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합성 과정까지 인식해 생육 조건 학습… 기술장벽 높지만 도전”[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허진석 기자

입력 2023-08-05 01:40 수정 2023-08-0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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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온실 자율 제어 AI 개발하는 ‘크로프트’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로 작물 최적 생육 조건 찾아내
국제 온실 자동화 대회 수상… 전북 김제서 시험 온실 운영
경제적 생산 위한 데이터 수집… “초보 농부도 수익 내게 도울 것”


크로프트의 류희경 공동대표이사(왼쪽)와 이우람 공동대표이사가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스마트 온실의 생육환경을 최적으로 만들어 주는 인공지능(AI)의 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요맘때 상추는 금값이다. 상추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흘 연속으로 비만 내려도 상추는 다 녹는다’는 말로 농사의 어려움을 얘기한다. 더위 역시 만만치 않은 변수다. 장마와 폭염이 이어지면서 상추나 시금치 가격이 지난달은 물론이고 작년과 비교해서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농산물은 자연의 선물이지만 자연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스마트 온실에서 누구나 최고의 생산성으로 작물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스마트 온실 제어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있는 스타트업 ‘크로프트’의 비전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크로프트 사무실에서 만난 류희경 공동대표이사(37)는 “지금도 많은 온실에서 농작물이 생산되고 있지만 재배 환경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1년에 12번 수확할 상추를 9∼10번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크로프트는 AI 기술과 로봇 기술을 활용해 농작물이 광합성을 얼마나 활발하게 하는지까지 실시간으로 추적하면서, 생산자가 원하는 생산량과 품질, 에너지 사용량에 맞춰 최적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AI 기술에 도전하고 있다.

● 재배사의 역량이 중요한 스마트 온실
크로프트가 직접 제작한 모바일 로봇. 스마트 온실에서 작물의 시간대별 성장 데이터를 수집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크로프트 제공
유리든 비닐이든 스마트 온실 형태를 갖췄다고 해서 농사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스마트팜’이라는 이름이 붙은 온실이 적지 않지만 생육 환경은 사람이 일일이 조절하는 방식이다. 재배 노하우가 부족하면 스마트 온실을 짓더라도 2, 3년 적자를 각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 지식을 가진 재배사들이 따로 있는 이유다. 재배사들은 스마트 온실을 찾아가 최적의 환경을 세팅해주고 컨설팅비를 받는다. 류 대표는 “재배사의 역량에 따라 생산량과 수확 횟수가 크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그는 “같은 시설이더라도 온실을 어떻게 제어하고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토마토의 경우 평당 생산량이 5, 6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스마트 온실의 대부분은 온실 내외부의 생육 조건을 센서로 측정해 특정 작물이 자라기 좋은 일반적인 조건을 생육 단계별로 조성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스마트 온실에는 환경을 제어하는 컴퓨터가 연결돼 있는데, 특정 온도를 유지하려면 외부의 기온, 일사량이나 환기 조건 등 100여 가지에 이르는 변수들을 사람이 조절해야 하는 게 현재 상황이라고 류 대표는 설명했다.

크로프트는 생산량과 품질, 에너지 사용량의 수준을 생산자가 설정하면 내외부 여러 환경 변화에 따른 수많은 변수들을 AI가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류 대표는 “재배사들은 작물 자체를 잘 키우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경험만 가지고 있는 편”이라며 “최근 유럽에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전문 재배사들이 많은 네덜란드에서도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수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온실 제어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작년 11월에는 네덜란드의 유명 농업 기업이 에너지 위기로 온실을 잠정 폐쇄하기도 했다.

