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유영]후손 위한다는 그린벨트, 무주택자 위해선 못 푸나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입력 2021-09-09 03:00 수정 2021-09-09 16:51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서울 주택 공급난이 극심해지면서 정부가 잇달아 공급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집값 상승세가 여전하다. 거래량이 줄긴 했지만 계약이 체결됐다 하면 최고 가격 기록이 나오고 있다. 금리를 올려도 대출을 조여도, 심지어 수도권에 신도시급 택지를 개발(3차 공공택지)하겠다고 해도 통하지 않고 있다.
이는 사람들에게 공급에 대한 확신을 여전히 심어주지 못한 이유가 크다. 정확히는 ‘서울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공급대책에 이런 수요가 반영되지 못했다. 서울 내 대규모 택지를 통한 공급이 현 정부에서는 노원구 태릉골프장 등이 발표된 지난해 8·4공급대책이 사실상 마지막일 듯하다. 당시도 집값 급등세가 심해 정부가 서울 택지를 ‘영끌’했다는 말이 나왔다.
대책 발표 전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이 서울 유휴부지나 국공유지까지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였다. 보존가치가 낮은 그린벨트를 해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 우면산 일대 등 강남권 그린벨트가 유력 후보지로 떠올랐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그린벨트는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놔야 할 보물과 같은 곳”이라며 반대했지만, 이 일대는 과거 택지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이력이 있어 유효한 카드였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박 시장이 사망했고 서울시가 “시장님의 유지(遺旨)”라고 맞서자 문재인 대통령을 서울시에 힘을 실어주는 걸로 상황을 정리했다. 이 카드는 이후 주택당국에서 금기어가 됐고 이번에도 검토되지 못했다.
그린벨트는 1971년 영국 사례를 벤치마킹해 만들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그린벨트의 원조 격인 영국에서는 최근 주택 공급난이 심해지자 보존 가치가 떨어진 그린벨트, 이른바 브라운벨트(brown-belt)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만들어진 도시계획제도가 시대에 안 맞고 효율적이지도 않다”며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곳에 가서 살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현재 주택시장에 신규 진입해야 할 젊은이들이 집값 폭등으로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세대를 위한 보물’이라는 그린벨트 중에선 비닐하우스나 창고 등이 무질서하게 들어선 곳이 적지 않다. 과거에도 보존 가치가 낮아진 그린벨트가 일부 해제되며 보금자리주택이나 뉴스테이(민간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지로 쓰이기도 했다.
그린벨트는 고도의 경제성장기에 도시 주변이 무분별하게 확장되는 도시 팽창(urban sprawl)을 막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도권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역이 됐고 직주근접 주거 수요도 커지면서 각국 주요 도시는 메가시티로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서울에 집 지을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공공이 주도한다는 도심복합개발도, 민간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여전히 부진하다.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기본주택’ ‘원가주택’ ‘학교 위 주택’ 등을 외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거나 막대한 예산이 들어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된다.
민간 규제 완화가 정공법이겠지만, 보존가치가 낮아진 지역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할 때가 됐다. 따지고 보면 태릉골프장도, 이번에 공공택지로 지정된 일부 지역도 그린벨트였다. 어디는 풀고 어디는 못 푼다는 것도 형평성에 안 맞다. 자연은 보존되어야 마땅하고 녹지는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지만 이미 보존가치가 낮아진 지역은 조금 다르다. 올해로 쉰 살이 된 그린벨트를 잘 쓰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할 이유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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