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하고 싶어도 못하는데, 과태료 물 판… 임대보증보험을 어이할꼬

김호경 기자

입력 2021-07-23 03:00 수정 2021-07-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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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의무가입 앞 면제사유 뒀지만 임대사업자, 동떨어진 잣대에 분통
공시가 크게 낮은 일부 빌라-원룸, 깡통주택 취급 보험가입 안돼
법인 세입자 있다며 거절 당하기도… 전문가 “획일적 가입기준 문제”



경기도 원룸 19개짜리 다가구 건물을 가진 등록 임대사업자 이모 씨(71)는 임대보증금 보증보험(임대보증보험) 가입을 사실상 포기했다.

인근 기업이 법인 명의로 원룸들을 ‘직원 기숙사’로 쓰고 있는 게 문제였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 모두 ‘법인 세입자’가 있다며 가입을 거절했다. 가입하려면 법인 세입자가 전세권설정 등기를 하거나, 직원이 전입신고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씨는 이 기업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왜 갑자기 이런 걸 요구하느냐”며 모르쇠였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고 사정했지만 이 기업은 “서울 본사까지 승인 받으려면 얼마나 복잡한 줄 아느냐”고 맞섰다. 그는 국토교통부에도 이런 사정을 설명했지만 “방법이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다가구는 원룸별 가입 자체가 불가능해 이대로라면 원룸을 하나씩 계약할 때마다 거의 매달 과태료를 내야 한다. 이 씨는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가입할 수 있는 방법은 마련해줘야 하지 않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 가입하고 싶어도 못하는 보증보험
다음 달 18일 임대보증보험 의무 가입을 앞두고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가입 면제 사유를 추가한 ‘민간임대주택특별법(민특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이달 내 시행될 예정이지만 현장에선 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가입할 수 없는 문제가 여전하다. 임대사업자를 투기의 온상으로 보고 현장과 동떨어진 잣대를 일률적으로 들이대다 보니 집주인과 세입자 간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보증보험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집주인이 세입자 전세금(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보험사가 대신 돌려주는 상품. 정부와 여당은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이는 ‘깡통주택’ 피해를 막겠다며 지난해 8월 18일 이후 새로 등록하는 임대사업자들부터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다음 달 18일부터는 기존 임대사업자들도 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가입하지 않으면 보증금 10%(최고 3000만 원)를 과태료로 내야 한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가입 요건을 충족할 수 없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은행 대출과 전세금을 더한 금액이 주택가격(공시가의 1.2∼1.7배)보다 많거나, 대출이 주택가격의 60%를 넘으면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보증금 사고 위험이 큰 깡통주택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등록 임대주택 10채 중 8채가량인 원룸이나 빌라, 오피스텔 공시가는 시세보다 크게 낮다. 매매 거래가 뜸한 지역에선 공시가가 시세 절반을 밑돈다. 실제 깡통주택으로 보기 어려운 주택까지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가입 요건을 맞추려면 세입자 동의를 받아 보증금을 낮추거나 대출을 갚아야 한다. 경기 오피스텔을 전세로 놓고 있는 임대사업자 강모 씨(60)는 “전세를 반전세로 돌리면 월세를 늘려야 하는데 어느 세입자가 선뜻 동의해주겠냐”며 “대출을 갚을 목돈을 아직 구하지 못해 막막하다”고 말했다.

○ 예외 규정 뒀지만 여당서도 “미봉책”

이달 13일 국회 국토위를 통과한 민특법 개정안에는 면제 사유가 신설됐다. 전·월세 보증금이 5000만 원(서울 기준) 이하이거나 세입자가 직접 가입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료를 집주인이 대신 내주면 임대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요건이 임대보증보험과 동일하다. 은행 대출과 보증금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가입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임대사업자의 등록을 강제 말소할 수 있도록 한 점도 논란이다. 등록이 말소되면 임대사업자의 세제 혜택은 물론이고 의무임대기간과 임대료 인상 등 의무도 사라진다. 시세보다 저렴하게 살던 세입자가 임차료를 시세대로 올려주거나 쫓겨날 수 있는 셈이다.

여당도 보완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홍기원 민주당 의원은 이달 13일 국회 국토위에서 “(가입 불가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지 않으면 어쩌란 말이냐”고 지적했다. 하지만 국토부 관계자는 “억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깡통주택 위험이 큰 사례까지 모두 구제해주면 제도 도입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밝혀 임대보증보험 가입을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일부 악성 임대사업자로 인한 깡통주택 피해를 막겠다며 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건 행정 편의주의적인 접근”이라며 “임대주택마다 사정이 천차만별인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획일적인 가입 기준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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