● 국제 온실 자동화 대회서 작물 재배 AI 분야 1위
2021년 류희경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이우람 대표(오른쪽)는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이 주최한 국제온실자동화대회의 예선에서 1등을 차지했다. 크로프트 제공
크로프트는 창업 준비 기간에 농업 분야에서 유명한 네덜란드의 바헤닝언대가 주최하는 3차 국제 온실 자동화 대회에 출전했다. 2021년 말∼2022년 중반에 걸쳐 진행된 이 대회에서 크로프트팀은 AI 기술을 보는 분야에서는 1위를 하고 원격 제어로 실제로 작물을 길러 수익성으로 순위를 매기는 분야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AI 전문가인 이우람 공동대표이사(38)는 “인공지능 기술은 스마트 온실과 같은 환경으로 꾸며진 가상의 디지털 환경에서 여러 외부 변수의 변화에 따라 AI가 얼마나 자율적으로 농작물을 길러내는지를 겨루는 것이었는데, 제일 좋은 성적을 냈다”고 했다. 실제 환경에서 대회를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에 생육 속도에 구애받지 않게 ‘디지털 트윈 온실’에서 AI 실력 위주로 먼저 겨룬 것이다. 이후 실제 네덜란드의 스마트 온실을 배정받아 상추를 원격으로 길렀는데, 생산량과 등급 등에 따른 매출액 기준으로는 3위를 했다. 이 대표는 “대회를 거치면서 AI의 역량을 실제로 최대로 내기 위해서는 생육 환경제어의 최종 결과값인 ‘작물이 자라는 상태’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AI가 환경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농작물의 자라는 속도나 무게, 수분 함량, 병충해 유무의 모니터링을 넘어 광합성을 얼마나 제대로 잘하고 있는지까지 실시간으로 인식해 그에 맞춰 생육환경을 조절하는 AI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농작물의 광합성 과정은 특정 파장 아래에서 햇빛을 일시적으로 가렸다가 다시 쬐이면 광합성 작용이 일어나는 부위에서 반짝이는 빛이 나오는 원리를 활용해 AI를 학습시키고 있다”고 했다. 이 대회에서는 전문 재배사가 작물을 길러 참여 팀과 비교했는데, 크로프트팀은 재배사보다 좀 더 나은 산출을 올렸다.

● 서울대 동문들 모여 창업

류 대표는 서울대 조경학과를 나와 국내에 있는 국제기구인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에서 일했다.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방편의 일환으로 중국에서 온실 기반의 농업 기술 보급 등을 위해 농민과의 접촉을 넓히다가 온실 농업의 생산성 향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대표는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를 나와 현재 경기과학기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학 때 알게 된 류 대표와 함께 온실 농업에 AI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공동으로 크로프트를 창업했다. 크로프트에는 로봇 전문가 2명이 외부자문 형태로 온실 제어에 필요한 로봇 기술과 제작을 도와주고 있고, 경력 20년 이상의 전문 프로그래머도 참여하고 있다.

크로프트는 경북 김제 스마트팜 혁신밸리 내 스마트 온실에서 여러 종류의 상추를 기르면서 생육 데이터를 수집하며 AI를 개발하고 있다.

●“올해 스마트 온실 관리 프로그램 출시부터 시작”
크로프트는 네덜란드 대회에서 인정받은 AI 기술의 상용화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스마트 온실 관리 프로그램 출시를 시작으로 내년에는 온실 모니터링 시스템, 2025년에는 온실 제어 보조 시스템을 잇달아 내놓은 뒤 2026년 완전 자율 제어가 가능한 스마트 온실 AI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대회 수상 실적 등으로 관심을 끌면서 작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그린테크 전시회에서는 네덜란드와 독일, 포르투갈, 태국, 말레이시아 등의 재배전문회사 16곳으로부터 온실 관리 프로그램을 구매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국내는 소규모 영농이 많지만 외국에서는 1만 평 단위로 스마트 온실을 운영하는 기업형 재배업자가 많은 편이다.

류 대표는 “기후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누구나 최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은 기술장벽이 높지만 기후 변화 대응에도 꼭 필요한 미래 기술”이라며 “네덜란드나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아직 AI나 작물의 모습을 직접 인식하는 이미지 활용은 드문 만큼 농작물 재배 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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