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 밖으로 나온 커다란 그림… 회화작품으로 즐겼으면 좋겠어요”

이호재 기자

입력 2024-05-03 03:00 수정 2024-05-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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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서 전시회 연 이수지 그림책 작가

이수지 작가가 전남 순천시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전시장에서 자신의 그림책 ‘거울속으로’의 그림을 가로로 길게 늘어뜨린 작품 옆에 서 있다. 이 작가는 “책에 담긴 원화를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변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제공

한 소년이 수영 보조기구를 차고 조심스럽게 수영장에 들어선다. 아이는 물에 둥둥 떠다니다가 이내 흐르는 물결을 따라 나아간다. 강과 바다를 거치며 아이는 새가 돼 날아오른다. 비가 돼 돌과 흙 사이로 스며든다.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온 아이는 보조기구는 벗어버린 상태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아이의 얼굴은 한없이 편안하고 고요하다. 길이 25m의 커다란 흰색 천에 새파란 수채 물감으로 그린 그림 ‘물이 되는 꿈’을 보다 보면 한여름 물속에 풍덩 들어갔다 나온 듯 시원하다.

이 작품은 지난달 23일부터 전남 순천시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여름의 무대, 이수지의 그림책’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수지 그림책 작가(50)가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본명 조윤석·49)의 앨범 ‘오, 사랑’(2005년)에 수록된 곡 ‘물이 되는 꿈’을 듣고 영감을 받아 그렸다.

이 작가의 그림책 ‘물이 되는 꿈’(2020년·청어람아이)에는 아코디언처럼 종이를 이어 붙인 뒤 책 안에 접어 넣는 방식으로 5.7m 길이의 그림이 담겼다. 이번 전시에선 종이책이 지닌 물성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그보다 5배 가까이 긴 커다란 천에 같은 그림을 인쇄해 전시장에 걸어놓았다. 이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손 안에 쥐는 책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게 답답했다. 커다란 그림이 밖으로 나와 아이들을 압도하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으로 통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림 부문을 2022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전시는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 개관 10주년을 맞아 열렸다. 1, 2층을 합쳐 1022㎡ 규모의 전시장에 265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앞서 그는 2021년 서울 용산구 알부스갤러리에서 ‘여름 협주곡’ 등 수차례 전시를 가졌는데 이번 전시의 규모가 가장 크다. 이 작가는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전시를 열었는데도 많은 독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림책을 ‘책’이 아닌 회화작품처럼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선 종이책 안에 갇혀 있던 그의 그림들이 눈앞에 커다랗게 펼쳐진다. ‘토끼들의 밤’(2013년·책읽는곰)에 등장하는 토끼 수백 마리를 종이에 인쇄한 뒤 나무 막대기에 받쳐 세워놓은 작품을 보다 보면 미지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다. 비발디 협주곡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얻은 ‘여름이 온다’(2021년·비룡소)의 오케스트라를 종이 모형으로 만들어 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파도야 놀자’(2009년·비룡소) ‘거울속으로’(〃) ‘그림자 놀이’(2010년·비룡소)에 나오는 그림들도 액자로 걸려 있다. 이 작가는 “준비 기간만 6개월 이상 걸려 온몸이 뻐근하다”며 “어린이날을 맞아 온 가족이 오셔서 그림을 몸으로 느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 2000∼3000원.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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