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현실로… 극저온 분자 ‘양자얽힘’ 구현
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3-12-11 03:00 수정 2023-12-11 03:00
미 공동연구팀, ‘사이언스’ 발표
분자를 완전 냉각시켜 재배열
임의로 양자얽힘 상태 만들어, 입자 간 안정적 상호작용 확인
차세대 양자 플랫폼 탄생 기대
미국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연구팀과 미국 하버드대·매사추세츠공대(MIT) 극저온 원자 센터가 이끈 국제공동연구팀은 절대온도인 극저온
환경에서 분자들의 움직임을 완전히 제어해 양자얽힘 현상을 구현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과학자들이 미래 혁신 기술로 주목받는 양자컴퓨터 구동에 필요한 핵심 물리법칙인 ‘양자얽힘’을 극저온 분자로 구현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양자얽힘 구현은 이미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극저온 분자로 양자얽힘을 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연구팀과 미국 하버드대·매사추세츠공대(MIT) 극저온 원자 센터가 이끈 국제공동연구팀은 극저온 상태의 분자를 활용해 양자얽힘 현상을 최초로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7일(현지 시간) 2편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분자 수준에서 양자얽힘이 구현되면 입자 간 상호작용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가 길어져 좀 더 안정적으로 양자 연산을 구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극저온 분자를 차세대 양자기술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IBM이 5일 1000큐비트 양자 칩을 선보인 데 이어 새로운 양자기술 플랫폼 기술도 소개되면서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한 기술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큐비트는 양자컴퓨터가 사용하는 정보 기본 단위다.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하려면 양자 기술의 기반이 되는 물리 법칙인 양자역학의 핵심 ‘양자얽힘’과 ‘양자중첩’이 구현돼야 한다. 하버드대·MIT극저온 원자 센터와 함께 2012년부터 이번 연구에 참여한 채은미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 현상을 동전 던지기에 비유한다.
양자중첩은 앞면과 뒷면이 있는 동전 1개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상태다. 끊임없이 돌고 있기 때문에 어디가 앞면이고 뒷면인지 구분할 수 없다. 각 면은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이기도 하다. 두 면 중 어떤 면이라도 나오게 하면 양자 측정이다. 양자얽힘은 한 단계 나아간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동전 2개가 있을 때 이들이 서로 양자얽힘 상태라면 이 둘의 상태는 무조건 같다고 본다. 동전 하나가 넘어지면서 앞면이 나온다면 다른 동전도 동시에 넘어지면서 똑같이 앞면이 나오는 식이다.
이 같은 원리를 입자에 적용하면 입자 자체는 2개이거나 2개 이상이지만 이 둘의 상태는 하나다. 입자 하나는 달에, 다른 입자는 지구에 있어도 두 입자가 양자얽힘 상태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지구에 있는 입자가 받는 영향을 달의 입자도 똑같이 받는다는 뜻이다. 양자컴퓨터와 양자정보통신 등은 이 같은 양자얽힘과 양자중첩 현상을 활용한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극저온 분자의 양자얽힘 상태를 처음 실험을 통해 만들어냈다. 두 연구그룹은 각각 플루오린화칼슘(CaF) 분자를 절대0도(―273.15도)에서 냉각시켜 분자가 운동에너지를 잃고 완전히 정지한 상태가 되도록 했다. 이 상태에서는 분자들의 상태, 위치, 온도까지 제어할 수 있다. 이어 나노미터 크기의 입자를 집는 ‘광집게’로 분자를 하나하나 집어 배열한 다음 분자 2개씩 짝을 이뤄 양자얽힘 상태를 만들었다.
한 쌍이 된 분자들의 양자얽힘 상태를 이끌어내는 건 분자 간 전기 쌍극자 상호작용이다. 전기 쌍극자는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부호가 반대인 전하를 붙여 놓은 상태다. 분자들은 나란히 붙어 있는 다른 분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상호작용이 생기면서 양자얽힘 현상이 발생한다.
연구팀이 분자에 집중한 이유는 분자가 더 긴 거리에서도 입자 간 상호작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 교수는 “분자는 상호작용의 유효거리가 긴 편”이라며 “쌍극자는 배열 방향만 바꾸면 입자 간 당기는 힘이나 밀어내는 힘을 발생시킬 수 있어 더 다양한 상호작용의 양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양자얽힘 현상이 성공적으로 나타날 확률은 두 연구 그룹 모두 80% 내외에 불과한 한계도 있다. 채 교수는 “양자얽힘 상태를 만들 순 있지만, 그 상태를 얼마나 더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팅 기술 적용을 위해 분자의 개수를 늘리는 것도 숙제다. 미국 정보통신기업 IBM은 5일 1112개 초전도 큐비트로 이뤄진 양자 칩 ‘콘도르’를 공개했다. 큐비트의 수가 많을수록 양자컴퓨팅 성능이 좋아진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의 구현을 위해 적어도 5000개 이상의 큐비트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연구에서 활용한 극저온 분자 1개는 큐비트 1개와 같다. 양자얽힘 현상이 안정적으로 발생하는 극저온 분자 개수를 늘리는 연구가 필요하다. 채 교수는 “앞으로는 더욱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새로운 양자정보 기술의 플랫폼을 만드는 첫 단계를 열었다”고 밝혔다.
