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미술 공모전서 AI가 그린 그림이 1등상 받아 논란 “예술의 죽음” vs “AI도 사람이 작동”

김민 기자

입력 2022-09-05 03:00 수정 2022-09-0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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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이미지 생성 AI 이용 작품
SNS 등서 “로봇이 올림픽 출전한격 이미지 짜깁기한 고도의 표절” 비판
전문가들은 “피카소도 콜라주 이용 직접 그렸느냐 따지는 것 무의미”


게임디자이너 제이슨 앨런 씨가 지난달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열린 미술대회 ‘디지털아트·디지털합성사진’ 부문에 출품해 1등상을 받은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위 사진). 이 작품과 함께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 두 점(아래쪽 사진)도 대회에 출품했다. 사진 출처 트위터

《美AI가 그린 그림 수상 논란





눈부시게 밝은 원형 창 너머로 보이는 화려한 풍경. 르네상스 시대 예술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으로 미국의 39세 게임디자이너가 한 미술 공모전에서 디지털아트 분야 1위를 차지했다. 알고 보니 직접 그린 게 아니다.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생성된 그림이다. 미국에서 “예술이 죽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의 한 미술 공모전에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제작한 그림이 1등상을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3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CNN에 따르면 게임디자이너 제이슨 앨런 씨(39)는 지난달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에서 열린 미술대회 ‘디지털아트·디지털합성사진’ 부문에 작품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제출해 1위에 올랐다.

문제는 앨런 씨가 작품을 직접 그리지 않고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그림을 ‘생성’했다는 것이다. 트위터에는 ‘예술적 기교(artistry)의 죽음을 목도하고 있다’는 격한 반응이 나왔다. 미 예술계에선 “창의성(creativity)의 죽음”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 “AI 출품, 로봇이 올림픽 출전한 격”
수상작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인물들이 거대한 원형 창이 있는 공간 앞에 서 있고, 이 창 너머로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심사위원 대그니 매킨리 씨는 “르네상스 예술이 연상되는 그림 속 풍경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이 그림은 문장을 입력하면 AI가 몇 초 내 관련 이미지를 생성하는 프로그램 미드저니를 이용해 제작됐다. 앨런 씨는 “고전적 여자가 우주 헬멧을 쓴 모습에서 출발, 꿈에서 나올 법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약 80시간 동안 실험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앨런 씨는 출품 당시 ‘미드저니를 활용했다’고 밝혔지만 일부 심사위원은 해당 그림이 AI로 제작된 것일지 몰랐을 정도로 정교해 충격을 줬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미드저니나 DALL-E 2 같은 AI(프로그램)가 빠르게 성장해 단순한 그림뿐 아니라 복잡한 다이어그램은 물론 보도 사진 같은 이미지도 생성이 가능하다.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는 “로봇이 올림픽에 출전한 격”이라거나 “람보르기니를 타고 마라톤에 참가한 것”, “클릭 몇 번으로 만든 디지털 아트”, “AI 작품을 자신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겹다”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상을 반납하고 공개 사과를 하라”거나 ‘쓰레기 같은 짓’이라는 격한 비난에 8만 명 이상이 ‘공감’을 누르기도 했다. AI가 기존 이미지를 학습해 짜깁기한다는 점에서 ‘고도의 표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AI 작품이 기존 작가들이 공들여 그린 이미지를 활용하기에 큰 반발을 일으킨다고 NYT는 분석했다. 디지털 예술가 RJ 파머는 “AI가 작가 일을 빼앗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 “AI도 결국 사람이 개입하는 것”
최근 국내에서도 AI가 쓴 시들을 토대로 구성한 시극(詩劇) ‘파포스’를 선보이고, AI가 작곡한 음악이 지상파 드라마 OST에 활용되는 등 AI 창작 실험이 한창이다. 이 AI들은 사람의 시나 음악 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미드저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한국 현대미술가 남다현 씨는 “AI가 간단해 보여도 실제로 괜찮은 이미지를 건지려면 AI가 이해할 수 있는 복합적인 문장을 써야 한다”면서 “여러 이미지를 모으는 것은 파블로 피카소가 콜라주를 이용한 것에 비춰 부도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술 전문가들은 AI 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제프 쿤스 같은 현대미술가들이 공장에 의뢰해 작품을 제작하는 상황에서 ‘직접 그렸느냐’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팀 보이드’처럼 로봇을 활용하는 작가도 있는데 작가가 AI 활용을 밝혔다면 문제가 없다”며 “그보다는 이전까지 보여준 작품의 맥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허유림 독립큐레이터는 “AI도 결국 사람이 개입해야 작동한다”며 “현대미술 작가는 고유의 관점과 언어를 발견해내는 사람이고 AI는 도구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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