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키다리 아저씨’의 마지막 5004만원
비즈N
입력 2020-12-24 17:03:00
“오늘 저녁 6시에 시간 됩니까? 저녁식사나 합시다.”
22일 오후 3시경 대구 동구에 있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낯익은 목소리는 해마다 이맘때쯤 연락해오는 중후한 노신사였다. 10년 가까이 익명으로 모금회에만 10억 원이 넘게 기부한 ‘키다리 아저씨’다.
당일 저녁 이희정 모금회 사무처장 등이 나간 사무실 인근 식당에서는 부인과 함께 밝은 미소로 마주한 키다리 아저씨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5004만 원짜리 수표와 직접 눌러쓴 메모 1장이 들어있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인 10년의 기부를 마지막으로 익명기부를 마무리합니다. 나누는 동안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모금회와 인연을 맺은 건 2012년 1월부터였다. 노신사는 대뜸 1억 원을 전달한 뒤 “익명 기부로 해 달라”며 곧장 자리를 떴다. 같은 해 12월에도 사무실로 전화해 “근처 국밥집에서 보자”더니 1억2300만 원을 전달했다. 그렇게 기부한 돈은 다 합치면 10억3500만 원이 넘는다.
키다리 아저씨는 사실 그의 기부 활동이 바깥에 알려지며 시민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지은 별명. 어떤 생김새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 베일에 감춰져 있다. 다만 대구 지역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인이란 사실만 소개된 정도다.
그나마 모금회와 인연을 맺으며 알려진 건, 경북에서 태어난 키다리 아저씨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일찍부터 가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1960년대에 학업을 위해 대구로 왔고, 3평짜리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근검절약하고 열심히 노력해 조금씩 살림살이가 폈고, 번듯한 회사를 꾸릴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키다리 아저씨가 놀라운 건 이미 오래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벌이가 생기면 언제나 수익의 30% 이상을 기부했다고 한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모금회 기부 중에도 회사 사정이 나빠져 직원들이 먼저 “기부를 당분간 중단하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벌었다고 다 내 돈이 아니다”며 기부를 이어갔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에 모금회에 2300만 원을 전달하고는 “금액이 적어 미안하다”며 오히려 사과했다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의 선행은 부인도 처음엔 몰랐다고 한다. 부인은 모금회를 통해 “키다리 아저씨가 남편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우연히 신문에 나온 메모 글씨체를 보고 알아챘다. 지금은 자식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온 키다리 아저씨는 앞으로도 자신의 신분이 공개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한마디를 남겼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나와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22일 오후 3시경 대구 동구에 있는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낯익은 목소리는 해마다 이맘때쯤 연락해오는 중후한 노신사였다. 10년 가까이 익명으로 모금회에만 10억 원이 넘게 기부한 ‘키다리 아저씨’다.
당일 저녁 이희정 모금회 사무처장 등이 나간 사무실 인근 식당에서는 부인과 함께 밝은 미소로 마주한 키다리 아저씨가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5004만 원짜리 수표와 직접 눌러쓴 메모 1장이 들어있었다. ‘스스로와의 약속인 10년의 기부를 마지막으로 익명기부를 마무리합니다. 나누는 동안 즐거움과 행복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모금회와 인연을 맺은 건 2012년 1월부터였다. 노신사는 대뜸 1억 원을 전달한 뒤 “익명 기부로 해 달라”며 곧장 자리를 떴다. 같은 해 12월에도 사무실로 전화해 “근처 국밥집에서 보자”더니 1억2300만 원을 전달했다. 그렇게 기부한 돈은 다 합치면 10억3500만 원이 넘는다.
키다리 아저씨는 사실 그의 기부 활동이 바깥에 알려지며 시민들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지은 별명. 어떤 생김새인지 뭘 하는 사람인지 베일에 감춰져 있다. 다만 대구 지역에서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인이란 사실만 소개된 정도다.
그나마 모금회와 인연을 맺으며 알려진 건, 경북에서 태어난 키다리 아저씨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일찍부터 가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1960년대에 학업을 위해 대구로 왔고, 3평짜리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 부부는 근검절약하고 열심히 노력해 조금씩 살림살이가 폈고, 번듯한 회사를 꾸릴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키다리 아저씨가 놀라운 건 이미 오래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왔다는 점이다. 벌이가 생기면 언제나 수익의 30% 이상을 기부했다고 한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모금회 기부 중에도 회사 사정이 나빠져 직원들이 먼저 “기부를 당분간 중단하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벌었다고 다 내 돈이 아니다”며 기부를 이어갔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에 모금회에 2300만 원을 전달하고는 “금액이 적어 미안하다”며 오히려 사과했다고 한다.
키다리 아저씨의 선행은 부인도 처음엔 몰랐다고 한다. 부인은 모금회를 통해 “키다리 아저씨가 남편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우연히 신문에 나온 메모 글씨체를 보고 알아챘다. 지금은 자식도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온 키다리 아저씨는 앞으로도 자신의 신분이 공개되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한마디를 남겼다.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키다리 아저씨가 나와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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