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정년 늘려야 노인부양 부담 줄어… 우리도 노후 일자리 원해”

김예윤 기자 , 이미지 기자

입력 2023-03-22 03:00:00 수정 2023-03-22 11: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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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적응 사회로]〈2〉청년들이 말하는 ‘60세 정년’
2030세대 80% “정년 늘리거나 없애야”
“현행 60세 은퇴는 사회적 낭비”… 적정 정년으로 평균 65.8세 꼽아


금융회사에 다니는 김모 씨(33)의 아버지는 은행에 다니다가 6년 전 퇴직했다. 환갑을 넘겼지만 “살 날은 긴데 일을 너무 빨리 그만두게 됐다”고 아쉬워하다 최근 주택관리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김 씨는 “아버지 같은 분들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건 사회적 낭비”라며 “아버지가 은퇴했을 때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구나’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장년층의 경제활동이 빨리 끝나버리면 그만큼 젊은 세대가 짊어질 부담도 클 것 같다”며 정년 연장에 찬성한다고 했다.



동아일보가 지난달 13∼15일 취업플랫폼 ‘캐치’에 의뢰해 2030 직장인 및 취업준비생 등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9.8%는 “정년을 현재보다 연장하거나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행법이 정한 정년은 60세다. 응답자 중 69.1%는 “61세 이후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10.7%는 “정년을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년들이 적정하다고 생각한 정년의 평균은 ‘65.8세’였다. 현재(만 60세)보다 5.8세 많다.

정년을 연장할 경우 임금체계 개편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도 강했다. 현재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성과연봉제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설문 응답자의 60.2%는 호봉제와 성과연봉제 중 “성과연봉제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연봉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직무(하는 일)’를 1순위(43.0%), ‘성과(능력)’를 2순위(34.7%)로 꼽았다. ‘연차(경력기간)’는 5.3%에 불과했다.

정년 연장이 기업과 일터에서 효과를 발휘하려면 고령자 재교육이 뒷받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의 ‘제4차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업훈련 참여자 중 50세 이상 중장년층 비율은 실업자와 재직자 모두 2016년 각각 15.4%, 14.0%에서 지난해 11월 29.1%, 27.4%로 늘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년 연장 필요성을 제기했고, 같은 해 6월 기획재정부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중 하나로 정년 연장을 꼽았다. 올 1월에 고용부가 공식적으로 ‘60세 이상 계속고용’ 논의에 착수한다고 발표했고 올해 안에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할 방침이다.


청년들 “정년 늘려야 노인부양 부담 줄어… 우리도 노후 일자리 원해”



“정년 연장땐 신규채용 줄겠지만 고령화로 생산인구 줄어 불가피

호봉제 중심 현행 임금체계, 성과연봉제 위주로 개편해야”








#1. 대기업 연구원 윤모 씨(32)는 지난해 외국 기업에서 공동 기술개발 제안을 받았다. 함께 일하던 50대 상사가 문제였다. 정년이 수년 남은 이 상사는 “취지야 좋은데 우리만의 기존 방식이 우선”이라며 공동 개발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프로젝트는 무산됐다. 윤 씨는 “나이가 들수록 해오던 것만 고집하는 것 같아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2. 광고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정모 씨(33)는 최근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다. 과도한 업무량을 주고선 “하루 만에 해달라”고 한 것. 상황을 지켜본 50대 차장이 “현실적인 선까지 준비하자”며 업무를 조율했고,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정 씨는 “소위 ‘짬’(오랜 근무 경험)에서 나오는 연륜이 분명히 있다”고 했다.


● 선입견 깨고 ‘정년 연장’ 청년 여론 높아
한국 기업에서 이런 사례는 앞으로 더 자주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65세인 노인연령 상향과 함께 정년(60세) 연장 논의가 본격화되면 ‘일하는 고령층’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상반기(1∼6월) 중 계속고용 법제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정년 연장으로 노인 일자리가 늘면 신규 채용이 줄어 청년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지만 실제 조사 결과는 그 반대였다. 동아일보가 취업플랫폼 ‘캐치’에 의뢰해 2030 직장인, 취업준비생 등 1000명을 지난달 13∼15일 설문조사한 결과 본인이 생각하는 적정 정년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60세에서 80세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놨고 대다수(69.1%)는 지금보다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일부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뒤에야 퇴사하는 게 맞다”는 답변도 있었다.

‘정년 연장에 찬성한다’고 답한 청년들은 자신들이 받을 불이익을 인지하고 있었다. 47.0%(470명)가 ‘정년 연장 시 신규 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답했다. ‘임금이 줄고 승진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도 39.7%나 됐다.



● “노인이 빨리 은퇴하면 청년들이 부담”
생산인구는 줄고 건강한 고학력 노인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고령 인력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청년층 사이에도 형성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은 2025년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되고, 2040년이면 대졸자가 노인의 33% 이상이 된다. 회사원 정재연 씨(30)는 “정년 연장이 내키지 않지만 저출생, 고령화로 생산 인구가 줄어드니 기존 인력으로 노동 총량을 늘려야 하는 건 이해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당장의 불이익보다 다가올 미래의 혜택이 더 클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년이 연장되면 가까운 미래에 노인 부양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게 청년들 생각”이라고 해석했다. 청년들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일하길 원했다.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노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일을 하겠냐’는 질문에 응답 청년들의 55.3%는 “매일 규칙적으로 근무하는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답했다. “(놀면서) 주어진 연금만으로 생활하겠다”는 응답자는 15.7%에 그쳤다.


● 문제는 임금… “직무-역량 중심으로 바꿔야”

정년 연장의 필요성은 역대 정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는 2012년 당시 ‘70∼75세 정년’을, 박근혜 정부는 2015년 ‘70세 정년’을 제시했지만 구상에 그쳤다. 2015년만 해도 국내 기업들의 평균 정년은 55∼57세였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2016년 시행되면서 ‘법정 정년 60세’가 확립됐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65세 정년 연장을 추진했지만 청년 구직난 우려와 20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이 세대 간 ‘밥그릇 전쟁’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는 연공성이 강한 현행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존 임금체계를 유지하면서 정년이 연장된다면 기업은 고연차-고임금 근로자를 계속 쓰는 대신에 청년 채용을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년 연장 근로자가 1명 늘어날 때 고령층(55∼60세) 고용은 0.6명 늘고, 청년층(15∼29세) 고용은 0.2명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본보 설문 응답자의 85.1%는 본인이 미래에 정년 연장의 혜택을 입게 된다면 임금을 삭감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최영기 전 노동연구원장은 “정년 연장이 임금피크제와 함께 논의된 것은 현재 연공서열 위주 체계에서 고령자 고용이 어렵다는 걸 모두 인정한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근속 연한이 아니라 직무, 역량이 임금을 결정하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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