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 해외에선 어떻게 바라볼까?②[떴다떴다 변비행]

변종국 기자

입력 2021-12-11 12:00 수정 2021-12-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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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아시아나 통합, 해외승인 ‘감감무소식’…왜?①[떴다떴다 변비행]>에 이어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 승인을 심사하고 있는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은 결합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별 문제가 없이 통과를 시켜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것이었다면 1년 가까이 판단을 끌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해외 주요 경쟁 당국들이 아직까지 본 심사에 착수도 하지 않았다는 건 살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의미일수 있습니다.

오늘은 EU와 미국 경쟁 당국이 과거에 내렸던 항공사 결합 관련 판결 케이스를 통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일지, 어떤 문제를 제기할지 예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너희가 가진 것 내놔라.
항공업계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심사 과정이 험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해외 경쟁당국이 과거 주요 항공사들의 결합 및 통합을 심사할 때 일종의 ‘조건부 승인’을 주로 해왔기 때문입니다. 조건부 승인이라는 건 기업 결합 승인을 하기 전에, 경쟁 제한 및 소비자 효용 감소가 우려되는 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제책 또는 해결책을 미리 논의를 하는 겁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다른 경쟁자들의 진입이 가능하도록 슬롯(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이착륙 할 수 있는 권리)이나, 공항 게이트, 운수권들을 축소 또는 반납하는 등의 제한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허가를 해 줄테니 뭔가를 내놔야 한다는 거죠.


●2013년 아메리칸항공과 US 에어웨이 합병

과거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2013년 이뤄진 아메리칸항공(AMR)과 US 에어웨이 통합에서도 미국 법무부는 초기에 거대 항공사의 등장으로 소비자 피해가 예상 된다면서 통합을 불허했습니다. 이에 두 항공사는 경쟁 제한 우려 및 소비자 피해 불식 방안을 제시했고, 결국 양사가 가지고 있는 주요 공항의 슬롯과 게이트, 공항 인프라 등 일부를 내놓기로 합니다. 유럽 집행위원회도 AMR과 US 에어웨이 통합 당시에 독과점 논란이 있는 노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두 항공사 합병 뒤 시장 점유율이 90%가 넘게 되는 런던-필라델피아 노선이었습니다. 결국 AMR과 US 에어웨이는 해당 노선의 슬롯 일부를 포기하는 등 운항을 대폭 줄이기로 합니다.

슬롯이나 운수권을 반납한다는 건 다른 경쟁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다양한 경쟁자들이 들어와야 서비스의 질도 높아지고 항공 운임도 낮아진다는 경쟁의 원리를 차용하는 겁니다. 반대로 항공사로서는 중요한 자산을 포기하는 건데요. 일부 슬롯 등 자산을 포기해도 통합에 따른 이득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에 경쟁당국의 조건부 승인 제안을 받아 들였을 겁니다.

●2011년 그리스 양대 항공사 통합
통합을 원하는 항공사들이 슬롯과 운수권 등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을 내 걸어도 통합이 거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2011년 그리스의 양대 항공사인 올림픽 항공과 에게안 항공의 통합에 대해 최종 불허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스 내부는 물론 그리스와 다른 유럽 도시를 잇는 일부 노선에서 독점에 준하는 상태가 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당시 에게안 항공과 올림픽 항공도 슬롯 포기와 공항 인프라 공동 사용 등의 조건을 내겁니다. 여기에 가격 인상 및 소비자 이익 감소에 대한 각종 대책을 내놨죠. 하지만 유럽 집행위원회는 “에게안과 올림픽의 합병은 그리스 노선의 준 독점을 초래할 수 있고, 그리스인과 아테네와 섬을 오가는 관광객들의 서비스 질은 낮아질 수 있다. 양사가 제공한 각종 대책들은 소비자들의 이익을 적절하게 보호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항공사들이 내놓은 독점 우려 해결책이 경쟁당국의 눈높이를 못 맞춘 겁니다.


●2021년 아메리칸항공과 제트블루 동맹
미국 법무부는 올해 9월 아메리칸항공과 제트블루의 뉴욕~보스턴 노선 등에서의 전략적 제휴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도 했습니다. 항공사들의 동맹 체결로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해져, 소비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미국 법무부는 두 항공사 간의 동맹의 문제점들을 소송 제기 문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양사의 동맹은 보스턴~라구아디아, JFK 공항, 뉴왁 리버티 공항 등에서 공정한 경쟁을 해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내선의 경우 보스톤 노선에 관해서 심각한 경쟁 훼손이 우려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보스턴 발 11개 국내 노선(보스톤~샬롯, 워싱턴DC, 필라델피아, 피닉스 등)을 콕 집어서 경쟁 제한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는데요. 법무부가 나열한 노선들의 경우 양사의 점유율은 48%~96%에 달했습니다.

