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초경량 산소통 - 극저온 탱크… 누리호가 띄운 첨단산업 기술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21-11-02 03:00:00 수정 2021-11-02 17: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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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 이끄는 우주기술


《영국의 우주발사체 전문기업인 ‘리액션엔진스(Reaction Engines)’는 수년간 연구개발을 통해 발사체 엔진 내부의 열 관리와 냉각 성능을 대폭 끌어올린 기술을 개발했다. 이 회사는 이 기술을 토대로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수명 연장과 충전시간 단축에 도움을 주는 배터리 냉각 시스템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우리 손으로 만든 우주발사체 누리호를지난달 우주로 쏘아 올렸지만 일각에선 우주개발에 대해 냉소적인 분위기도 여전하다. 1년에 몇 차례 발사하지도 않는 위성 발사를 위해 오랜 시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우주발사체 기술을확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누리호 같은 우주발사체는 첨단 기술의 결정체다. 극한소재, 기계공학, 화학, 전자, 컴퓨터 등의 첨단 기술이 집약됐다. 극한의 환경을 견뎌야 하는 기술과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우주기술은 실생활뿐만 아니라 산업 현장으로 이어져 이미 상상 이상으로 활용되고 있다.》


○ 등산복에서 반도체·단열재까지… 활용도 높은 우주기술

우리가 즐겨 입는 의류에도 우주기술이 숨어 있다. 등산복 소재로 유명한 ‘고어텍스’는 화학 기업과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합작품으로 등장했다. 1957년 미국 듀폰사의 연구원 빌 윌리엄 고어는 전선 내부의 발열 작용으로 생기는 습기를 발산하는 ‘불소수지막(PTEE)’ 소재를 개발했고 나사는 이 기술을 1969년 인간을 최초로 달에 착륙시킨 아폴로 11호의 전선 제조에 활용했다. 고어 연구원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의류, 신발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익스팬디드PTEE’를 개발했고 오늘날 고어텍스의 효시가 됐다.

다양한 환경에서 모양이 변형됐다가 일정 온도가 되면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가는 형상기억합금도 아폴로 11호에 처음 사용됐다. 아폴로 11호에 장착된 안테나가 평소에는 접혀 있다가 적정 온도가 되면 지름 2.7m의 안테나로 펼쳐지는 데 활용된 것이다. 우주기술로 파생된 형상기억합금 기술은 이후 일상생활에 활용돼 1980년대 형상기억합금 브래지어 출시로 주목받았다. 지금은 치아 고정용 의료용 철사, 안경, 항공기 등의 분야에 쓰이고 있다.

우주 개발 과정에서 개발된 기술은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나사는 1976년 이후에만 2000개 이상의 기술을 특허로 등록하거나 기술 이전했다. 나사의 유명한 ‘스핀오프(SpinOff)’ 전략이다.

우주발사체와 우주탐사선 열전달 시스템에 쓰이는 ‘전열관(히트파이프)’은 반도체 냉각장치로 응용되며 오늘날 고성능 전자기기가 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우주환경에서 급격한 온도 변화로 발사체나 우주선의 전자 시스템 오류가 생길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한 기술이다. 이후 반도체 트랜지스터 집적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생기는 발열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날 의료 진단에 없어서는 안 될 자기공명영상(MRI)과 컴퓨터단층촬영(CT)도 아폴로 프로젝트 때 활용된 디지털 영상처리 기술에서 파생됐다.

현재 도심의 고압 가스배관, 해저 송유관, 화학공장 내벽 등 다양한 곳에서 최고 성능의 단열재로 사용되는 ‘에어로젤 단열재’ 기술도 나사의 케네디우주센터로부터 시작됐다. 나사는 우주의 극한 온도와 대기 재진입, 극저온 연료와 산화제를 관리하기 위해 1990년대 초 실리카 기반의 에어로젤 단열재를 개발했고 1996년 우주발사체 X-33의 극저온 액체수소와 액체산소 공급 장치 재료로 사용됐다.

드론과 항공기 산업, 자동화 기계 산업 등에서 활용되는 컴퓨터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유럽우주국(ESA)이 쏘아올린 발사체 ‘아리안5’가 폭발한 원인이 컴퓨터 프로그램 ‘버그’로 알려지면서 나사는 컴퓨터 프로그램 오류를 면밀하게 판단하는 ‘IKOS 분석기’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는 2009년 나사의 발사체 아틀라스 5호에 활용됐고 2013년 나사는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현재 소형 드론과 대형 항공기, 다양한 산업 자동화 기계 등에 쓰이는 컴퓨터 프로그램 점검을 위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데 활용되고 있다.

○ 누리호 참여로 국내 기업도 우주기술 산업화 물꼬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국내 300여 개 기업들도 각자 확보한 기술력을 산업에 적용하기 위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은 ‘누리호’의 고압 탱크를 납품한 압력용기 제조회사 이노컴이다. 이노컴은 누리호 개발 참여로 축적한 기술력을 소방관이 쓰는 산소호흡기통에 적용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통에 탄소튜브를 감아 높은 압력을 견디는 강성을 갖도록 하는 기술로, 누리호의 고압 탱크와 산소호흡기통에 동일한 원리로 쓰이는 기술이다.

이노컴 측은 “경량화와 강성 유지력 등 기존 제품을 뛰어넘는 연구가 아직 필요하지만 누리호 사업 참여로 기술력과 노하우를 확보했다”며 “우주발사체 산업을 선도하는 스페이스X가 요구하는 수준의 고압탱크를 납품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과 경험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극저온 환경에 견디는 부품을 개발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도 “액체산소를 다루는 극저온 부품들을 개발하면서 확보한 기술력으로 천연가스 채굴이나 압축기 장비 등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며 “누리호에 쓰인 다양한 밸브 기술을 이 같은 분야에 충분히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누리호 1단 엔진부에 장착되는 연료와 산화제 탱크 표면 소재의 두께는 2mm에 불과하다. 초경량, 극저온, 고압 환경에서 버틸 수 있는 탱크 제조 기술은 액체나 증기, 가스 등을 보관하거나 운송하는 장치 산업에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기혁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미래기술연구소 우주탐사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누리호 개발에 국내 기업이 참여하면서 국내 기계·장치 산업을 포함해 전자 산업까지 진일보할 것으로 보인다”며 “누리호 발사는 국내 산업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ios@donga.com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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