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앨범이지만 매번 ‘새 작품 체험’… 팬데믹이후 더 주목”

임희윤 기자

입력 2021-10-01 03:00:00 수정 2021-10-01 03: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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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五感체험형 전시 ‘비욘더로드’ 주역 英 음악가 제임스 라벨 인터뷰
33개 공간에 99개 스피커 배치… ‘엉클’음악, 회화 비디오 등과 조화
알폰소 쿠아론 ‘로마’ 등 일부 상영 “기술과 예술 결합, 생명 불어넣어”
까치-호랑이박제 한국적 요소 담아 “폐막전 꼭 서울전시장 찾고 싶어”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서울’ 6층 ALT1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비욘더로드’ 가운데 형광 그라피티 통로 공간 풍경. 이 부분은 국내 스트리트 아티스트 ‘나나’가 영국 그룹 ‘엉클’의 음악에 등장하는 키워드를 활용해 제작했다. 미쓰잭슨 제공

“내부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완벽한 몰입도의 앨범 만들기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래서 제게 꿈같은 일입니다.”(제임스 라벨)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독특한 오감 체험형 전시 ‘비욘더로드’(11월 28일까지)는 철저히 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영국 전자음악 그룹 엉클(UNKLE)의 작품이다. 33개의 공간에 99개의 스피커를 배치해 입체화한 엉클의 음악이 회화, 비디오, 조향, 박제와 어우러져 유사 유기체가 된다.

이머시브(관객 몰입형) 공연의 효시 격인 ‘슬립 노 모어’(2011년)의 제작진이 참여했지만 이 전시의 심장이 엉클의 리더이자 영국의 전설적 음악가인 제임스 라벨(47·사진)인 이유다. 라벨은 18세이던 1992년 엉클을 결성하고 ‘모왁스 레코드’를 설립해 세계 전자음악과 트립 합(trip hop) 장르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라벨은 “디지털 세상에서 음악은 쉽게 휘발된다. 공간을 활용해 대안을 만들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라벨은 엉클의 초기부터 종합예술을 지향했다.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가 참여한 데뷔 곡 ‘Rabbit in Your Headlights’의 뮤직비디오에는 드니 라방(영화 ‘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 출연 배우)이 기묘한 연기를 보탰다. 당시 메가폰을 잡은 조너선 글레이저는 그 뒤 ‘언더 더 스킨’ 등으로 독보적인 영화 연출 세계를 보여줬다. 이번 전시에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대니 보일의 ‘트러스트’의 일부가 상영된다. 스크린에 투사된 ‘로마’ 영상을 배경으로 라벨의 ‘로마’ 헌정곡 ‘On My Knees’가 입체음향으로 뿜어져 나오는 순간은 전시의 여러 하이라이트 중 하나.

“‘로마’의 해변 신은 거대한 기도처럼 사람 감정을 휘젓죠. 쿠아론이 첨단 촬영 기법으로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한 것처럼, 저와 제작진은 기술과 예술을 결합해 전시장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했습니다.”

전시장에 시종 흐르는 음악은 엉클의 2017년과 2019년 연작 앨범 ‘The Road’에 담긴 곡들. 라벨은 ‘The Road: Part III’ 음반을 만들어 곧 공개할 거라고 했다.

라벨은 “‘슬립 노 모어’ 제작진과 런던 토트넘에 있는 실험용 가옥들에서 세 달간 음향을 실험하고 큐레이션을 하며 전시를 준비했다”고 했다.

“지난해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오픈한 뒤, 저는 관객으로서 스무 번 정도 관람했습니다. 제가 만든 앨범이지만 매번 새 작품을 듣는 듯한 체험을 했죠.”

전시의 피날레 격인 디지털 교회 공간도 기묘한 인상을 자아낸다. 라벨은 “10년 전 런던 캠던의 실제 교회에서 내가 열었던 스탠리 큐브릭 헌정 전시에서 착안했다. 교회는 특정 종교를 넘어 도피처로서의 이미지를 가진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했다.

“팬데믹 이전에 기획한 전시입니다. 물질주의, 도널드 트럼프, 혼란한 세계를 표현하려 했죠. 그런데 팬데믹 이후 더 흥미로운 맥락을 갖게 됐지 뭡니까.”

라벨은 “보거나 듣거나 맡는 것에 머물지 말고 33개의 공간이 주는 총체적 경험에 집중해 달라”고 관객들에게 주문했다.

전시에는 한국적 요소도 담았다. 까치와 호랑이 박제 작품, 국내 거리예술가 ‘나나’의 그라피티다.

“까치는 영국의 설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제가 또 호랑이띠죠. 청소년기에 저의 세계를 흔든 것은 동양 무예였습니다. 태권도를 비롯한 무예의 역사를 달달 외웠죠. 여건이 허락한다면 폐막 전에 꼭 서울 전시장을 찾고 싶습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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