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사무실 ‘귀하신 몸’… 공실률 0%대

정순구 기자

입력 2022-02-03 11:41 수정 2022-02-0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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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이후 서울 강남권 대형 빌딩의 품귀 현상이 심해지면서 서울의 상업용 부동산 거래액이 오히려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주요 도시와 다른 이례적인 현상으로 재택근무 확산이 비교적 더딘 데다 주택 시장 규제에 따른 풍선 효과가 나타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한국투자증권이 2일 글로벌 부동산리서치 회사인 리얼캐피털애널리틱스(RCA) 데이터를 바탕으로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2020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0개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거래액을 분석한 결과 서울이 총 193억2800만 달러(약 23조4000억 원)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3.7% 늘어난 수준으로 서울의 증가율이 분석 대상인 10개 대도시 중 가장 높았다.

전 세계 주요 대도시들은 같은 기간 미국 워싱턴(―53.7%)과 뉴욕(―40.5%), 프랑스 파리(―34.8%), 독일 베를린(―32.3%), 일본 도쿄(―18.8%) 등 서울과 반대의 추이를 보였다. 영국 런던(4.2%)을 제외하면 서울이 예외적인 호황을 누린 셈이다.

안성용 한국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코로나19로 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으며 서울의 상가 공실률이 높아진 것과 달리 기업 고객 위주인 강남권 대형 빌딩 공실률은 사실상 제로(0)가 됐다”며 “강남 빌딩 수요가 높아지니 거래도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빌딩 입주, 강남선 1년 기다리는데… 강북선 임대료 면제 내걸어
직원 50여 명 규모의 A스타트업은 최근 서울 강남에 가까스로 사무실을 구했다. 2년 전 직원 4명으로 출발한 회사가 급성장하면서 지난해 초부터 대형 사무실 물색에 나섰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결국 일부 빌딩에 ‘대기번호’까지 걸어두고 직원들은 공유오피스를 전전했다. 그러다가 1년 전 점찍어뒀던 빌딩에서 기존 임대 계약이 종료됐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계약금을 바로 지불할 준비까지 마친 뒤 일사천리로 계약을 진행했다.

서울 오피스 시장에서 ‘강남발(發) 오피스 품귀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스타트업 위주로 핵심 인재 영입과 투자금 유치를 위해 강남권 사무실 수요가 높아지면서 대형 빌딩 공실률이 사실상 ‘제로(0)’로 떨어지는 등 사무실 임차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2일 글로벌 부동산컨설팅회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와 교대 일대(강남·서초구·GBD)에서 연면적 3만3000㎡ 이상인 대형 빌딩 공실률은 0.6%로 직전 분기(1.6%)보다 1%포인트 떨어졌다. 부동산업계에서 입주 기업 이사 등으로 빚어지는 자연공실률을 통상 5%로 보는 점을 감안하면 강남권에 빈 사무실이 거의 없는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 강남권뿐 아니라 여의도(영등포구·YBD)와 을지로·광화문(중구·종로구·CBD) 일대까지 합한 ‘서울 3대 도심’의 대형 빌딩 공실률도 이 기간 7.3%에서 5.2%로 떨어지는 등 자연공실률과 가깝게 됐지만 강남권 사무실난이 더 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을지로나 여의도 일대 일부 빌딩은 암암리에 입주 1년 동안 임대료를 면제해주는 일명 ‘렌트 프리’ 계약이 여전한 등 강남권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강남권 대형 사무실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은 스타트업 위주로 회사 성장에 필수인 핵심 인재를 영입하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액이 11조5733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스타트업 상당수가 강남권에 자리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뉴욕이나 독일 베를린 등에서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빠르게 늘며 사무실 수요가 급감한 반면 서울은 재택근무가 완전히 정착되지 못하면서 사무실 수요가 유지된 것으로 풀이된다. 안명숙 루센트블록 부동산 총괄이사는 “투자 자금을 대주는 벤처캐피털(VC)들이 대부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등 강남에 몰려 있어 VC와의 미팅을 위해서라도 강남에 사무실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크다”고 전했다.

사무실을 못 구해 아예 건물 매입에 나서는 사례까지 나온다. B스타트업 대표는 지난해 말 자신의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이면도로의 5층짜리 건물을 사들였다. 빌딩 중개법인에 컨설팅까지 받아봤지만 B사가 원하는 조건의 건물을 임차하려면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답을 받고 건물 매입으로 선회한 것이다.

강남권 빌딩 매매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 1단지와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에 아파트 한 채씩을 보유 중인 김모 씨(62)는 최근 서울 강남에서 50억 원 안팎의 빌딩을 사려고 중개법인을 찾았다. 그는 “아파트 한 채를 팔면 최소 20억 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며 “매년 1억 원 넘는 보유세를 내느니 주택에서 빌딩으로 갈아타는 게 낫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종합부동산세 강화 등 주택시장의 잇따른 규제로 시중 유동성이 상업용 부동산으로 향했다고 본다. 빌딩중개법인 에이플러스리얼티의 이진수 전무는 “빌딩 매매가가 많이 올랐는데도 임차 수요가 높고 시세차익도 커 매매 수요는 오히려 높아졌다”며 “강남권 빌딩은 과거 연 3%대의 임대수익률도 낮다는 인식이 많았는데 요새는 2% 안팎의 수익률만 나와도 매수하려는 수요가 많다”고 전했다. 글로벌 부동산리서치회사인 리얼캐피털애널리틱스(RCA)는 “서울 주택시장에 투자됐던 자금이 (정부의) 세금 정책 변화로 빌딩으로 선회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강남권 대형 사무실 품귀가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올해 강남권역에 신규 공급되는 ‘A급 오피스’ 물량이 5만2283㎡로 지난해(18만2784㎡)의 ‘3분의 1’인 등 공급이 급감하기 때문이다. 올해 준공할 예정인 강남권 물량도 이미 입주 계약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용준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 운용총괄 상무는 “강남권 오피스는 대로변은 물론이고 뒷골목에 있는 꼬마 빌딩까지 공실이 해소되고 있다”며 “기존 건물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으로 대형 빌딩 대규모 공급이 이뤄지는 2026년까지 강남 빌딩 수급 불균형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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