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르노, 부품 재활용해 중고차 개조…탄소 줄이고 일자리 지켰다

플랭=김윤종 특파원 , 김도형 기자 , 신동진 기자 , 임현석 기자

입력 2022-01-03 03:00 수정 2022-09-21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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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르노, 새 차 공장에 헌 차 개조공장…“가솔린차를 전기차로 전환 연구 진행”
[2022 새해특집]모두를 위한 성장 ‘넷 포지티브’
1부 기업, 더 나은 세상을 향하다 〈1〉 르노의 ‘중고차 재활용 실험’


프랑스 르노 플랭 공장 내부의 ‘중고차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중고차 개조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도입된 이 공정은 단순한 차량 수리가 아니라 기존에 없던 부품을 새로 장착하거나 공간을 개조해 사실상 새로운 차량으로 재탄생시킨다. 르노 제공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2시(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서쪽으로 36km 떨어진 플랭에 있는 르노의 자동차 공장. 크리스마스를 앞둔 연말 휴가 기간이었지만 대형 트럭들이 바쁘게 출입구를 오가며 공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237만 m²(약 71만6900평) 부지의 이 공장은 르노그룹의 프랑스 본토 공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1952년부터 현재까지 생산한 자동차만 1800만 대에 이른다. 전형적인 자동차 공장으로 보이는 이곳에선 지금까지 어느 자동차 회사도 하지 않은 거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9월 르노는 이 공장의 기존 생산라인 일부를 ‘중고차 공장(Factory VO)’으로 바꿨다. 단순히 일부 부품을 바꾸거나 새로 도색을 하는 수준이 아니다. 기존에 없던 기능이나 공간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방식의 대규모 개조가 이뤄진다. 범퍼 등은 떼어 재활용하고 수명을 다한 전기차 배터리를 재생해 사용한다. 앞으론 자동차 뼈대까지 개조하는 수준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현재 하루 180대의 중고차를 개조할 수 있는데 내년까지 연 4만5000대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방 스갈 르노 브랜드 세일즈 디렉터는 “최근 기술은 중고차를 심지어 네 번까지도 새롭게 재탄생시킬 수 있다”며 “내년까지는 운행 중이던 내연기관차를 전기차로 개조하기 위한 연구개발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진과 변속기를 핵심으로 하는 내연기관차를 배터리와 모터 중심의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새 차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다.

지속가능한 자동차 제조업에 도전하는 르노의 변신은 경영 환경의 큰 변화를 보여준다. 과거엔 매출, 이익만 따졌다면 이제는 ‘당신 회사 덕분에 세상이 더 나아졌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사회 전반과 미래세대 등 모든 이해 관계자와 지구·환경에 이로운 성장을 추구하는 ‘넷 포지티브(Net Positive)’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난해 ‘넷 포지티브’라는 책을 펴낸 폴 폴먼 전 유니레버 최고경영자(CEO)는 “이 같은 지각변동에서 뒤처지는 기업은 어마어마한 실존적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며 “사회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젊은 세대는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탄소 규제에 내연기관 車 판매 줄어…주민들 경제 버팀목 사라질까 우려
르노CEO “환경 가치로 활로 모색”
윈스턴 에코스트래티지스 대표 “인류 번영없이 기업 번창할순 없어”



“극단적 기후현상이 잦아지며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란 걸 다들 실감합니다. 정부가 탄소 배출이 많은 차에 과징금을 부과하니 다들 새 차 사기를 부담스러워 하죠.”

르노의 플랭 자동차 공장 일대에서 만난 40대 직장인 토마 씨는 “르노 같은 대형 자동차업체가 ‘중고차 공장’을 시도하는 게 신기하고 인상적”이라고 했다. 탄소배출 절감을 위한 각종 규제 때문에 내연기관 신차 판매가 줄어들고, 수십 년간 지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공장이 혹시 문을 닫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점을 반긴 것이다.


기후 재난에 거대 차 공장 지속가능성 우려

지난해 7월 독일 벨기에 등 서유럽 폭우, 8, 9월 그리스 등 남유럽 폭염과 산불로 수백 명이 사망했다. 이상기후가 자주 발생하면서 유럽에선 탄소 감축 목표를 강제하는 조치가 강화되고 있다.

플랭 공장 인근 카페에서 만난 40대 지역 주민 로베르 씨는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이 프랑스 사회의 화두”라면서 “우리 지역 공장이 이를 선점해 나갈 수 있다면 자부심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플랭 공장이 있는 이블린주는 파리부터 흐르는 센강의 한 줄기가 지나가서 주민들은 수질 등 환경 이슈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30대 주부 마리 씨는 “아무래도 가깝게 센강이 있다 보니, 공장의 친환경적인 변화에 지역사회가 공감해주는 거 같다”고 전했다.

