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구직도 안하고… 청년 50만명 “오늘도 그냥 쉽니다”

세종=조응형 기자 , 세종=박희창 기자

입력 2023-03-21 03:00 수정 2023-03-2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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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새 9.9% 늘어 통계작성후 최대
불황속 눈높이 맞는 일자리 못찾아
40대서도 ‘쉬었음’ 9.5% 늘어
“2년 넘어가면 실직 장기화 경향… 국가 경제 활력까지 떨어뜨려”


나모 씨(26)는 1년 넘게 입사지원서를 쓰지 않은 채 쉬고 있다. 이미 직장 3곳을 다니며 겪은 일들 때문에 일단 취업을 미뤘다. 전 직장 한 곳에선 상사가 조기 출근과 야근을 강요했고, 또 다른 곳에선 임금을 제때 주지 않았다. 외모를 비하하는 말도 들었다. 나 씨는 “현재는 지친 마음과 몸을 회복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급하게 취직해 평생 불행하게 사느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즐거운 일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으면서 이유 없이 쉰 청년이 지난달 50만 명에 육박하며 사상 최대를 보였다. 청년을 포함해 그냥 쉬었다고 답한 사람들이 비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한 비중도 15%를 넘었다. 이들은 사실상 실업 상태이지만,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게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2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쉬었다’고 응답한 15∼29세 청년은 49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보다 9.9% 늘어난 규모로, 2003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 30만 명대였던 청년 ‘쉬었음’ 인구는 2020년 2월 40만 명을 넘어섰다.

통계청 조사에서 ‘쉬었음’은 현재 일하지도 않고 구직활동도 안 하는 비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지난 1주일 동안 주로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에 ‘쉬었다’고 답한 이들이다.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육아, 가사, 학업, 심신장애 등의 이유 없이 그냥 쉰 경우를 뜻한다. 여기에는 1년 내 구직활동을 한 구직단념자도 일부 포함된다. 1년 내 구직활동을 한 적조차 없는 사람은 고용시장에서 이탈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냥 쉬는 청년 인구가 느는 건 좋은 일자리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현재 일자리 시장이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월급이 적고 처우가 안 좋은 일자리만 늘고 있다”며 “경제 상황이 안 좋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청년이 기대하는 근로조건이 기업이 제시하는 조건과 격차가 큰 셈이다.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가 확산되고 있는 것도 ‘쉬었음’ 청년 인구를 늘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청년뿐만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서 ‘쉬었음’ 인구가 늘었다. 노동시장의 허리인 40대에서 그냥 쉬었다는 이들이 전년보다 9.5% 늘며 청년층을 제외하고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60대 이상(7.3%), 50대(2.9%), 30대(2.0%) 등이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달 비경제활동인구에서 ‘쉬었음’ 인구가 차지한 비중은 전년보다 1%포인트 불어난 15.7%였다. 올해 1월(15.6%) 경신한 역대 최고치를 한 달 만에 다시 썼다. 지난달 만 15세 이상 인구에서 ‘쉬었음’ 인구가 차지한 비율은 5.8%였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쉬었음 상태가 1년 반에서 2년이 넘어가면 본인의 근로 의욕이 줄고 낙인 효과까지 더해져 실직 상태가 장기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생산활동이 둔화되고 세수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6개월 넘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장기 실업자는 9만6000명으로 4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세종=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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