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강한 ‘무균주 달리아’ 개발… 농업서 꽃피운 제2 인생

고양=박희창 기자 , 상주=최혜령 기자 , 세종=김형민 기자

입력 2022-08-16 03:00 수정 2022-08-1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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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함게하는 스마트 농업 애그테크로 여는 미래 일자리]
2022 A Farm Show-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
年 매출 5000만원 송준호 대표
미술 박사서 첨단농업 전문가로


송준호 대표는 “지난해보다 더 나은 ‘무균주 달리아’를 만들었다”며 웃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돈을 아끼려고 작은 업체에 맡겼는데 결국 300만 원만 날렸죠. 내가 직접 하는 게 낫겠다 싶어 아는 교수님 연구실에서 중학교 생물 교과서를 찾아보면서 식물 조직배양의 기본부터 배웠어요.”

10일 경기 고양시 외곽 ‘단비농장’에서 만난 송준호 대표(42)는 지난해부터 ‘무균주 달리아’를 판매하고 있다. 해외 논문을 찾아보면서 여러 약품을 0.1mg 단위로 테스트해 얻어낸 달리아다. 그는 꺾꽂이(삽목·식물의 잎이나 줄기를 잘라 번식시키는 것)로 증식한 달리아가 병에 잘 걸리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년 반 넘게 매달렸다. 애그테크(첨단기술을 농산물 생산에 적용)를 통해 만든 무균주 달리아를 팔아 지난해 번 돈은 5000만 원. 올해는 약 4000m²의 농장을 만들어 더 많은 달리아 생산에 나선다.

송 대표는 학사, 석사, 박사 모두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교수 임용이 힘들어져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20대 때부터 취미로 해 오던 ‘식물 키우기’밖에 없었다”며 “이 정도면 ‘성덕(성공한 덕후)’ 아니냐”고 말했다. 그가 20년 동안 취미 삼아 모은 달리아 품종만 200개에 달한다. 그는 “좋아서 하는 일이지 누가 시켰다면 못 했을 것이다. 농업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맨땅’에 헤딩하며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24∼26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2022 A Farm Show(에이팜쇼)―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를 열고 농촌에서 첨단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청년 농부와 기업의 혁신기술을 소개한다. 내년 고향사랑기부제 시행을 앞두고 일본의 성공 사례와 국내 준비 상황도 짚는다.


“8개 센서로 포도밭 관리”… 가족 3명이 5940m² 포도농사 거뜬



〈1〉신기술 무장한 청년 농업인들
‘귀농귀촌 1번지’ 상주 정양마을
익산 농업회사 ‘별곡’ 한정민 대표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성공적인 귀농의 꿈을 일구는 청년 농업인들이 있다. 경북 상주시 정양마을에서 귀농 교육을 받고 있는 신동와, 최성경, 양수경 씨(왼쪽부터). 상주=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포도밭에 설치한 8개의 온도, 습도 센서가 기상과 내부 데이터를 측정해 한눈에 보여줘요. 데이터를 취합해두면 앞으로도 포도 농사에 활용할 수 있는 귀한 정보가 됩니다.”

경북 상주시 모동면 정양마을에서 샤인머스캣을 재배하는 최성경 씨(39)가 포도밭 한쪽에 설치된 계기판을 집어 들며 말했다. 밭에 설치한 온도 센서와 배수펌프 등을 기상 상황에 따라 작동시키면 포도 생육에 적합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 최 씨는 포도농사 3년 차로 올해 첫 출하를 앞둔 ‘초보 농부’지만 자동화 설비를 활용해 가족 3명이 축구장 1개 면적에 육박하는 5940m²의 포도밭을 관리하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농작물을 가꾸는 청년 농업인들이 ‘스마트 농업’의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 ‘농촌 살아보기’ 통해 주민들과 소통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상주에 아무 연고가 없던 최 씨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박종관 이장(50)의 도움이 컸다. 24년 전 서울을 떠난 귀농 1세대인 박 이장은 ‘귀농귀촌 1번지’로 불리는 정양마을을 일군 일등공신이다. 박 이장은 귀농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주거지와 농지 마련부터 주민들과의 관계 형성까지 돕고 있다. 이에 힘입어 정양마을은 2017년 ‘행복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문화·복지부문 금상(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지난해부터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귀농인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박 이장은 사물인터넷(IoT)과 ICT를 활용하는 방법도 마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다. 그는 “개폐기(공기순환장치) 시설과 폐쇄회로(CC)TV,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정도로도 농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각종 시설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업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나 시스템을 정부 차원에서 보급하면 농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기술교육 등을 활용한 덕에 정양마을의 청년 농업인 상당수는 3, 4명의 적은 인력으로도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상주로 귀농하기로 결심하고 올 4월부터 본격적인 귀농 교육을 받고 있는 양수경 씨(45)는 농식품부와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양 씨는 “포도농사에서 가장 바쁜 시기인 4∼9월을 체험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마을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땅을 구하는 등 귀농에서 가장 힘든 단계를 버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농촌에서 살아보기 사업은 귀농·귀촌을 원하는 도시민이 농촌에서 최장 6개월까지 살면서 일자리, 생활을 체험하고 지역 주민과 교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은 영농 재배기술과 실습, 청년 창업교육 등을 받을 수 있다. 또 임시 주거지를 제공받고, 월 15일 이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월 30만 원의 연수비도 지원받는다.

정양마을에서는 귀농인들의 재배기술 향상도 돕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향인 이곳으로 와 부모님의 포도농장 일을 돕고 있는 신동와 씨(22)는 매주 농식품부에서 운영하는 ‘2040세대 농업인 스텝업 기술교육’에 참여해 샤인머스캣 재배법을 연구하고 있다. 도시에서 대학생활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지낸 그가 농장으로 눈을 돌린 것은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그는 “전문가들이 농장 상태를 진단해주고 현장에서 컨설팅도 진행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 자체 개발 기술로 새로운 수익원 창출
농업회사법인 ‘별곡’의 한정민 대표가 도정기를 이용해 쌀 껍질을 벗겨 백미를 만들고 있다. 한 대표는 쌀겨(미강)에서 헬스보충제의 원료를 분리하기 위해 ‘3단 그물망’을 손수 개발했다. 한정민 대표 제공
청년 농업인들의 스마트 농업은 신기술을 농업에 새롭게 접목하는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전북 익산시에서 농업회사법인 별곡을 운영 중인 한정민 대표(27)는 얼핏 농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원심 분리기’를 이달 중 들여오기로 했다. 이 낯선 장비를 도입하는 건 쌀 도정작업 후 남는 찌꺼기인 쌀겨(미강)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한 대표는 회사의 주력 사업인 도정업을 하며 쌀겨를 포함한 찌꺼기가 가축 사료로 팔리는 데 주목했다. 도정 과정에서 버려지는 쌀겨에서 단백질 추출물을 제대로 분리해 낼 수 있다면 적지 않은 수익원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쌀겨의 단백질 추출물은 헬스 보충제나 화장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관건은 쌀겨에서 단백질 성분을 추출하는 기술. 한 대표는 이를 위해 볍씨를 도정할 때 나오는 부산물의 크기를 모두 분석했다. 그리고 구멍 크기가 다른 3개의 그물을 통해 쌀겨를 분리하는 ‘3단 그물망’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진행하는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돼 1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한 대표는 원심분리기로 쌀겨에서 단백질 원료를 뽑아내기 위해 전남 바이오융합진흥원에서 관련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는 “내년 초부터 추출한 단백질을 제조업체에 납품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미 여러 거래처를 확보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고양=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상주=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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