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에 싸인 性의 기원을 풀다

윤희선 기자

입력 2021-10-26 03:00:00 수정 2021-10-26 05: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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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전문 변호사 권성희 씨
‘생활사 상속으로 본… ’ 출간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같은 첨단기술이 등장하는 시대, 생물학에서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있다. 바로 ‘동물과 식물이 왜 암수로 나뉘어 유성생식을 하는가’다. 생물학 역사상 수많은 생물학자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도전했으나 성(性)은 여전히 깊은 신비에 싸여 있다.

이런 가운데 성의 진화 메커니즘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성의 진화를 모르고서 종의 분화를 논할 수 없다’며 성의 진화와 종의 분화를 함께 다룬 책이 나왔다. 이혼 전문 변호사 권성희 씨(사진)는 ‘생활사 상속으로 본 성의 진화와 용불용으로 본 종의 분화’라는 긴 제목의 책을 펴냈다. 5년 동안 생물학서 400권을 읽은 대장정 끝이다.

권 씨는 평소 강한 생명력을 지닌 생물이 왜 자연이나 상대성 같은 외부에 선택되거나 도태된다는 것인지, 자연선택과 성 선택이 옳다고 하더라도 생물에게 생존과 번식은 긴밀하게 상관돼야 하는데 왜 두 이론이 따로 노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기관의 용불용으로 진화하고 형질을 암수가 공동으로 취득할 때 종의 분화가 완성된다는 라마르크 진화론이 정직해 보였다. 결국 이 의문의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지 3년째인 2020년 새해 첫날, 갑자기 ‘성의 진화 메커니즘’이 보이더니 3개월 후 ‘왜 암수 양성인지’도 보였다. 바빠졌다. 이는 엄청난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성의 진화에 대해 살펴봤다. 저자는 생활사 상속의 틀에 의해서 성의 진화 메커니즘을 발견했기 때문에 생물을 등장 순서와 핵의 유무 및 단세포냐 다세포냐를 기준으로 원핵생물, 원생생물과 다세포생물의 3계로 분류했다.

원핵생물은 상시 다른 원핵생물로부터 유전자 조각을 취득하고, 환경이 좋지 않을 때 딱딱한 내생포자가 돼 피하는 습성이 있다. 또 자기복제법으로 번식한다. 원생생물은 원핵생물의 유전자 취득을 어떻게 상속할 수 있을까? 염색체가 핵 속에 있으므로 세포를 접합해 핵 융합했다가 감수분열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내생포자는 그저 딱딱해지면 되고, 번식법은 같다.

원생생물은 환경이 좋지 않을 때 유사분열로 생식세포를 형성해 생식세포끼리 접합해 핵융합한 뒤 내구성의 포자가 된다. 그리고 환경이 좋아진 뒤 감수분열하고 자기복제법으로 증식한다. 다세포생물에서 정자와 난자를 만들 때 부모로부터 이어받은 상동염색체를 교차하는데, 이는 원핵생물의 유전자 취득 생활사를 다세포생물의 체제로 다시 한번 상속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자와 난자가 고유한 생식세포가 되면 이들로 인해 다세포생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초래된다.

다음은 종 분화다. 종 분화는 유성생식을 행하는 종의 암수가 형성되는 원리이니 더욱 성의 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의 암수의 성적 이형성을 세심히 관찰해보면 생태적 지위에서 생존을 우선시하고 번식은 생존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하는 ‘선생존 후번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예로 하이에나, 해마, 흰동가리와 개미 및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살펴보자. 각각의 생태적 지위는 암수 공통의 생존 방식을 나타낸다.

한편 이들의 성적 이형성은 번식 방식을 반영하는데, 각 생존 방식을 필히 지킨 후 번식 방식을 수반한 결과다. 암컷의 극단적인 우세를 나타내는 하이에나는 암컷이 자신과 새끼를 수컷이 포식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맹렬하게 지켜낸 결과다. 해마가 다른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수정하면 수정란이 먹힐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암컷이 난황이 있어 만드는 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 난자를 생산하고 임신까지 한다면 생존이 불가능해 수컷이 임신을 대신해 수정란을 보호한다. 흰동가리는 난자를 생산하기 때문에 암컷이 제일 크고 그 다음으로 몸집이 큰 수컷과 짝을 이룬다. 무리의 나머지는 모두 미성숙 수컷으로 암컷이 죽으면 제일 큰 수컷이 성전환한다.

좁은 구역에 한정된 개체수가 살아 모두가 번식한다면 생태적 지위 유지가 불가능하다. 개미야말로 ‘선생존 후번식’의 전형인데 유기체로 함께 살아가며 일부가 번식을 도맡아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생존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도 흰동가리와 같은 이유로 모두가 번식한다면 땅속에서의 공동생활이 불가능하다. 결국 생물은 생존 방식을 최우선으로 정한 뒤 일부 개체에 의한 번식, 자유로운 성 전환 및 성적 이형성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번식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위 예에서도 감지되지만 ‘선생존 후번식’은 생물이 살아가는 정연한 법칙이므로 기관의 용불용도 그 순서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원칙은 필연적으로 ‘라마르크의 용불용’과 손을 잡게 되며, 이는 종의 분화 과정으로 이어져 ‘선생존 후번식에 의한 용불용’이 새로운 진화론이 된다. 즉, 암수가 공동으로 먼저 생존적인 형질을 취득하고 이에 수반하여 암수가 별도로 성적 이형성 등의 번식적인 형질을 취득하여 종 분화가 완성된다.

그러면 다세포생물은 왜 암수 양성일까? 저자는 과접합 방지책이라고 한다. 유성생식을 진화한 원생생물은 생식세포를 2개만 만들었는데, 두 개 이상 접합하면 평소의 핵형을 초과하여 기형이나 불임이 되기 때문이다. 암수는 난자와 정자를 생산하기 위해 형성되었으므로 양성이 된 것이다.

다윈 진화론은 개체가 진화의 주체가 되므로 여왕이 낳은 알을 일개미가 공동으로 키우는 현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윈은 훗날 개미의 진화를 제대로 설명하는 이론이 나오면 자신의 이론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저자는 최근 그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징조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바로 2020년 5월 17일 갈라파고스의 ‘다윈 아치’가 자연침식으로 붕괴한 일이다. 저자는 “내 페이스북에 ‘찰스 다윈을 돌가루를 만들어 버리겠다’고 공언하고 난 직후에 붕괴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희선 기자 sunny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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