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게임으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시대[조영준의 게임인더스트리]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입력 2023-10-27 11:00 수정 2023-10-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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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역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1인칭 슈팅게임(FPS) ‘콜오브듀티’의 경우 2차 세계대전을 기반으로 시작됐으며, 24시간 만에 8억 달러(한화 약 1조 원)에 달하는 판매를 기록한 ‘레드데드리뎀션2’ 역시 미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제작된 게임으로, 인류의 역사는 게임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창의력의 원천과 같은 소재입니다.

실제로 과거 80~90년대 게임 사용자에게 친숙한 게임인 ‘대항해시대’는 세계 지리 과목 점수를 올려주는 1등 공신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 도시 위치, 특산물과 오대양 육대주의 풍향(바람의 방향), 특산물 등을 게임하며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성적이 올라가기도 했죠.

이 과거의 사건과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들은 시대의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좀더 세밀하고 완벽하게 과거 모습을 구현하고 있는데요.

단순히 역사 속 이야기와 인물, 사건을 소재로 하는 것을 넘어, 그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수준까지 도달해 학습자료로도 사용되고 있을 정도라 게임으로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어쌔신 크리드’ 속 고대 아테네의 모습 / 출처=게임동아


박물관 역사 학습자료로도 쓰이는 게임, ‘어쌔신 크리드’
유비소프트가 개발한 ‘어쌔신 크리드’는 암살이라는 소재를 역사 속 인물과 스토리에 접목한 액션 게임입니다. 2007년 처음 발매되어 현재까지 꾸준히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는 이 게임은 단순히 역사를 소재로 사용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배경이 되는 시대의 풍경과 건축 양식, 복장 등을 엄청난 디테일로 구현한 것으로 유명하죠.

이 게임의 개발과정을 보면 그 수준을 알 수 있는데요. 우선 시나리오를 결정하면, 배경이 되는 시대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박물관에서 실제 유물들을 취재하고, 역사가들과 협업으로 고증을 거쳐 당시 환경과 건축물의 모습, 사람들의 행동양식, 언어 등을 세밀하게 게임 속에 그려냅니다.

황금으로 칠해진 피라미드 꼭대기까지 구현돼 있다 / 출처=게임동아
일례로, 기원전 431년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 고대 그리스를 다룬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는 뼈대만 남은 ‘파르테논 신전’을 그때의 모습 그대로 게임 속에서 만날 수 있고, 지금은 소실된 황금으로 칠해진 거대한 ‘아테나 석상’을 비롯해 20여 개에 달하는 그리스의 도시의 모습 완벽하게 구현해냈습니다.

이 게임 속 건축물들과 도시 구조는 모두 기록 고증을 거쳐 만들어진 터라, 사실상 고대 그리스의 도시를 실제로 걷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죠.

바그다드의 실제 모습을 재현한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 / 출처=게임동아
여기에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는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 바이킹의 잉글랜드 침공 시기를 다룬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역시 높은 고증으로 학계에서도 주목받았고요. 최근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 미라지’는 9세기 전성기를 맞았던 도시 ‘바그다드’를 완벽하게 그려내 아랍권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 게임이 얼마나 고증이 잘됐나 하면, 18세기 프랑스 혁명을 다룬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 만날 수 있는 ‘노트르담 성당’은 크기와 각종 장식물이 당시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데, 2019년 발생한 화재로 성당이 소실되자 복원 자료 중 이 게임이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게임 속 노트르담 대성당 / 출처=게임동아
이처럼 워낙 철저한 고증과 높은 디테일로 게임을 만들어 이 ‘어쌔신 크리드’는 실제로 학습자료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유비소프트는 디스커버리와 협력해 ‘디스커버리 투어’를 게임마다 선보이는데, 액션 플레이를 제외하고 도시를 거닐 수 있는 데다, 당시 지역 풍속과 건축 양식에 대한 소개, 그리고 실제 역사의 내용을 게임 속 콘텐츠로 설명해 현지 박물관에서 소개 자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에 실제 역사가 구현된 수준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문명6 엔솔러지 / 출처=게임동아


고대사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는 게임, ‘문명’
‘문명’만큼 오랜 시간 게임 사용자들의 사랑을 받은 게임도 드뭅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 과학, 정복, 문화를 발전시켜 승리하는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인데요. ‘문명’은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이 각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해 자연스럽게 세계사 공부가 될 정도입니다.

이 문명은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더욱 깊이가 깊어져, 마지막 작품인 ‘문명6’에서는 무려 58명의 역사 속 인물과 50개가 넘는 국가가 등장합니다.

50개가 넘는 국가와 58개의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문명’ / 출처=게임동아
특히, 이 문명은 국가별로 특별 유닛이나 지역적인 특성, 그리고 대표 건축물 등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국가를 선택해 게임을 즐기고 특별 유닛을 운영하면서 여러 국가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게임은 인류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특별 시나리오도 등장하는데요. 이 시나리오는 전 세계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각 문명의 전성기와 위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익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더욱이 이 시나리오에는 지도와 완벽하게 부합되는 지형과 실제 활약했던 역사 속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도 문명의 발상지로 불리는 ‘수메르’, ‘페르시아’ 시나리오는 실제 역사가들과 박물관의 고증을 거쳐 구현해 고고학적인 가치도 지니고 있으니 세계사에 관심이 있다면 적극 추천합니다.

흑사병이 창궐한 유럽을 다룬 시나리오 / 출처=게임동아
이외에도 소설 삼국지 속 인물들과 3세기 중국 지도가 구현된 ‘코에이 삼국지’, 14~15세기 혼란했던 유럽 중세 시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크루세이더 킹즈’ 등 다양한 게임이 존재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역사를 배경으로 성공한 게임이 다수 존재하는 서양, 일본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과거 패키지 게임 시절 ‘임진록’, ‘천년의 신화’가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 뿐 실제 역사를 다룬 게임은 드물다는 점입니다.

K-POP과 K-드라마 등 이른바 ‘K-컬쳐’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이 등장해 좋은 성과를 거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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