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도 참혹하고 비극적인 전쟁[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입력 2023-10-20 11:00 수정 2023-10-2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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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S(1인칭 슈터) 게임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즐겨본 이용자라면, 자신이 전장의 한 가운데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껴 봤을 겁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성취감이 들기도 하죠.

그래서 때론 ‘콜 오브 듀티’와 같은 게임들은 전쟁의 비극을 그저 재미 요소로 그려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전쟁을 너무나 오락적으로 소모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드론을 날리거나 화면을 보고 적을 사살하는 게임처럼 바뀐 현대 전쟁의 모습은 왠지 그런 비판에 힘을 실어주는 거 같아 씁쓸합니다.

물론 모든 전쟁 게임이 전쟁을 단순한 재미 요소로 그려낸 것은 아닙니다. 이용자들에게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그 비극과 참상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게임도 존재합니다.

‘스펙 옵스: 더 라인’ . 출처=스팀 게임 소개 페이지


● Do you feel like a hero yet?(아직도 당신이 영웅 같습니까?)
대표적인 게임은 지난 2012년 발매된 TPS(3인칭 슈터) ‘스펙 옵스: 더 라인’입니다. 이 게임은 10년이라는 긴 공백을 깨고 돌아온 만큼, 엄청나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선사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작품입니다. (아래는 게임 내용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게임은 엄청난 모래폭풍이 덮친 두바이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있었던 미 육군 33대대는 시민을 구하기 위해 두바이에 들어섭니다. 복귀하라는 명령까지 어겨가며 두바이에 남았던 미국 33대대는, 시민의 탈출을 위해 약 1000마리 낙타를 동원하지만 이후로 연락이 끊기고 맙니다. 결국 미국에서도 이 33대대를 포기했고, UAE는 두바이를 무인지대로 선언하게 됩니다.

백린탄을 쓴 주인공 일행 . 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그런데 어느 날 33대대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인물로부터 무전이 오고, 미 특수부대 델타포스인 주인공 일행은 혹시 모를 생존자를 확인하고 이를 구출하기 위한 임무를 받아 두바이로 떠납니다. 그리고 두바이에서는 민병대, 타락한 것으로 판단되는 33대대 부대원, CIA 등과 엮여 전투가 펼쳐집니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린 백린탄 관련 미션이 등장하죠. 관문에 도착한 주인공 일행은 수많은 적으로 인해 돌파가 힘들어지자, 결국 백린탄까지 사용하게 됩니다. 백린탄은 쉽게 말하면 산 사람을 태워 죽이는 잔혹한 무기입니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잘 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백린탄을 사용한 지역은 알고 보니 민간인이 가득했던 곳이었고, 주인공의 오해와 달리 해당 지역의 33대대 부대원들은 이들 민간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백린탄에 의해 죽음을 당한 무고한 시민들의 시체는 게임에서도 상당히 참혹하게 그려집니다. 아이를 안고 죽은 부모의 모습 등도 나오죠. 특히 해당 미션은 백린탄을 사용하지 않고는 완료할 수 없어, 이용자들은 자신의 플레이에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와 죄책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Do you feel like a hero yet?(아직도 당신이 영웅 같습니까?. 출처=유튜브 영상 캡처

게다가 주인공 캐릭터는 자신이 백린탄을 사용했음에도, 33대대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는 이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미 주인공은 제정신이 아니었고,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하면 점점 이상해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죠. 참혹한 전쟁 속에서 한 사람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양하게 마련된 엔딩도 딱히 해피엔딩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용자들 게임의 로딩 과정에서 접했던 문구, ‘Do you feel like a hero yet?(아직도 당신이 영웅 같습니까?)’에 대한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되죠.

‘디스 워 오브 마인’ . 출처=스팀 게임 소개 페이지


● 모두가 군인은 아니다
전쟁의 비극은 군인 외에도 일반인에게도 덮치기 마련입니다. 아니 오히려 시민들에게 더 많은 아픔을 남기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잘 그려낸 작품이 지난 2014년 출시된 ‘디스 워 오브 마인(This War of Mine, 나만의 전쟁)’입니다.

이 게임은 전쟁 중 민간인 생존자들이 살아남기 위한 모습을 그렸습니다. 게임은 동유럽 내 가상의 국가 그라츠나비아의 대도시 포고렌에서 진행됩니다. 도시에서 탈출할 수도 없고 국제 사회의 원조도 받기 힘든 상황. 이런 악조건에선 게임상 종전일까지 살아 남아야 합니다.

생존은 당연히 쉬운 게 아닙니다. 평소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작은 부상도 목숨을 위협하고, 추운 겨울 추위도 생존을 위협하는 큰 적입니다. 그렇다고 안전한 피난처에만 머문다면 생존을 위한 물자 조달이 힘들어집니다. 또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생존을 신경 써야 하니 이것저것 챙길 게 많습니다.

‘디스 워 오브 마인’ 탐색 화면. 출처=스팀 게임 소개 페이지

여기에 생존자들끼리 그리는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다른 생존자들이 도움을 요청해오기도 하고 보상을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피난처를 노리고 습격해오는 생존자들도 있습니다. 아울러 탐색 과정에서 얻어낸 빵 하나 때문에 늙은 생존자가 굶어 죽는 모습을 보면,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울러 게임에는 출시 이후, 도시를 벗어나려 노력하는 아버지와 딸, 진실과 거짓의 선택의 기로에선 라디오 진행자, 문화유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 등을 그린 추가 스토리 에피소드도 준비됐습니다. 군인이 아닌 우리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 더 현실적이고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몇 달만 지나면 이제 2년에 다 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 전쟁, 아프리카의 수많은 내전 등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세계는 여전히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전쟁은 부디 게임에서만 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조영준 게임동아 기자 ju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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