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딥러닝 기술로 암 정복될까요” 공학박사-전문의가 뭉쳤다

김하경 기자 , 김선미 기자

입력 2022-03-02 03:00 수정 2022-03-02 04:10

|
폰트
|
뉴스듣기
|
기사공유 | 
  • 페이스북
  • 트위터
[Question & Change]〈4〉 ‘루닛’ 백승욱 의장-서범석 대표

‘루닛’의 서범석 대표(왼쪽)와 백승욱 의장이 ‘루닛 인사이트’를 모니터에 띄우고 웃고 있다. 루닛 인사이트는 딥러닝 기술 기반의 인공지능(AI)이 흉부 엑스레이나 유방촬영술로 찍은 영상을 분석해 폐 질환과 유방암을 진단하는 의료 솔루션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대개 20년 정도 경험을 갖춘 의사는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그만큼 경험의 축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갖는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빠른 속도로 더 많은 데이터를 습득하면 진단도 더 정확해지지 않을까’.

2013년 설립된 국내 의료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루닛(Lunit)’은 이런 질문을 갖고 그 답을 AI에서 찾았다. 루닛의 목표는 뚜렷하다. AI로 암을 정복하겠다는 것, 서범석 루닛 대표(39)는 “루닛의 AI가 지금까지 학습한 데이터가 약 400만 건”이라며 “이는 흉부 엑스레이는 150년, 유방촬영술은 120년의 경험을 가진 전문의(醫) 수준”이라고 말했다.
○ 딥러닝 AI가 폐암과 유방암 진단
루닛의 대표 제품은 2018년 나온 ‘루닛 인사이트’다.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AI가 흉부 엑스레이나 유방촬영술로 찍은 영상을 분석해 폐 질환이나 유방암을 진단한다. 루닛 인사이트의 판독 정확도는 97% 이상이다. 흉부 엑스레이와 유방촬영술을 판독하는 과정에서 30% 이상의 위음성률(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암일 확률)이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루닛 인사이트는 국내 톱10 병원 중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7곳이 사용 중이다. 40여 개국, 500여 곳의 의료기관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의료 분야의 전문성을 살리고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루닛 창업자인 백승욱 의장(39)과 서 대표는 AI 연구 인력뿐 아니라 전문의와 과학 자문단을 모으는 데 초기부터 정성을 기울였다. 무명(無名)의 스타트업이 세계적 전문가들과 약속을 잡는 것은 대체로 어렵다. 그래서 해외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부지런히 참석해 석학들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거나 함께 걸으면서 회사를 소개해 나갔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에 거주한 경험이 풍부한 서 대표가 회사의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현재 루닛의 직원 중 15%는 외국인이다.
○ 공학박사와 암에 관심 많던 의사의 만남
백 의장은 KAIST 전자공학과 01학번, 서 대표는 생명과학과 00학번인데 나이는 서른아홉 살 동갑이다. 백 의장이 KAIST 박사과정에 있던 2013년 창업한 루닛에 서 대표가 2016년 합류했다. 이들은 KAIST 시절 방송동아리를 함께했다. 당시 백 의장은 연출과 편집, 서 대표는 아나운서였다.

KAIST 졸업 후 서울대 의대 본과로 편입해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하던 서 대표는 환자 진료보다는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따로 창업을 준비하다가 ‘AI로 암을 정복하자’는 백 의장을 만나 의기투합했다. 이때 서 대표가 가장 고려한 것은 ‘루닛이 과연 글로벌한 생각이 있는가’였다.

사실 루닛은 설립 때부터 목표가 글로벌 회사였다. 백 의장이 대학원 선후배들과 창업할 당시 KAIST에는 글로벌 1등만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연구소 동료들이 주로 취업하는 회사가 삼성전자나 애플 같은 1등 회사였기 때문이란다.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창업을 위한 시간이었어요. 딥러닝이 등장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 ‘딥러닝 기술의 AI로 풀 수 있는 세상의 문제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급한 마음 안 갖고 공부하면서 인간적으로 깊게 친한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사업의 힘든 시기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백 의장)
○ “AI는 인간을 돕는 도구”
루닛의 다음 목표는 암 진단(루닛 인사이트)을 넘어 암 치료로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암 환자에게서 떼어낸 조직세포를 AI가 분석해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주는 솔루션인 ‘루닛 스코프’를 올해 상반기(1∼6월) 미국에서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 진출을 위해 지난해 7월 미국 바이오·헬스케어 기업 ‘가던트헬스’로부터 300억 원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하는 등 지금까지 16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올해 기업공개(IPO)를 한다는 소식에 ‘몸값’이 오르고 있다. 회사의 성장을 바탕으로 수익을 키워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만약 의료 AI가 발전을 거듭해 의사들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일부의 우려에 대해 백 의장과 서 대표는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의사가 분석해야 할 데이터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는데 사람 눈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AI는 복잡한 데이터를 잘 분석할 수 있도록 인간을 도와주는 도구”라고 말한다. 비행기가 비행할 때 10%는 조종사가 맡고 나머지 90%는 자동 비행하는 것처럼 많은 일을 AI가 하더라도 최종 판단은 의사의 몫이라는 것이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가급적이면 하지 말라고 한다. 다만 창업을 안 해보고 삶을 마감하면 너무 분해 못 견딜 것 같다면 그땐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백 의장) “열정이 없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 단,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팀을 꾸려 잘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서 대표)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라이프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