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신화’ 쓴 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오늘 1주기

뉴스1

입력 2021-10-25 05:11 수정 2021-10-25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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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주기를 맞았다.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사진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들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2020.10.25/뉴스1
삼성이 25일 ‘반도체 신화’를 쓴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1주기를 맞이한다.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들과 경영진은 고인이 영면한 수원 선영을 찾아 고인을 기릴 예정이다.

1942년생인 고인은 1987년 선친이자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2대 총수를 맡아 삼성의 성장을 이끌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삼성그룹의 매출은 10조원이 채 안됐으나, 2018년 39배 많은 386조원을 넘어섰고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커졌다.

특히 고인이 직접 이끌었던 삼성전자는 오늘날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통신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전자 기업으로 성장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영결식이 엄수된 지난해 10월2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소재 삼성가 선산에서 (왼쪽부터)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장지로 향하고 있다. 2020.10.28/뉴스1 © News1


1980~1990년대 갈수록 고도화되는 전자제품을 충족할 메모리 생산이 관건이라고 판단한 고인은 반도체 산업의 본질을 ‘시간 산업’으로 규정하고 선제적이고 과감한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로 오늘날 메모리 반도체에서의 초격차를 일궈냈다. 1993년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메모리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선 삼성은 2021년 현재까지 28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세계 메모리 1위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다.

1993년 미국 전자제품 양판점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소외당하고 있던 삼성전자의 제품을 목격한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임원들을 불러모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보라”고 일갈하며 혁신을 주문한 ‘신경영’ 선언은 초일류를 향한 그의 집념과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1995년 임직원 2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라는 문구를 내걸고 불량 휴대전화 10만 대 이상을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도 삼성그룹 안팎에서 자주 회자되는 일화다. 이날 이 회장의 충격요법 이후 휴대전화 품질 개선과 기술 개발에 매진한 삼성전자는 2010년대부터 본격화된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갤럭시 시리즈를 앞세우며 빠르게 성장,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삼성전자 제공)© 뉴스1



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에 한계사업은 정리하고 신사업을 육성한 삼성의 ‘비상경영’은 리더의 선견지명과 결단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당시 이 회장의 과감한 결단으로 타 기업보다 한발 앞서 위기에 대비한 삼성은 외환위기 파고를 넘어 글로벌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공채 학력 제한을 폐지하고 구성원 간 실력 중심의 경쟁을 유도, 성과에는 보상이 따르는 기업문화를 만든 것도 그의 작품이다.

이 회장은 2008년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과정에서 회장직을 내놓는 등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기도 했다. 이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위해 사면되면서 2년 만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한 그는, 칠순을 코앞에 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임직원들을 독려하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고인은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이후에는 경영일선에 복귀하지 못했다. 고인은 약 6년5개월 간 삼성서울병원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이어가다 꼭 1년 전인 2020년 10월25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유족과 삼성은 고인의 뜻을 기려 1조원을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과 소아암 대응 등을 의료계를 위해 지원하고, 고인이 소유했던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가에 기증하는 등의 사회환원방안을 올해 5월 발표했다.

고인의 고교동창이자 오랜 친구인 김필규 전 KPK 통상 회장은 영결식에서 고인을 아버지를 능가해 진정한 효를 이룬다는 뜻의 ‘승어부’‘(勝於父)를 이룬 인물로 칭송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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