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40% 보장” 투기판 된 코인판… 5년간 5조 피해

신아형 기자 , 김수연 기자

입력 2023-05-26 03:00 수정 2023-05-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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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드러난 코인시장]
SNS 코인리딩방 들어가보니
“30만원에 종목 추천” 유료가입 유혹… 다단계 브로커-시세조종 세력 판쳐
비상장코인 등 ‘먹튀 사기’ 위험 노출… “투자자 보호할 규제 시급” 지적 나와



“수익률 최소 40% 봅니다. 조만간 호재성 기사가 뜰 종목입니다.”

한 가상자산 관련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23일 본보 기자에게 인공지능(AI) 관련 코인 매수·매도 시점을 알려주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밤 해당 유튜브 채널에 마련된 무료상담 신청란에 연락처를 남긴 지 약 12시간 만에 걸려온 전화였다.

코인 종목 추천을 대가로 금전을 요구하는 업체도 있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유튜브 등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 중이던 한 업체는 “첫 가입자에 한해 한 달 회원권은 30만 원, 3개월 치를 한 번에 끊으면 70만 원”이라며 투자를 끈질기게 권유했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가상자산 대량 보유 의혹이 일면서 온갖 사기와 비리 등으로 혼탁해진 가상자산 시장의 ‘민낯’도 주목받고 있다. 법제화 논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가상자산 시장이 과도한 마케팅과 투자자 유인, 시세 조종 등 불공정거래 행위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투기판’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전투구’ 코인판, 비상장 및 단독 상장 코인 주요 타깃
지금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과 유튜브 등에서는 고수익률을 보장하며 특정 코인 투자를 권유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일정 대가를 받고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투자 조언을 하는 행위는 유사투자자문업에 해당한다. 유사투자자문업체로 영업하려면 금융위원회에 신고해야 하지만, 가상자산의 경우 금융투자 상품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신고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에 시세 조종 세력 등이 가상자산 시장에 흘러들어 오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단톡방에서는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각종 감언이설이 난무하고 있다.

특히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자산) 중에서도 비상장 또는 단독 상장 코인들이 주로 시세 조종 세력들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유동성이 부족해서 소위 ‘작전’을 펼치기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상장 폐지된 가상자산 68종 중 약 71%는 특정 거래소에서만 거래가 지원되는 단독 상장 가상자산이었다.

실제로 3월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배경이 됐던 퓨리에버코인도 2020년 코인원에 단독 상장된 가상자산이었다. 퓨리에버코인 발행사는 거래소 상장 전 현직 공무원, 기업 임원 등에게 사전 발행 물량을 지급해 청탁 로비를 벌였고, 일반 투자자에게는 다단계 방식으로 접근했다. 퓨리에버코인은 시세 조종 행위가 발각돼 결국 이달 5일 상장 폐지됐다.

● ‘러그풀’ 등 사기 위험에 투자자 고스란히 노출
투자자들은 코인 발행자가 투자금을 갖고 사라지는 ‘러그풀(rug pull·소위 먹튀 사기)’ 등 각종 사기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투자자끼리 거래하는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인 ‘디파이(DeFi)’는 보유 가상자산을 담보로 이자를 받거나 레버리지(빚) 투자까지 일으킬 수 있어 사기꾼들의 온상으로 꼽힌다.

‘한국판 도지코인’을 표방한 ‘진도지(JINDOGE)코인’은 투자자를 울린 대표적 코인이다. 2021년 5월 진도지코인 개발자는 조만간 해당 코인을 상장할 계획이라면서 투자자를 모집했다. 진도지코인은 디파이 플랫폼인 유니스왑을 통해 거래됐는데, 상장 하루 만에 개발자가 전체 물량의 15%를 매도한 후 잠적하면서 가격은 90% 이상 급락했다. 당시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액은 20억∼30억 원으로 추정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간 가상자산 불법 행위 피해 규모는 5조2941억 원에 달했다.

● ‘무법지대’ 코인 시장, 규제 도입 시급
전문가들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하루빨리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정엽 블록체인법학회장은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시장법인 ‘미카(MiCA)’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발행인들이 책임질 수 있는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U는 앞서 16일(현지 시간)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관리감독, 소비자 보호 등의 조항을 담은 법안 시행을 확정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불법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수사 당국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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