다만 신차보다 중고차, 전기차 개조에 집중하면서 당장은 지역 내 일자리가 감소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었다. 플랭 공장에서 일한다는 한 주민은 “공장의 변화가 외부에서 보기보다 복잡한 문제가 있다”며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플랭 공장 관계자는 “프랑스에서 신차 판매보다 중고차 거래의 수요가 커지고 있고, 특히 미래 시장에서 중고 전기차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중고차 생애주기의 모든 단계에서 시장의 가치를 발견하는 전략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넷 포지티브’, 모두를 위해 성장하는 기업으로

신차 생산·판매에 집중하는 자동차 업계에서 르노 같은 대형 제조업체가 중고차 개조 사업에 나서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르노의 시도는 지속가능한 사업 기회를 찾는 동시에 환경적 책임까지 강화하는 해법으로 풀이된다.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최고경영자(CEO)는 “기존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새로운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가치 창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르노그룹의 시도와 지역사회에서의 평가들은 결국 모두를 위한 성장이라는 ‘넷 포지티브’가 기업 활동에서 필수적인 상황이 됐음을 보여준다. 김종대 인하대 녹색금융대학원 주임교수는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치는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 투자의 물줄기도 바뀌고 있다. 글로벌지속가능투자연합(GSIA)은 2020년 6월 말 기준으로 전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투자 규모를 35조 달러(약 4경1650조 원)가량으로 추산했다. 2030년에는 130조 달러(약 15경4700조 원) 이상으로 확장될 것으로 예측된다. 앤드루 윈스턴 에코스트래티지스 대표는 “넷 포지티브는 ‘하면 좋고 안 해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며 “지구와 인류, 전 생물종의 번영 없이 기업만 번창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페라리 가죽 의자도 친환경 소재로 바꿔


보라뇨 伊 알칸타라 S.p.A 회장 “친환경 활동은 비용 아니라 투자”


동물복지와 탄소중립을 강조한 알칸타라 소재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SVJ 로드스터(위 사진)와 BMW i8 로드스터 라임라이트 에디션의 시트와 실내 인테리어 곳곳에서 천연가죽을 대체했다. 알칸타라 S.p.A 제공
“친환경 활동은 기업에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탈리아의 소재 기업 ‘알칸타라 S.p.A’(알칸타라)의 안드레아 보라뇨 회장(사진)을 지난해 12월 20일 화상으로 만났다. 알칸타라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 카의 시트와 실내 인테리어에 쓰이는 천연 가죽을 대체하는 부드러운 비단 느낌의 친환경 고급 소재로 유명해진 기업이다.

보라뇨 회장은 윤리적, 환경적 가치에 집중한 것이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급 천연 가죽을 사용하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 이미지를 바꾼 과정에 대해 “처음엔 알칸타라 소재가 단순히 가죽을 대신하는 소재로 시장에서 통했지만 ‘동물을 죽이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밀고 나가면서 동물친화의 가치를 더한 제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천연가죽 대신 알칸타라 소재를 사용한다는 행위 자체가 경제적인 측면이나 가치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정신에는 가죽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디자인, 열정, 창의력, 장인정신 등에 알칸타라의 기술을 접목했죠.”

알칸타라는 동물복지에 더해 탄소배출 감축을 추진해 왔다. 2009년 이후 계속 탄소중립 기업으로 인증받고 있다. 그는 “2009년에 탄소중립을 시행하는 것은 다른 기업과 비교해 상당히 급진적이었지만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친환경 활동은 거짓이나 과장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보라뇨 회장은 친환경 경영에 따른 비용 부담을 묻는 질문에 “친환경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추가 비용이 들지만 결국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평판이라는 보상으로 되돌아온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0년 7820만 유로(약 1050억 원)였던 알칸타라 매출은 2014년 1억2390만 유로(1670억 원), 2018년 2억420만 유로(2750억 원)로 꾸준히 성장했다. 페라리와 맥라렌, 애스턴마틴, 마세라티의 자동차 모델 외에도 삼성전자, 애플, 스와로브스키 등과 함께 제품을 만들었다.

알칸타라는 1000곳이 넘는 원재료 공급업체들까지 모두 환경, 인권, 노동 기준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보라뇨 회장은 “2026년까지 완전히 식물에서 추출한 식물유래 폴리머를 개발하겠다는 목표와 출처를 증명할 수 있는 폴리에스테르 재활용이 우리의 중요한 미래 계획”이라고 밝혔다.


넷 포지티브(Net Positive)
모두에게 이로운 공존과 공정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을 뜻한다. 제품과 경영이 고객과 주주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 미래세대와 지구 환경을 포함하는 모두의 복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플랭=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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