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대통령’ 파월의 연임 일성…“인플레 잡겠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입력 2021-11-23 13:53:00 수정 2021-11-23 14:08:12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차기 연준 부의장에 ‘비둘기파’ 레이얼 브레이너드
경제학 학위 없는 파월, 300명 경제학 박사들 4년 더 이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사진 AP 뉴시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에 재지명된 제롬 파월 연준 의장(68)은 미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인플레이션 대응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차기 연준 의장에 파월 현 의장을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말 임기가 종료되는 파월 의장은 앞으로 4년 더 미국 중앙은행을 이끌게 됐다. 파월 의장과 함께 유력한 차기 의장 후보로 거론되던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59)는 차기 연준 부의장으로 지명됐다. 중앙은행 수장인 연준 의장은 미국의 통화정책을 관장하며 글로벌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자리다.

파월 의장은 이날 회견에서 “경제가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지만 도전과 기회는 항상 여전하다”면서 “전례 없는 경제 재가동이 팬데믹 효과와 맞물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병목현상,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높은 인플레이션이 음식 주거 교통 등 필수품의 높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가계에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경제와 강한 노동시장을 지원하는 한편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 사진 AP 뉴시스
뒤이어 발언한 브레이너드 부의장 지명자도 “나는 연준에서 미국인 근로자들을 내 업무의 중심에 놓고자 한다”며 “이는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모두를 포용하는 경제 성장을 지원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기자회견을 앞두고 발표한 성명을 통해 “파월 의장과 브레이너드 박사는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고 가격을 안정화하며 완전 고용을 달성함으로써 이전보다 우리 경제를 강력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미국이 현재 당면한 가장 큰 경제 정책 과제가 물가 안정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3일에도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방안을 직접 발표할 예정이다.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 조지타운대에서 법학을 각각 전공한 파월 의장은 1980년대부터 변호사 신분으로 월가 주요 투자은행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재무부 차관을 지냈고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준 이사직에 오른 후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16대 연준 의장에 임명됐다. 경제학 박사들이 300명 이상 몰려 있는 연준 조직에서 경제학 학위가 하나도 없는 수장이 오른 것은 당시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제로금리와 자산매입 프로그램 등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통해 미국 경제를 무난히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화 정책에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되는 파월 의장은 규제 완화를 선호하는 공화당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진보·보수 정부에서 두루 기용된 특유의 유연함 덕분에 상원 인준도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파월 의장과 함께 연준 의장 후보로 꼽히던 브레이너드 이사가 연준의 ‘2인자’인 부의장에 지명된 것은 민주당내 진보 세력의 목소리를 감안해 연준 내부의 균형을 맞춘 결정으로 풀이된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연준이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고 강한 금융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선명한 진보 색채를 보여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내 좌파들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 공화당은 브레이너드 이사를 강력히 반대해 왔고, 바이든 대통령도 청문회 통과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그의 의장 지명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을 지냈으며 그의 남편은 현 정부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이다. 금융계에선 파월 의장보다 더 ‘비둘기파’적인 브레이너드 이사가 연준을 이끌게 되면 미국이 금리인상에 더 뜸을 들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해 왔다.

파월 의장의 재지명으로 미국은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연준 의장을 연임시키는 관례도 이어가게 됐다. 통상 연준 의장은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연속성을 감안해 대통령이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 별다른 흠결이 없으면 연임도 허락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임명한 앨런 그린스펀의 경우 4개 행정부를 거치며 18년 동안 자리를 지켰고 그의 전임자와 후임자인 폴 볼커, 벤 버냉키도 연임에 성공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만이 전임 행정부가 임명한 재닛 옐런 당시 의장을 유임시키지 않고 교체한 바 있다. 공화당원인 파월의 재지명은 향후 각종 법안 처리를 놓고 공화당의 협조를 받아내기 위한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이날 뉴욕 증시는 파월 의장의 재지명 소식에 상승세를 이어가다가 막판에 지수가 갑자기 떨어지며 혼조세로 마감했다. 특히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은 1.3%나 떨어졌다. 이날 증시는 파월 의장이 계속 안정적인 리더십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에 상승 국면을 이어갔지만 ‘파월 2기’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예상보다 빨리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나중에는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