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들의 해맞이 날갯짓… 질퍽한 개펄에 숨은 산해진미 아시나요[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글·사진 강진=전승훈 기자

입력 2022-01-01 03:00 수정 2022-01-01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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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겨울 별미 여행
강진만의 명물 ‘짱뚱어 갯벌탕’
탐진강 하류서 만난 겨울별미
음식문화 번성했던 병영성


전남 강진만에서 겨울철 진객인 천연기념물 큰고니가 새해를 맞아 바닷바람을 가르며 비상하고 있다. 강진만은 넓게 펼쳐진 갯벌과 갈대숲에 먹이가 풍부해 각종 철새들이 월동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강진문화관광재단 제공

《쌀쌀한 겨울. 전남 강진만 생태공원의 갯벌. 새해를 맞아 흰색 큰고니들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힘차게 날갯짓을 한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시베리아에서부터 날아와 이곳에서 월동하는 겨울의 진객(珍客)인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떼다. 해변에 가득 차 있는 2500여 마리의 고니들이 합창을 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백조의 호수’를 방불케 한다. 강진만은 1131종의 멸종위기 동식물이 서식하는 남해안 최고의 생태서식지이자 겨울철 별미(別味)를 즐길 수 있는 맛의 고장이다.》

○ 강진만의 명물, ‘짱뚱어 갯벌탕’
산낙지, 멍게 등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강진의 마량 포구.
월출산과 탐진강, 다도해가 연결된 남도의 끝자락. 사람의 다리 모양으로 갈라진 땅덩어리 틈으로 강진만 바닷물이 깊숙이 파고든다. 강진의 옛 이름은 탐진(耽津). 탐라(옛 제주도)로 가는 나루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탐진나루는 강진의 청자를 수출하거나 한양으로 보내는 출발점이었고, 제주와 뭍을 잇는 창구였다. 제주도에서 싣고 온 말이 나루에 내려졌고, 귀양 가는 선비가 탐진나루에서 제주도로 가는 돛단배에 올라탔다. 강진만 남쪽의 마량(馬良)이 대표적인 포구다. 마량은 제주도에서 온 말이 한양으로 올라가기 전까지 육지 적응과 함께 살찌워 보내는 역할을 했다. 최근 가수 임영웅이 TV프로그램에서 ‘마량에 가고 싶다’는 노래를 불러 전국에서 몰려온 팬들로 강진이 들썩였다. 요즘 마량의 횟집에는 임영웅 얼굴이 새겨진 플래카드가 지천이다.

1978년 청정수역으로 지정된 강진만 생태공원에는 66만1000m²(약 20만 평)의 갈대 군락지와 청정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꼬막, 맛조개, 붉은발말똥게, 기수갈고둥뿐 아니라 장어, 숭어, 도미, 굴 등 천혜의 수산물이 풍부하다. 그중에서도 강진의 대표적인 명물은 바로 짱뚱어다.

지난여름 강진만 생태공원을 찾았을 때 갯벌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짱뚱어를 만났다. 눈이 툭 튀어나온 짱뚱어는 가슴에 붙은 짧은 지느러미를 이용해 걷고, 뛰도, 춤추고, 심지어 날아오르기도 한다. 갯벌 속에 7개의 구멍을 뚫어놓고 순식간에 이 구멍으로 들어갔다가, 저 구멍으로 튀어 오르는 짱뚱어의 점프 공연을 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12월에 갔더니 분주했던 갯벌이 조용하다.

강진만생태공원 갯벌에 살고 있는 짱뚱어.
짱뚱어가 11월에 서리가 내리자 겨울잠을 자러 갯벌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세상에 5개월 동안 겨울잠을 자는 생선이 있다니! 짱뚱어의 별명이 ‘잠퉁이’인 이유다. 짱뚱어는 내년 봄에 벚꽃이 필 때쯤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짱뚱어를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맛을 보기 위해 강진읍내에 있는 ‘갯벌탕(짱뚱어탕)’ 전문 음식점을 찾았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짱뚱어의 눈이 튀어나온 모양을 두고 ‘철목어(凸目魚)’라고 불렀다. 갯벌 위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고살기 때문에 오염된 곳에서는 살 수가 없고 양식도 되지 않아 100% 자연산으로만 존재한다. 단백질 함량이 소고기보다 높아 기운을 차리게 만드는 전설적 음식으로 불린다. 실제 짱뚱어탕을 시켜 보니 추어탕과 비슷하게 생겼다. 짱뚱어의 살을 발라내고 머리뼈를 갈아 시래기와 된장을 넣어 펄펄 끓인 탕이다. 죽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독특한 향이 느껴지는 ‘갯벌탕’이다. 짱뚱어튀김은 빙어나 미꾸라지튀김과 비슷했는데 씹을 때 훨씬 고소한 맛이 났다. 짱뚱어는 전골로도, 구이로도, 회로도 먹으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강진 갯벌탕’ 주인 이순임 할머니(71)는 무려 58년 동안이나 강진 갯벌에서 직접 뻘배를 밀어가며 짱뚱어를 잡아왔다. 짱뚱어는 ‘훔치기 낚시’라고 해서 미끼를 끼우지 않고 7m 길이의 낚싯줄을 일순간 던져 바늘로 낚아채서 잡는다고 한다. 자칭 타칭 ‘짱뚱어 박사’로 통하는 이 할머니는 “장어는 뱀처럼 기어만 다니지만 짱뚱어는 토끼처럼 뛰고, 새처럼 날아다니는 물고기”이라며 “온몸에 단백질이 83%를 차지하는 데다 피부호흡으로 햇볕을 쬐고 살기 때문에 비린내도 나지 않는 최고 보양식”이라고 말했다.


