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안은미, 伊 무인도서 굿 한판… 세계 눈길 끈 K아트

베네치아=김민 기자

입력 2024-04-22 03:00 수정 2024-04-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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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와 협업한 큐레이터가 기획
영혼 위로 ‘터굿’ 퍼포먼스 벌여
미술계 VIP 등 600여명 관람
“현대와 전통 능숙하게 융화시켜”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자코모섬에서 ‘핑키핑키 굿’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는 무용가 안은미. 1960년대부터 무인도였던 이 섬은 1975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 폴란드 아방가르드 극 연출가 예지 그로토프스키가 실험극을 선보인 바 있다. 이때 사과를 나누어준 것에 착안해 안은미도 머리에 사과를 올렸다. 섬 소유주인 파트리치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작은 사진 왼쪽)와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작은 사진 오른쪽)도 분홍 한복을 입고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 재단·예지 그로토프스키 제공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 미술전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개막을 이틀 앞둔 18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이탈리아 베네치아 자르디니 전시장 앞 부두에서 전 세계 유명 컬렉터 및 큐레이터, 기관장과 기자들이 배에 몸을 실었다. 배를 타고 50분쯤 움직이자 핑크빛 연기로 뒤덮인 무인도 ‘산자코모’가 보였다. 핑크빛 연기는 곧 섬에서 시작될 한국인 무용가 안은미의 퍼포먼스와 전시 ‘핑키핑키 굿: 산자코모의 내일을 향한 도약’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날 산자코모에선 프랑스 등 유럽에서 사랑받는 무용가 안은미의 해외 미술계 데뷔 무대가 펼쳐졌다. 그를 보기 위해 무인도를 찾은 600여 명의 관객 중에는 카타르 공주인 알 마야사 빈트 하마드 타니,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 최고경영자 베티나 코렉, 헤셀미술관장 톰 에클스, 유명 컬렉터 울리 지그 등 세계 미술계 VIP가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안은미는 관객 600여 명 앞에서 과거 군사기지 등으로 활용됐던 산자코모섬에 살았던 영혼을 위로하고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터굿’을 벌였다. 안은미는 크레인에 매달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물을 뿌리며 섬을 축복하고, 관객이 골라온 돌에 핑크빛 물을 묻혀 세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섬 입구에서 나눠준 한글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옷에 붙인 관객들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공연을 즐겼다. 이내 안은미와 함께 춤을 추며 어우러졌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사람은 2020년 방탄소년단(BTS)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커넥트 BTS’를 협업한 세계적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다. 2009년 미술지 ‘아트리뷰’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미술계 파워 인물 1위에 올랐던 그는 지난해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열린 안은미의 공연 ‘드래건스’를 보고 감명을 받아 그녀를 이곳에 초청했다. 이날 오브리스트는 고운 분홍색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그는 “오늘 슈트를 입고 도착했는데 안은미가 내게 분홍 한복을 입히면서 ‘너도 굿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전시도 이어졌다. 전시장에는 ‘굿’뿐만 아니라 한국 주유소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람인형, 뽕짝(트로트 음악), 꼭두인형 등 한국 문화에서 차용한 작품들도 설치됐다. 과거라면 해외 관객들은 이런 문화를 낯설게만 여겼겠지만, K팝 등 한국 대중문화가 잘 알려진 덕분에 거부감보다는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전시와 퍼포먼스를 즐겼다. 안은미는 “과거엔 외국인들이 별신굿이나 트로트 같은 음악을 생경하게 느꼈지만, 이제는 그 소리를 진지하게 들으려고 한다”며 “오늘도 많은 관객들이 ‘사운드 뷰티풀’을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문화가 진지하게 여겨지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몇십 년을 트레이닝하고 에너지를 쌓아 올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무인도의 소유주이자 유명 컬렉터인 파트리치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는 “안은미의 매력은 전통 무용과 샤머니즘 등 현대와 전통을 능숙하게 융화시키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산자코모를 찾은 관객 가운데엔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임시 건축물) 작가로 선정된 한국인 건축가 조민석 씨도 있었다. 그는 ‘군도의 공허’를 주제로 새 건축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프랭크 게리 등 다수의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이 거쳐 갔다. 조민석은 “(프로젝트 건축물에) 안은미 선생님을 초청해 공연할 예정이다. 한국의 문화를 재해석해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네치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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