통상 미국은 기업 결합을 심사 할 때, 결합을 하려는 회사의 총 시장 점유율 40%가 넘어가면 결합을 매우 까다롭게 본다고 합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점유율이 40%가 넘는 노선에 대해서 미국이 까다롭게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미국 법무부는 통합을 함으로써 오히려 경쟁 상태에 있을 때보다 소비자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서비스들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즉, 경쟁자가 있어야 서비스의 질도 높아진다는 거죠. 한국도 아시아나항공 출범 이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경쟁하듯 기내 서비스 등을 발전 시켜왔죠.

●노선 공급량 줄어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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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특정 노선의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했습니다. 경쟁이 심한 노선의 경우 성수기에는 항공사들이 증편을 해서라도 항공기를 띄웁니다. 항공기 좌석 공급량이 많아지다 보면 항공 운임도 낮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독과점이 형성된 노선의 경우 성수기에는 공급량을 조절하기가 더 수월해 집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수기에 특정 노선에 여객이 몰려서 200명의 추가 여객 수요가 생겼습니다. 이에 A항공사와 B항공사가 180석 짜리 항공기를 1대 씩 증편하기로 합니다. 360석이 추가로 공급 된 거죠. 그런데 A사와 B사가 통합을 할 경우엔 180석 짜리 2대를 하지 않고, 220석 짜리 항공기 1대만을 증편 할 수 있습니다. 2대를 띄우는 것 보다 1대를 만석으로 가는 것이 항공사에게 더 이득일뿐더러, 운임을 높게 책정해도 항공권이 다 팔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경쟁상태라면 A와 B항공사는 어떻게든 180석 짜리 항공기를 최대한 채우려고 항공권 운임을 낮췄을 것이고 고객 한명이라도 더 잡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등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독점 상태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가능성 높습니다.


●경쟁자들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어도 문제다?
특히 미국 법무부는 재미있는 주장도 했는데요. “독점 노선에 신규 진입자들의 진출을 허용한다고 해도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안 될 수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통합을 주도한 대한항공과 KDB산업은행은 “얼마든지 새로운 경쟁자들이 공항이나 노선에 취항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항공 자유화가 된 경우엔 얼마든지 경쟁자들이 들어 올 수 있기에 경쟁을 해칠 우려가 없다는 겁니다. 타당한 주장입니다.

그런데 미국 법무부는 이러한 주장을 한 번 더 비꼰 건데요. 즉, 새로운 항공사가 취항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경쟁을 못 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겁니다. 특정 노선에 A,B 항공사가 있었는데, C라는 항공사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미 그 노선은 A와 B사가 해놓은 마케팅 때문에 충성 고객도 많고, 노선을 자주 이용하는 기업들과 항공권 제휴도 많이 맺어 놨습니다. 신규 진입자가 와도 승객을 유치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본 겁니다. 미국 법무부는 신규 진입자가 온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성공 장벽들이 있어서 결국엔 사실상의 독점 체제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우려한 겁니다.


●코로나 핑계는 NO!
특히 미국 법무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 따른 항공업계 위기를 주장하면서 동맹을 합리화 하려는 아메리칸항공과 제트블루의 주장에 대해서도 단호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코로나 상황은 일시적인 것이며 항공업계는 다시 반등을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리고 미국 법무부는 항공업계가 코로나 상황에서 정부로부터 유례없이 많은 보조금과 지원을 받으면서 파산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지원을 받는 항공사들이 코로나 상황을 빌미로 기업의 이익을 취하려는 동맹을 추진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반기를 든 겁니다.

미국 법무부가 이처럼 상당히 까다롭게 동맹을 반대하는 걸 봤을 때,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으로 하여금 미국 국민들이나 미국 기업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고 볼 경우 기업 결합 승인을 상당히 까다롭게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유럽이나 미국이 아무런 조건 없이 승인을 내주는 것이 최선일 겁니다. 다음 시간에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처한 상황, 조건부 승인이 이뤄질 경우 이에 따른 우려 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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