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보폭 넓히는 이재용… 재계 “삼성 위기감 반영”

곽도영 기자

입력 2022-06-01 03:00 수정 2022-06-0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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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상 시상식에 6년 만에 등장… 지난달 尹대통령 취임식 참석후
바이든 美대통령-인텔 CEO 등 잇단 회동으로 활발한 경영행보
반도체 공급망 위기-인수합병 등 글로벌 산업지형 변화에 위기의식
반도체 동맹 등 현안 직접 챙길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행보가 점차 가속화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및 만찬 참석을 시작으로 공식 석상에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 이 부회장은 6년 만에 삼성호암상 시상식에도 참석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빠르게 재편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빠르게 넓혀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31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6년 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이 부회장은 31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2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정장 차림으로 도착했다. 이 부회장의 호암상 시상식 참석은 2016년 이후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오후 8시경까지 이어진 수상자들과의 만찬 자리에도 함께해 축하와 격려를 나눴다. 삼성은 “사법리스크로 인한 경영 제약이 아직 이어지고 있지만 수상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6년 만에 시상식에 참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및 외빈 초청 만찬 참석을 시작으로 대내외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20일엔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방문 및 생산라인 견학에 동행했다. 21일에도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퀄컴 등의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났다. 30일엔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를 삼성 서초사옥에서 맞아 양사 간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은 최근 2026년까지 5년간 450조 원이라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혔다. 이 중 300조 원을 반도체에 투입해 메모리, 팹리스(반도체 설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3대 분야에서 반도체 초강대국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대회에서 투자 배경에 대해 “그냥 목숨 걸고 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가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행보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글로벌 산업 지형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미국 출장을 다녀온 지난해 11월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니 마음이 무겁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맞물려 촉발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위기는 미국과 중국을 양 축으로 하는 자국우선주의 경쟁에 속도를 붙였다. 삼성으로서도 메모리 부문에선 중국에 추격당하고 있고, 파운드리 사업은 대만 TSMC에 뒤처진 상황이다. 퀄컴과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팹리스 시장에선 존재감이 미미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생산기술(파운드리)을 보유한 삼성으로서는 설계능력(팹리스)을 갖춘 미국 기업들과의 동맹전선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형 투자 결정이나 중장기 관점의 경영적 판단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는 이미 대형 인수합병(M&A) 시도가 빈번하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설계 1위 기업 영국 ARM은 여전히 ‘핫한’ 매물이다. 인텔, SK하이닉스에 이어 퀄컴까지도 인수 의사를 밝혔다. 인텔의 이스라엘 파운드리 기업 타워세미컨덕터 인수(54억 달러),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부문 인수(90억 달러) 등 실제 이뤄진 계약도 많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1∼3월)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 126조 원을 쥐고 있으면서도 수년째 의미 있는 M&A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취업제한 등 제약 속에서도 이 부회장이 최근 공식 행보에 연이어 나서는 건 삼성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위기감을 반영한다”며 “글로벌 파트너들과의 대형 딜을 이뤄내기 위해 이 부회장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매년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코 콘퍼런스’에 6년 만에 참석할지도 주목된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의 CEO들이 초청받는 행사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재판 일정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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