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분자를 완전 냉각시켜 재배열
임의로 양자얽힘 상태 만들어, 입자 간 안정적 상호작용 확인
차세대 양자 플랫폼 탄생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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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미래 혁신 기술로 주목받는 양자컴퓨터 구동에 필요한 핵심 물리법칙인 ‘양자얽힘’을 극저온 분자로 구현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양자얽힘 구현은 이미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극저온 분자로 양자얽힘을 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물리학과 연구팀과 미국 하버드대·매사추세츠공대(MIT) 극저온 원자 센터가 이끈 국제공동연구팀은 극저온 상태의 분자를 활용해 양자얽힘 현상을 최초로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7일(현지 시간) 2편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분자 수준에서 양자얽힘이 구현되면 입자 간 상호작용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가 길어져 좀 더 안정적으로 양자 연산을 구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극저온 분자를 차세대 양자기술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IBM이 5일 1000큐비트 양자 칩을 선보인 데 이어 새로운 양자기술 플랫폼 기술도 소개되면서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위한 기술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큐비트는 양자컴퓨터가 사용하는 정보 기본 단위다.
● ‘동전 던지기’에 비유되는 양자 현상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하려면 양자 기술의 기반이 되는 물리 법칙인 양자역학의 핵심 ‘양자얽힘’과 ‘양자중첩’이 구현돼야 한다. 하버드대·MIT극저온 원자 센터와 함께 2012년부터 이번 연구에 참여한 채은미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는 양자 현상을 동전 던지기에 비유한다.
양자중첩은 앞면과 뒷면이 있는 동전 1개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상태다. 끊임없이 돌고 있기 때문에 어디가 앞면이고 뒷면인지 구분할 수 없다. 각 면은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이기도 하다. 두 면 중 어떤 면이라도 나오게 하면 양자 측정이다. 양자얽힘은 한 단계 나아간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동전 2개가 있을 때 이들이 서로 양자얽힘 상태라면 이 둘의 상태는 무조건 같다고 본다. 동전 하나가 넘어지면서 앞면이 나온다면 다른 동전도 동시에 넘어지면서 똑같이 앞면이 나오는 식이다.
이 같은 원리를 입자에 적용하면 입자 자체는 2개이거나 2개 이상이지만 이 둘의 상태는 하나다. 입자 하나는 달에, 다른 입자는 지구에 있어도 두 입자가 양자얽힘 상태를 유지하기만 한다면 지구에 있는 입자가 받는 영향을 달의 입자도 똑같이 받는다는 뜻이다. 양자컴퓨터와 양자정보통신 등은 이 같은 양자얽힘과 양자중첩 현상을 활용한다.
● 극저온 분자 양자얽힘 구현으로 모멘텀 확장
연구팀은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극저온 분자의 양자얽힘 상태를 처음 실험을 통해 만들어냈다. 두 연구그룹은 각각 플루오린화칼슘(CaF) 분자를 절대0도(―273.15도)에서 냉각시켜 분자가 운동에너지를 잃고 완전히 정지한 상태가 되도록 했다. 이 상태에서는 분자들의 상태, 위치, 온도까지 제어할 수 있다. 이어 나노미터 크기의 입자를 집는 ‘광집게’로 분자를 하나하나 집어 배열한 다음 분자 2개씩 짝을 이뤄 양자얽힘 상태를 만들었다.
한 쌍이 된 분자들의 양자얽힘 상태를 이끌어내는 건 분자 간 전기 쌍극자 상호작용이다. 전기 쌍극자는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부호가 반대인 전하를 붙여 놓은 상태다. 분자들은 나란히 붙어 있는 다른 분자의 존재를 감지하는 상호작용이 생기면서 양자얽힘 현상이 발생한다.
연구팀이 분자에 집중한 이유는 분자가 더 긴 거리에서도 입자 간 상호작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 교수는 “분자는 상호작용의 유효거리가 긴 편”이라며 “쌍극자는 배열 방향만 바꾸면 입자 간 당기는 힘이나 밀어내는 힘을 발생시킬 수 있어 더 다양한 상호작용의 양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양자얽힘 현상이 성공적으로 나타날 확률은 두 연구 그룹 모두 80% 내외에 불과한 한계도 있다. 채 교수는 “양자얽힘 상태를 만들 순 있지만, 그 상태를 얼마나 더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팅 기술 적용을 위해 분자의 개수를 늘리는 것도 숙제다. 미국 정보통신기업 IBM은 5일 1112개 초전도 큐비트로 이뤄진 양자 칩 ‘콘도르’를 공개했다. 큐비트의 수가 많을수록 양자컴퓨팅 성능이 좋아진다. 전문가들은 양자컴퓨터의 구현을 위해 적어도 5000개 이상의 큐비트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연구에서 활용한 극저온 분자 1개는 큐비트 1개와 같다. 양자얽힘 현상이 안정적으로 발생하는 극저온 분자 개수를 늘리는 연구가 필요하다. 채 교수는 “앞으로는 더욱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새로운 양자정보 기술의 플랫폼을 만드는 첫 단계를 열었다”고 밝혔다.
박건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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