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尹 ‘친원전’ 정책, K-원전 신뢰 높여”…체코 ‘8조 수주 잭팟’ 터질까

두코바니=구특교기자

입력 2022-05-30 15:26 수정 2022-05-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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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안전과 직결된 산업이라 신뢰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이전 정부는 국내 원전은 안 짓고 수출한다고 하니 사실 신뢰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번 새 정부는 국내 원전을 짓기로 한 만큼 신뢰를 확보해 원전 수출 경쟁력이 더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17일(현지 시간) 오전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차량을 타고 2시간 가량을 이동해 도착한 마을 트레비치. 이곳에 위치한 원전제품 전문업체인 누비아(NUVIA)의 알레쉬 도쿠릴 이사는 한 시간의 인터뷰 동안 원전 산업에 있어 ‘신뢰성(Reliability)’이란 단어를 10번 넘게 강조하며 이 같이 말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원전 투자에 힘을 싣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며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내세웠다. 한국 원전 수출을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과 지난 5년 간 고사 위기에 처했던 원전 기업 등 ‘K-원전’이 세계 무대로 재도약할 기회도 커지고 있다.


● EU도 다시 친원전으로 회기, ‘K-원전’ 수출 기회도 커져




이날 트레비치에서 20km를 이동해 두코바니 마을로 들어서자 노란 유채꽃밭 사이로 하얀 수증기를 내뿜는 원전 4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는 체코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사수하기 위해 건설 예정인 1기 원전(1200MW 이하급)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한국(한수원)과 프랑스(EDF), 미국(웨스팅하우스) 3개국이 경쟁 중이다. 사업비 규모는 8조 원이다. 2024년 공급사가 확정되고, 2036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한다.

체코 정부 관계자와 현지 업체, 지역 주민들은 한 목소리로 한국 새 정부가 내세운 ‘친원전’ 정책이 원전 경쟁력과 신뢰성을 높이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고 평가했다. 두코바니 지역협의회 비체슬라프 요나쉬 의장은 “한국의 과거 (탈원전 정책)은 한수원이 원전을 해외에 수주하는데 장애 요소였다. 정부 지지가 없이 프로젝트 추진이 어려웠던 만큼 (원전 정책 변화는) 매우 좋은 소식”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친원전’으로 돌아선 유럽의 움직임도 한국 원전 수출에 있어 기회가 될 수 있다. EU는 이달 2월 친환경 경제활동으로 분류하는 ‘그린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포함시켰다. 석유·가스의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던 EU 국가들은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자각하며 원전 건설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올해 프랑스는 2030년까지 원전 발전에 10억 유로 투자를 발표했고, 영국은 2050년까지 전력 구성의 25%를 원전으로 달성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체코도 2020년 37%인 원자력 비중을 46~58%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원자력 전담 차관직까지 신설해 체코 원전 사업을 진두지휘하도록 했다. 체코의 석유·가스 수입량 70% 이상은 러시아에 의존한다. 체코 산업통상부의 원자력에너지 담당 토마쉬 에흘레르 차관은 “체코는 내륙 국가라 신재생 자원이 부족해 원전 비중을 높여야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라며 “체코의 전력 독립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에너지원이 바로 원전”이라고 설명했다.


● 원전 수출, ‘대통령 비즈니스’로 전방위 지원 나서야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 등에 원전 3기 건설을 추가로 검토 중이다. 한국이 이번 수주를 따내면 이 또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된다. 한수원은 체코 현지화와 기술력, 가격 경쟁력을 차별화 전략 등 ‘본질’에 집중하고 있다. 한수원은 2009년 두산에너빌리티가 인수한 체코 현지 터빈생산 기업인 두산 스코다파워 등과 협업을 맺고 현지화 전략을 펴고 있다. 스코다파워 강석주 사장은 “두코바니 신규원전수주는 유럽으로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성공 모델이 될 수 있어 굉장히 중요한 사업”이라며 “한수원과 체코의 현지기업들이 협업하는 ‘팀코리아’ 시너지 효과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쟁 상대들이 만만치 않다. 유럽 현지 원전 사업을 담당하는 두산에너빌리티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프랑스는 EU 내 에너지 공급망을 등을 앞세운 정치·외교력이 막강해 쉽지 않은 싸움이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강점이 있다. 유럽 현지에서 만난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이 2009년 수주한 UAE 바라카 원전 수출 성공 사례를 하나 같이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UAE 사업을 통해 정해진 예산과 공기 내에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한국의 건설 역량을 전 세계에 입증해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라며 “원전 예정지의 아이스 하키 팀 후원과 소외계층 방역물품 지원 등 차별화된 수주 활동도 펼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두코바니 외 현재 한국이 근접해 있는 원전 수출 사업은 이집트 엘다바 원전이다. 러시아의 JSC ASE사는 이집트 원자력청에서 원전 4기(1200MW급)를 따냈는데, 한국은 지난해 12월 터빈 건물과 옥외 시설물 등 계약의 단독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최종 수주가 확정되면 연내 곧바로 사업 착수가 가능해 한국의 원전 수출 생태계가 본격 가동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폴란드 원전 6기(6~9GW급), 네덜란드 2기(1500MW급), 카자흐스탄 2기(1000~1400MW급), 루마니아와 필리핀 건설재개 사업 등 해외 수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원전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직접 앞장서 적극적인 수주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향후 탈원전은 없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제공해야 한국 원전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고도 말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한국의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은 이미 확인됐기 때문에 원자력 외에 문화·교육·안보 등 다른 분야와 결합한 세일즈가 필요하다”라며 “한수원만 움직여선 안 되고 범정부 지원을 통한 ‘대통령 비즈니스’로 나서야 승산이 있다”라고 제언했다.



두코바니=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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