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조 “대리점주 조롱했지만 폭언 안해”… 유족측 “노조, 끝까지 죽음 왜곡-책임 회피”

변종국 기자

입력 2021-09-03 03:00 수정 2021-09-0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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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CJ 압박으로 대리점 포기”
동료 “노조와의 갈등 못 이긴 것”
유족 “개인빚 언급해 고인 모욕”


1일 경기 김포시의 한 택배 터미널에 마련된 40대 택배 대리점주 이모 씨 분향소에서 한 참배객이 분향과 헌화를 하고 있다. 이 씨는 택배노조의 집단 괴롭힘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달 30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날 터미널에는 노조원들이 배송을 거부한 택배 상자들이 가득 쌓여 있다. 김포=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택배노조의 집단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CJ대한통운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 씨와 관련해 전국택배노동조합이 ‘비아냥, 조롱은 있었지만 고인에 대한 폭언, 욕설은 없었다’는 내용의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택배노조는 이 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책임은 원청업체인 CJ대한통운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 씨 동료들과 유족들은 “노조가 끝까지 왜곡하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2일 택배노조는 서울 서대문구 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합원 일부가 인간적 모멸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이 씨가 포함된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고인이 유서에 ‘집단 괴롭힘’을 언급했고 조사 결과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택배노조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진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의 압박으로 고인이 대리점 포기각서를 제출했다. 노조는 공문, 집회, 단톡방 등에서 고인에게 대리점을 포기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없다”며 책임을 CJ대한통운 쪽으로 돌렸다. 택배노조는 이날 CJ대한통운 김포지사장과 노조원이 8월 25일 나눈 통화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이 씨의 동료는 “이 씨는 노조와의 갈등을 못 이겨 7월 이전에 이미 대리점 포기를 선언했다. 택배노조가 공개한 통화 내용은 그 이후에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또 이 씨가 대리점 소속 기사들에게 4억 원의 빚을 졌고 살던 집을 팔았다는 등 이 씨의 경제적 상황을 자세히 소개하며 “고인의 경제적 어려움이 최악이라는 걸 원청이 알고 있음에도 (고인은) 왜 모든 책임을 노조에만 돌렸을까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택배노조가 이 씨의 채무관계를 공개한 데 대해 2차 가해 논란도 나온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측은 “전형적 물타기이자 2차 가해다.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씨의 유족들은 “노조가 고인의 개인채무 문제를 꺼내들고 원청 관련 내용을 왜곡하면서 죽음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고인의 죽음을 모욕하는 패륜적 행위이자 마지막 목소리까지 부정하려는 파렴치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날 오전 경기 김포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열린 이 씨의 영결식에서는 이 씨 동료들이 택배 차량 100여 대에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내걸고 운구차를 따라갔다. 이재학 CJ대한통운 김포풍무대리점장은 추도사에서 “민노총이란 거대세력의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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