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반도체 新공장 필요인력 1만여명… 충원하려면 15년 걸릴판

홍석호 기자

입력 2022-06-10 03:00 수정 2022-06-1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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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 인력난] “반도체 전문인력, 매년 6000명 부족”
학부 졸업생 年7000명 필요한데 전공생 600여명뿐… 90% 모자라
업계 “비전공자 교육 한계” 호소… 배터리-AI 등 미래산업도 비슷
韓총리 “첨단산업 대학정원 확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사진제공 SK하이닉스
“반도체 기술 개발은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고 성과를 낸 뒤 바로 다음 단계 프로젝트팀을 모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핵심 인력들로 돌려 막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반도체 기업 관계자 A 씨)

“공대 출신이라 해도 반도체 수업 몇 개 들은 비전공자들이 반도체를 얼마나 잘 이해하겠습니까. 회사에서 최소 3년을 교육해야 현장에서 겨우 제 역할을 하는 겁니다.”(반도체 기업 관계자 B 씨)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한국 반도체산업 현장의 현주소다. 반도체 기업들은 교육 현장이 배출하지 못한 반도체 전문 인력들을 자체적으로 교육해왔다. 하지만 산업의 성장 속도를 따라잡기에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기술이 미세화하면서 생산 공정관리나 연구개발(R&D) 등에서 전문 인력의 필요성이 빠르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산업계에 따르면 매년 반도체 기업들의 채용 필요 인원은 약 1만 명으로 추산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같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중견 반도체 장비 및 설계업체들을 모두 더한 수치다.

이 중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게 학부 졸업생(7000∼7500명)이다. 석·박사 연구원을 돕고, 생산라인 관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전국 대학에서 반도체를 전공한 학생은 한 해 300여 명에 불과하다. 계약학과를 포함해도 600여 명 수준이다. 현장 필요 인력의 90%가량인 6000여 명이 매년 부족한 셈이다.

이 같은 인력난은 전기자동차, 배터리,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미래 성장동력 산업에서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고 있다. 삼성, SK 등 10대 그룹이 지난달 향후 5년간 30만 명 이상을 새롭게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교육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실현하기 힘들 거란 얘기까지 나온다.

삼성전자 직원들이 경기 화성캠퍼스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연 현장 간담회에서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위해 수도권과 지방 대학 정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며 “필요하다면 교육기관 양성에 재정이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5개 부처가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 육성에 나서기로 했다.

반도체업계 인력난 ‘비상사태’… R&D 맡을 석박사 배출 年100명선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계약학과’도 대학마다 학기당 20~30명만 졸업
“인재육성 속도, 기업성장 못따라가”
배터리업계 “배터리 아는 신입 없어”… 바이오-디스플레이-AI도 인력난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엔지니어들이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SK는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20조 원을 투자해 메모리반도체 생산 공장(팹) 4곳을 짓는다. 2027년 상업 가동이 목표다. 이곳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은 SK하이닉스 전체 직원(3만135명·지난해 말 기준)의 절반인 1만5000여 명. 팹에 투입될 반도체 전문 인력만 1만2000여 명에 달한다.

SK하이닉스는 매년 1000명 안팎의 직원을 뽑고 있다. 이 속도대로라면 반도체 클러스터가 필요로 하는 직원을 뽑는 데만 15년이 걸리는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M15)와 경기 이천(M16) 생산라인도 확장하고 있어 인력난은 사실상 ‘비상사태’로 접어들고 있다.
○ “배울 학생도, 가르칠 교수도 없다”

9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들도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 투입할 전문인력 부족을 메울 방법이 요원하다. 반도체 업계는 매년 1만여 명의 인력을 채용하는데 이는 목표 인원보다 1000여 명 적은 수준이다.

인력의 질을 따지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첨단기술 연구개발(R&D)을 주도할 석·박사급은 매년 100여 명 배출될 뿐이다. 7000∼7500명 수준인 학사 중에서도 반도체학과나 계약학과를 졸업한 인력은 600여 명, 반도체 과목 이수자까지 합쳐도 1200명 미만으로 추정된다.

기업들은 결국 사내 대학을 통해 신입사원 대다수를 자체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공정과 직무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대 졸업자도 최소 3년, 길게는 5년의 교육을 받아야 현장에서 한 사람 몫을 해낸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주요 대학들과 만들고 있는 계약학과는 근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계약학과 대부분이 석·박사 과정인 탓에 학기당 확보할 수 있는 인력이 학교마다 20∼30명뿐이기 때문이다. 한 반도체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년간 이미 인력을 30% 늘렸다. 엄청나게 뽑은 것이지만 기업이 성장하는 속도를 사람 뽑는 속도가 못 쫓아가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들의 인력 부족은 중견·중소 반도체기업으로 옮아가고 있다. 작은 기업에서 조금이라도 경력이 쌓인 직원들이 대기업으로 줄지어 이직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반도체기업은 인문계열 졸업생까지 연구직으로 채용하는 실정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현재 대학은 반도체 전공 학생도 적지만 가르칠 교수도 부족하다”며 “대만이 연 1만 명의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데 한국은 최소 5000명은 배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배터리, 바이오, 디스플레이도 인력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유럽경영대학원의 분석을 인용해 이날 발표한 ‘2021 세계 인적자원 경쟁력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교육과 실제 직업의 연계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30개국 중 꼴찌였다. 실제 일자리 수요와 인력 공급이 맞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첨단산업 현장에서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인력난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세대 산업이라 불리는 배터리업계에서도 “연구소 신입 직원 중 배터리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한탄이 나온다. BBC(배터리, 바이오, 반도체) 중 하나인 바이오업계도 삼성, SK에 이어 롯데, GS 등이 신규 진출하면서 R&D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와 인력 풀이 겹치는 디스플레이 업계는 충원은커녕 이탈자 막기가 최대 과제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만큼 관심을 못 받는 다수 첨단산업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인공지능(AI)은 희소성이 큰 전문 인력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뛴 지 오래다. 한 대기업 임원은 “한 기업이 박사급 인재 여러 명을 채용하면 다른 기업의 항의를 받아야 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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