 개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집단면역 개념에 단계가 있을 수 없다”며 “고위험군에 대한 안전성을 일부 확보한 수준인데, 이 표현은 오히려 국민들을 오판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지금이라도 백신특사 보내야”
이날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백신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추가 확보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 백신 도입 협상의 틀을 깨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미 통상, 외교, 정보라인을 총동원하고 필요시 장관급 이상 고위인사를 직접 백신 특사로 파견하는 방안까지 거론된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특사를 보내서라도 조 바이든 행정부와 적극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이지운·김소민 기자


당장 백신 부족한데… 정부는 “8월 위탁생산”


“아직 (백신) 공급 계획 변동은 없다. 해외 상황을 지켜보겠다.”

미국과 유럽에서 번지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의 안전성 논란에 15일 정부가 밝힌 대응 방침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14일(현지 시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문기관인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는 “희귀 혈전증 발생 위험을 평가하려면 시간과 자료가 더 필요하다”며 얀센 백신의 접종 중단을 유지했다. 유럽의약품청(EMA)은 다음 주 새로운 권고를 내린다. 한국의 집단면역 일정이 CDC와 EMA 결정에 달린 셈이다.

그 대신 정부는 예고에 없던 해외백신의 8월 국내 위탁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정작 백신과 제약사 이름을 ‘기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아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제약사들이 급히 해명에 나서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게다가 국내 위탁생산이 확정돼도 우리 국민이 해당 백신을 곧바로 맞을지는 미지수다. 위탁생산 물량을 언제 어느 나라에 공급할지는 전적으로 백신 제조사가 결정한다.

정부는 ‘1단계 집단면역’이라는 전례 없는 표현도 꺼내들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2본부장은 이날 오후 “1차로 65세 이상, 2차로 기저질환자에 대한 접종을 통해 방어력이 확보되면 그 순간이 1단계로 집단면역이 완성되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동안 전 국민 집단면역의 기준으로 접종률 70%를 계속 강조했던 정부가 백신 수급이 여의치 않자 말을 바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지 image@donga.com·조종엽 기자

美, 얀센 안전성 판단 보류… 접종 중단 혼란 길어질듯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자문기관인 미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는 14일(현지 시간) 긴급회의를 열고 전날 CDC가 내린 얀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접종 중단 권고를 유지해야 한다고 결론냈다. ACIP는 안전 여부 판단을 보류한 채 “혈전증 발생 위험을 평가하려면 시간과 자료가 더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의 얀센 백신 접종은 적어도 며칠 더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약품청(EMA) 역시 “미국 등에서 나타난 혈전 부작용 사례를 검토 중이며, 평가를 마친 후 다음 주 새로운 권고를 내릴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스페인과 스웨덴, 벨기에 정부도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얀센 백신 접종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ACIP가 혈전 증상에 대한 우려로 접종이 중단된 얀센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 것은 앞으로 백신 접종 뒤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이 더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얀센 백신의 총 접종자 700만 명 중 최근 2주 이내에 백신을 맞은 사람은 절반이 넘는 380만 명에 이른다. 얀센 백신의 부작용은 대체로 접종 후 2주 이내에 발현된다. CDC는 20∼50세 여성들 가운데 얀센 백신을 맞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최소 3배 이상 혈전 현상을 더 많이 겪은 것으로 추산했다. 로셸 월렌스키 CDC 국장도 14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 부작용이 극도로 드문 것으로 믿고 있지만, 우리가 모든 부작용 사례를 다 관찰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얀센 백신의 접종 여부를 두고 혼란이 커지고 있다. 얀센 백신 30만 회분을 구매한 스페인 보건당국은 안전성이 확보될 때까지 백신 접종을 시작하지 않겠다고 이날 발표했다. 스웨덴 역시 얀센 백신 첫 배송량인 3만1000회분을 받아 접종을 시작하려 했지만 일단 중단하기로 했다. 벨기에 정부도 얀센 백신 접종 시작을 16일 이후로 연기했다.

지난달 11일 얀센 백신을 승인한 EMA는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주 새로운 권고를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검토가 진행되는 동안 해당 백신의 코로나19 예방에 따른 이익이 부작용보다 크다는 견해를 유지한다고 EMA는 덧붙였다.

뉴욕=유재동 jarrett@donga.com / 파리=김윤종 특파원

관련기사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