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무제한, 아우토반엔 김여사가 없다…왜?

동아일보

입력 2012-12-21 03:00 수정 2012-12-2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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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동차 문화

포르셰 911 카레라 4시리즈.
속도 무제한으로 유명한 독일의 아우토반이나, 신호등도 없이 열두 개의 도로가 합쳐지는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로터리를 달리다 보면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유럽에도 ‘김여사’라는 말이 있을까?

자동차 시승행사 때문에 지금까지 유럽을 수십 차례 방문했지만,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여성 운전자’, 즉 ‘김여사’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우토반에서는 1차로를 시속 200km가 넘는 고속으로 주행하는 할머니도 쉽게 만날 수 있고, 개선문 로터리에서는 다른 차량과 흐름을 맞춰가며 물속의 고기처럼 쏜살같이 달려가는 여성 운전자를 쉽게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여성 운전자들도 대부분 수동 기어 차량을 운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자는 운전을 못 한다’는 건 편견일지도 모른다.

한 번은 포르셰 911을 타고 뮌헨 부근의 아우토반을 시속 260km 정도로 달리고 있었는데 추월차로인 1차로를 막은 채 달리고 있는 차를 발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월차로 점거가 무척 흔한 광경이지만 독일에서는 드문 일이기 때문에 속도를 줄여야 하나 아니면 오른쪽으로 추월해야 하나를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금세 오른쪽 깜박이를 켜더니 2차로로 양보를 해줬다. 그 차 때문에 브레이크를 밟지도 상향등을 켜지도 않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운전자를 확인했더니 백발의 할머니가 왼손을 들어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그 할머니는 반응 속도가 조금 느리긴 했지만 주변의 차량 흐름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런 상황에서 알아서 비켜줄 확률이 거의 없고, 비켜 달라고 상향등을 켜기라도 하면 급브레이크를 밟아서 불쾌감을 표시하거나 “몇 살이냐”면서 삿대질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상향등은 유럽에서는 의사소통 수단일 뿐 ‘욕설’을 의미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변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의 의사표현조차 기분 나빠하는 운전자가 너무나도 많다.

사실 아우토반의 속도 무제한은 도로가 넓거나 포장 상태가 좋아서 가능한 게 아니다. 아우토반의 대부분은 우리나라보다 도로 폭이 좁고 차로 수도 적다. 고속도로의 상태만 보자면 우리나라가 한 수 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 무제한 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유는 ‘빠른 차는 왼쪽으로’라는 기본 룰을 지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1차로는 추월차로’라는 푯말이 서 있는 곳에서도 ‘규정 속도를 지키니까 괜찮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달리는 상황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터리도 누가 우선이고 누가 양보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우리나라에서는 싸움 나기 십상인 교통 체계. 유럽에서 처음 운전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백이면 백 양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들이밀고, 지나가야 하는 상황에 멈춰서 교통 혼잡을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잘하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법규가 유럽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통 혼잡과 사고를 발생시키는 ‘김여사’는 어쩌면 우리 모두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운전자의 성별이 아니라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흐름을 따르는 센스다.

신동헌 남성지 ‘레옹’ 부편집장·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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