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Trend & Insight]선택과 집중, 참 좋긴한데… 위기엔 약했다

명욱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vegan_, 정리=장재웅 기자

입력 2021-01-20 03:00:00 수정 2021-01-20 11:38:31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코로나19가 바꾼 1위의 왕관…‘아사히’와 ‘기린’으로 본 日맥주시장

아사히 슈퍼드라이 맥주의 제품 디자인 변천사.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맥주 업계 4위에 불과했던 아사히 맥주는 맥아 함량을 줄인 ‘아사히 슈퍼드라이’를 선보이며 1990년대 들어 일본 맥주 시장을 선도했다. 특히 맛 외에도 ‘쿨한 이미지’의 패키지로 일본 맥주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진 출처 비어팔레트 홈페이지(beerpalette.jp)
기업은 보통 성과가 좋은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해 강점을 극대화한다. 하지만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오히려 이런 선택과 집중 전략이 독이 되기도 한다.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요소에 발목이 잡히기 때문이다. 일본 맥주 시장에서 20년 가까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오던 아사히 맥주도 그런 케이스다. 아사히 맥주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큰 폭의 매출 하락을 경험하며 일본 시장 1위 자리를 기린 맥주에 내주게 됐다. 그리고 그 원인에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있다.

○ 슈퍼드라이의 등장

아사히 맥주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 내에서 엄청난 마케팅 성공 사례로 회자됐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일본 맥주 업계에서 이른바 ‘듣보잡’ 취급을 받던 아사히가 드라마틱한 반전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아사히라는 단어는 원래 ‘아침에 뜨는 해’라는 의미인데 80년대 중반까지 아사히 맥주가 인기가 없어서 ‘지는 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다 1986년 ‘아시히 슈퍼드라이’를 내놓으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아사히 맥주는 당시 소비자 조사를 통해 기존의 일본 맥주들이 맥아 100%를 사용해 맛이 너무 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따라서 맥아 비율을 줄이고 쌀이나 옥수수 등을 첨가해 가벼운 맛이 나는 맥주를 선보이게 된다. 제품 디자인도 차별화했다. 기존의 일본 맥주들이 일본풍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중시한 반면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메탈릭한 디자인과 폰트를 강조한 쿨한 이미지의 제품을 선보여 새로운 맥주, 달라진 맛이라는 느낌을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완전히 탈바꿈한 아사히 슈퍼드라이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일본 맥주 시장의 판도를 바꾼다. 인기가 너무 높았던 나머지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신문에 사과문을 발표한 적도 있을 정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과문 덕분에 오히려 아사히의 인기가 더욱 올라가 한때 일본에서 아사히 맥주 품귀 현상이 일기도 했다는 점이다.

아사히 슈퍼드라이의 인기에 당시 경쟁사인 기린 맥주, 산토리 맥주, 삿포로 맥주 등도 ‘드라이 맥주’라는 유사 제품을 내놓았다. 슈퍼드라이의 인기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OB 슈퍼드라이, 크라운 슈퍼드라이 등이 탄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사 제품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업계 4위에 불과했던 아사히 맥주는 80년대 후반 2위를 달성하고, 1998년에는 당당히 일본 맥주 1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 일본의 맥주 시장은 아사히가 앞서 나가는 가운데 간간이 기린이 추격하는 모양새로 전개된다. 순전히 슈퍼드라이라는 제품력 하나로 승부를 봐서 성공한, 일본 기업의 마케팅에 있어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소품종 대량 생산 마케팅의 표본이기도 했다.


○ 코로나19와 선택과 집중의 실패

선택과 집중과는 반대된 롱테일 전략으로 사업다각화를 진행한 결과 코로나19 사태의 수혜주가 된 기린. 동아일보DB
공고하던 1위 자리가 흔들리게 된 계기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이었다. 코로나19는 아사히 맥주만의 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사히 맥주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이유는 이 브랜드가 오랜 기간 선택과 집중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아사히 맥주는 요식업 시장에 집중했다. 고급 맥주의 매출 50%가 요식업 매장에서 발생했다. 기린 등 경쟁사의 요식업 시장 매출은 전체의 30% 정도 수준이었다. 여기에 슈퍼드라이 한 가지 제품에만 집중했다. 고객들이 식당에서 아사히 슈퍼드라이를 마셔보고 그 맛에 익숙해져 집에서도 아사히 슈퍼드라이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사히의 전략이었다. 이 선택이 결과적으로 패착이 됐다.

실제 일본 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장 강화됐던 지난해 5월 기준으로 아사히 슈퍼드라이의 매출은 80%나 감소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5일 발표한 아사히 맥주의 1∼9월 실적을 살펴보면, 맥주를 포함한 주류 매출은 5554억 엔(약 5조88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5% 감소했고 영업이익(매출이익―판관비) 역시 599억 엔(약 6350억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23% 이상 줄었다.

○ 롱테일 법칙을 따른 기린 맥주

이에 반해 기린 맥주 등 경쟁사들은 요식업 시장 외 발포성 유사 음료 등 저가 맥주로의 카테고리 확장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특히 기린 맥주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롱테일 법칙에 따른 전략을 추구했다. 소외된 20%의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 아래 꾸준히 사업 다각화를 진행한 것이다. 이 전략의 일환으로 기린은 공장마다 다른 이름을 지었다. 현재 기린 맥주의 일본 내 공장은 총 9곳. 일본에서 유통되는 기린 맥주는 각각 그 맥주가 생산되는 지역의 이름을 따서 제품명을 짓고 있다. 즉, 요코하마에서는 요코하마 기린 맥주를 마실 수 있으며, 후쿠오카에서는 후쿠오카 기린 맥주를 마실 수 있다. 맥주에 지역성을 넣어주며 차별화를 진행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로열티를 이끌어 내려고 한 전략이다. 또한 홈술 및 혼술이 늘어날 것을 예측해 생맥주 렌털 서비스를 월 8250엔(약 8만7000원)에 선보였고 단순한 라거 생맥주부터, IPA, 흑맥주 등 다양한 생맥주를 즐길 수 있게 한 것도 기린 맥주만의 전략이었다. 또한 소비자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저가 제품을 꾸준히 출시한 점도 코로나19 위기에 빛을 발했다. 덕분에 기린 맥주는 오랜 기간 아사히에 내줬던 일본 맥주 시장 1위 자리를 되찾게 된다.

명욱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vegan_life@naver.com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