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등급 떨어질라” 개인채무자들 원금상환 유예신청 ‘손사래’

신나리 기자

입력 2020-09-14 03:00 수정 2020-09-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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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프리워크아웃’ 시행 5개월, 신청 624건뿐… 갈수록 건수 줄어
까다로운 신청조건도 발목… 저금리 대환대출로 눈 돌려


A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다음 달 말까지 무급휴직 신세가 됐다. 10월까지 월급의 절반 정도가 나오는 정부지원금으로 버텨야 하지만 생활비는 물론 매달 45만 원씩 나가는 자동차 할부금에 신혼부부 디딤돌 대출까지 고정 지출을 계산하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는 지난달 중순에야 뒤늦게 신용대출 원금 상환을 미뤄주는 코로나19 프리워크아웃 특례 신청 제도를 알고 가까스로 연체 위기를 모면했다. A 씨는 “한 차례 고비는 넘겼지만 이 기록이 3년간 남아 신용도에 영향을 준다고 하니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개인들의 신용대출 원금 상환을 6개월에서 최대 1년간 유예해주는 프리워크아웃 특례 제도가 시행된 지 5개월에 접어들었지만 신청 실적이 갈수록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를 잘 몰라서 연체 위기에 직면하거나 저금리에 상환 유예 대신 더 낮은 금리 대출로 갈아타는 식으로 우회로를 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까닭으로 보인다.

13일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코로나19 프리워크아웃 특례신청 현황에 따르면 제도가 실시된 4월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원금 상환을 유예받은 가계신용대출 건수(서민금융대출 포함)는 총 624건으로 집계됐다. 일평균 4.9건, 매달 평균 100건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총 신청액은 약 136억9030만 원이었다.

월별 신청 건수는 시행 초기인 5월 212건, 6월 214건에서 7월 128건, 8월 67건으로 뚝 떨어졌다. 신청액도 5월 41억4850만 원에서 6월 43억3940만 원으로 소폭 올랐다가 7월 35억7290만 원, 8월 16억850만 원, 9월(3일까지) 2100만 원으로 감소세다.

반면 코로나19 사태 충격으로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2분기 채무조정 신규 신청자는 모두 3만4666명으로 전년 동기(3만124명)보다 15.1% 늘었다. 이는 개인들의 부채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프리워크아웃 특례 신청이 저조한 배경을 두고 은행권에서는 까다로운 신청 조건을 들고 있다. 실제로 상환 유예를 적용받으려면 가계생계비를 뺀 월 소득이 매달 갚아야 하는 빚보다 적거나, 대출 만기가 1개월 미만으로 임박해야 한다. 여기에 프리워크아웃에 수반되는 신용등급 하락 리스크도 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향후 사정이 나아졌을 때 신규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 한도를 확대하는 데 제약이 생긴다.

아울러 최근 은행들이 앞다퉈 내놓는 대환대출 상품도 무시할 수 없다. 낮은 금리로 타행 신용대출 상품을 갈아타도록 홍보하고 있어 개인들이 번거로운 프리워크아웃 특례보다 당장 연체를 모면할 수 있는 대출 상품에 눈길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프리워크아웃 특례 신청 건수가 많다고 해서 상황이 좋다고, 신청 실적이 저조하다고 해서 제도가 잘못 운용되고 있다고 단순히 판단할 수는 없다”며 “코로나19 위기로 상환 능력이 더 안 좋아졌기 때문에 다른 신용대출 상황은 어떤지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주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프리워크아웃은 은행 대출보다 고금리의 제2금융권 대출을 쓰는 개인 차주들이 많다”며 “금융사가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갖추되 원금 상환 유예 외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고민해야 특례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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