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밀한 일기같은 윤석남의 드로잉
김민 기자
입력 2024-05-07 03:00 수정 2024-05-07 03:00
25일까지 학고재서… 96점 전시
‘나는 착한 동생을 잃은/그 친구의 슬픔이 버거웠습니다. (중략) 상가를 돌아 나오면서/내 마음이 깊어졌습니다./일상인 죽음이 편안해졌습니다./참/소중한 하루였습니다.’(‘어제 이른 아침 전화 한 통 받았습니다…’)
‘이유도 없이, 혹은 이유가 있듯이/언제나 바쁜/당신 (중략) 너무나 바빠서/자기 몸이 어디 있는지도 잊어버렸다.//슬프구나/잊은 몸이 더 바쁘다.’(‘토요일 저녁 6시 50분’)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볼 수 있는 윤석남(85)의 드로잉 속 글귀다. 흔히 드로잉이라고 하면 작품을 제작하기 전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스케치를 생각한다. 그런데 윤석남의 드로잉은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느꼈는지 그 내밀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기에 가깝다.
‘어제 이른 아침…’은 가까운 친구의 동생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 상가에 갔다가 느낀 점을, 또 ‘토요일 저녁 6시 50분’은 바쁜 일상에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누군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외할머니’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자식을 키워 온 모든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전시된 작품들은 윤석남이 2000∼2003년 그린 드로잉 700여 점 중 96점을 선별한 것이다. ‘여성주의 작가’라고 불리는 그답게 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도 있지만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았다. 그 가운데서 느껴지는 건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 생명에 대한 존중, 자매애 같은 가치를 작가가 보편적 영역으로 확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항상 지상에서 20cm 정도 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세태에 흔들리지 않고 사랑과 평화 같은,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온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윤석남의 동생인 윤석구(77)의 신작 조각 15점도 함께 소개한다. 버려진 나무를 알록달록한 천으로 감싸며 지금의 소비 행태가 올바른 것인지 되묻는다. 25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위쪽부터 윤석남의 드로잉 ‘어느 땅 공포증 환자의 변명’(2001년)과 ‘외할머니’(2001년). 학고재 제공
‘나는 착한 동생을 잃은/그 친구의 슬픔이 버거웠습니다. (중략) 상가를 돌아 나오면서/내 마음이 깊어졌습니다./일상인 죽음이 편안해졌습니다./참/소중한 하루였습니다.’(‘어제 이른 아침 전화 한 통 받았습니다…’)
‘이유도 없이, 혹은 이유가 있듯이/언제나 바쁜/당신 (중략) 너무나 바빠서/자기 몸이 어디 있는지도 잊어버렸다.//슬프구나/잊은 몸이 더 바쁘다.’(‘토요일 저녁 6시 50분’)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볼 수 있는 윤석남(85)의 드로잉 속 글귀다. 흔히 드로잉이라고 하면 작품을 제작하기 전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스케치를 생각한다. 그런데 윤석남의 드로잉은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느꼈는지 그 내밀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일기에 가깝다.
‘어제 이른 아침…’은 가까운 친구의 동생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 상가에 갔다가 느낀 점을, 또 ‘토요일 저녁 6시 50분’은 바쁜 일상에 삶의 중심을 잃어버린 누군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다. ‘외할머니’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자식을 키워 온 모든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전시된 작품들은 윤석남이 2000∼2003년 그린 드로잉 700여 점 중 96점을 선별한 것이다. ‘여성주의 작가’라고 불리는 그답게 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도 있지만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았다. 그 가운데서 느껴지는 건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 생명에 대한 존중, 자매애 같은 가치를 작가가 보편적 영역으로 확장해 왔다는 사실이다.
“항상 지상에서 20cm 정도 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세태에 흔들리지 않고 사랑과 평화 같은,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 온 여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윤석남의 동생인 윤석구(77)의 신작 조각 15점도 함께 소개한다. 버려진 나무를 알록달록한 천으로 감싸며 지금의 소비 행태가 올바른 것인지 되묻는다. 25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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