○강진의 겨울철 보양식
강진 앞바다를 구경하려면 마량부터 가우도까지 낚싯배를 타면 좋다. 선상에서 낚시를 하면 자연산 장어가 쏠쏠하게 올라온다. 가우도 꼭대기에는 강진을 상징하는 대형 청자조형물이 절경을 뽐낸다. 특히 석양 때 찾아가면 섬과 다리에 주홍빛 노을로 젖어드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가우도 북동쪽 해상협곡에 놓여 있는 출렁다리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마량에 있는 이국적인 카페 ‘벙커’ 앞에서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그네.
마량포구의 서중어촌체험마을에 있는 이국적인 카페 ‘벙커’는 요즘 강진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열대 야자수 사이에 매달린 그네를 탄 채 노을이 지는 바다를 감상하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싱싱한 강진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를 마시는 모습은 그대로 액자 속 인생 포토샷이 된다.

탐진강과 강진만 바닷물이 오가는 지역에서 잡히는 ‘목리 장어’ 구이.
강진의 겨울철 바다 보양식으로 ‘목리 장어’와 ‘회춘탕’도 빼놓을 수 없다. 목리는 강진만 북쪽 꼭대기와 연결된 탐진강 하류 마을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라는 목리 장어는 민물장어(뱀장어)의 기름진 맛과 바닷장어(붕장어)의 쫄깃함까지 갖춘 최고의 장어로 꼽힌다. 20세기 초에는 목리에 장어통조림 공장이 있었을 정도로 광주 전남지역의 최대 장어 생산 가공 유통 지역이었기 때문에 ‘목리이장이 면장보다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토종닭과 문어, 전복, 한약재가 들어가는 회춘탕.
강진 회춘탕은 한약재로 우려낸 육수에 토종닭과 문어, 전복 등을 넣은 보양식이다. 회춘탕의 역사는 600년 전 마량포구에 조선 수군이 진영을 설치한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강진읍내의 ‘은행나무식당’에서 맛본 회춘탕은 문어가 너무 커 냄비가 넘칠 듯했다. 12가지 한약재뿐 아니라 몸에 좋다는 것은 육해공에서 다 가져다 넣은 탕이라 이름처럼 입에 한 숟가락 넣을 때마다 젊어지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멜과 병영성 불고기
강진에는 조선시대 번성했던 두 마을이 있다고 한다. 남쪽 해안의 마량과 북쪽 내륙의 병영이다. 두 마을 모두 군사도시로 시작했다. 마량에는 수군 진영이 구축됐고 병영은 전라병영성이 설치됐던 호남 최대의 군사도시였다. 한때 2만 명이 살았다는 병영성의 9만9000m²(약 3만 평) 규모의 문화재구역 내에는 성루 4개와 담벽, 해자가 있고 남쪽 성문 인근에 현대식 탱크가 세워져 있어 이채롭다.

연탄불에 구워 주는 병영성 불고기.
병영성에서는 17세기 남해안에 표류했던 네덜란드 상인 하멜이 구금생활을 하기도 했다. 전라병영성에서 풀려난 하멜 일행은 마을에 터 잡고 네덜란드식 흙과 돌이 섞인 토석담 쌓기를 알려준다. 병영마을 돌담 산책로는 국내 유일의 네덜란드 마을길인데 담 안쪽 집은 기와집이거나 초당이다. 병영시장에는 병영성의 화려했던 음식문화가 전해진다. 연탄불에 구운 양념돼지불고기가 대표적이다. ‘병영불고기’는 연탄불 석쇠에 구워 불맛이 확 나지만 고기는 매우 부드럽다. 강한 연탄불에 구워 내니 외피의 기름만 빠질 뿐 한 입 씹으면 입안에서 육즙이 터진다. 강진의 묵은지에 싸 먹거나 토하젓을 한 젓가락 올려 먹으면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글·사진 강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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