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과분… 아직도 빛을 찾고 있는 화가일 뿐”

청양=이진구 기자

입력 2023-11-22 03:00 수정 2023-11-2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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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 거장 김인중 신부
“선입견-한계 없이 자유롭게 느끼게끔
모든 작품들에 제목 붙이지 않아
佛 소도시, 스테인드글라스로 명소 돼… 지역도시 살리기에 도움되고 싶어”


김인중 신부가 20일 충남 청양군 빛섬 아트갤러리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신부는 “프랑스 브리우드가 제 작품으로 관광 명소가 됐듯 빛섬 아트갤러리가 이 지역의 경제와 문화를 재생하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양=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빛의 화가’라니요. 저는 아직도 빛을 찾고 있는 화가일 뿐입니다.”

충남 청양군 빛섬 아트갤러리에서 20일 만난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거장 김인중 베드로 신부(83·도미니크 수도회)는 자신을 ‘빛의 화가’라고 부르는 데 대해 “너무 과분한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유럽 성당 및 미술관 40여 곳에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2010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 훈장인 ‘오피시에’를 수훈했고, 2016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아카데미 가톨릭 회원에 추대됐다.

그가 지난해 10월 동생(김억중 한남대 명예교수·건축가)과 함께 연 빛섬 아트갤러리에는 회화, 조각, 유리공예 등 그의 작품 600여 점이 상설 전시돼 있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김 신부는 1965년 한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스위스 프리부르대와 파리 가톨릭대에서 공부했다. 1974년 프랑스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했다. 지난해 KAIST 산업디자인학과 초빙 석좌교수에 임명된 그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여전히 빛을 찾고 계신다고요.

“마더 테레사(1910∼1997)께서 ‘하느님은 우리가 아무리 불완전한 도구일지라도 그것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신다. 나는 하느님의 작은 몽당연필일 뿐’이라고 하셨지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빛은 절대의 존재인데 제가 빛이라니요. 하하하. 전 스스로 빛의 화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빛을 찾고 있을 뿐이지요.”

―이곳 빛섬 아트갤러리에 전시된 작품에는 제목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모든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아요. 어떤 선입견, 한계에도 갇히지 말고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느끼게 하고 싶어서죠. 어떤 사람들은 제 작품을 보고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보면서 행복하다고 해요. 제 그림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냥 형태와 색에 눈이 귀 기울이도록 내버려 뒀으면 합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다양할 것 같습니다만….

“프랑스 중남부 브리우드란 도시에 11세기 지어져 1000년이 넘은 ‘생 쥘리앵 바실리카’란 성당이 있어요. 그곳의 37개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제가 설치했지요. 완성된 후 성당 측에서 다녀간 사람들이 감상을 적을 수 있는 노트를 비치했는데, 저도 궁금해서 한 번 봤어요. 19세 여성이 ‘그동안 우울증 때문에 굉장히 힘들고 슬프게 살았는데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껴서 한 시간 넘게 구석에서 울고 갑니다’라고 썼더라고요. 그러면 됐지요. 더 이상 뭘 바라겠습니까.”

―신부님의 작품 덕에 브리우드는 관광 명소가 됐다고 하던데요.

“제 작품이 설치된 후 미슐랭 가이드(2017년 판)에서 생 쥘리앵 바실리카를 최고 평점인 별 셋으로 올렸다고 해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던 작은 도시가 성당 덕분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 있는 관광 명소가 된 것이죠. 프랑스에서 지역 경제 살리기의 모델도 됐고요. 브리우드처럼 문화예술은 도시 재생의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어요.”

―이곳 청양에 신부님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갤러리를 연 것도 같은 이유라고 들었습니다.

“프랑스 브리우드, 생 제르베 등 유럽 40여 곳에 제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브리우드처럼 관광 명소가 된 곳도 있고, 제 작품이 있는 곳을 따라 순례하는 여행객도 늘고 있다고 해요. 제 고향이 부여예요. 그래서 부여, 공주, 청양, 예산, 논산 같은 이 지역 도시에 저마다 다른 주제로 제 작품을 전시하는 작은 갤러리를 만들고, 사람들이 갤러리를 따라 여행하는 곳으로 만들면 지역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빛섬’이란 이름도 이런 뜻이 첫 시작인 이곳에서 사방으로 널리 퍼졌으면 하는 뜻을 담았습니다.”




청양=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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