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하고 싶어”…서울 전세집 떠나 강릉 단독주택으로 간 부부

이호재 기자

입력 2021-08-18 14:45 수정 2021-08-1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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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릉 가서 살까? 나 행복 하고 싶어.”

2015년 7월 서울의 한 중식당. 결혼한 지 4개월 된 남편은 짜장면을 먹다 아내에게 자신의 소망을 고백했다. 발품을 팔아가며 겨우 구한 서울 용산구의 한 빌라에 막 전세로 입주해 신혼생활을 즐기던 때였다. 서울을 떠나자니…. 현실성 없는 토로였다. 그러나 다음해 8월 두 사람은 강원 강릉시로 이사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부부는 주중 저녁엔 경포호 언저리를 걷고, 주말엔 아이와 함께 영진해변에서 뛰어논다. 최근 에세이 ‘주말엔 아이와 바다에’(어떤책)를 펴낸 김은현(39·여), 황주성 씨(38) 부부 이야기다.

김 씨는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부부는 ‘서울공화국’에서 성인의 삶을 보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강릉 출신인 김 씨는 2001년 서울 소재 대학 입학과 함께 상경해 고시원에 살았다. 서울에서 일하는 동안엔 친구와 함께 자취를 했다. “남편은 2002년 서울 소재 대학 입학 후 직장에 다닐 때까지 경기도에서 ‘러시아워’에 출퇴근을 했죠. 왕복 2시간 이상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서 지쳐갔다고 합니다.”

2015년 3월 결혼한 두 사람은 용산구에 1년 계약으로 신혼집을 구했다. 거실 1개, 방 1개, 화장실 1개인 33㎡ 빌라의 전세가는 1억6000만 원. 발품을 팔아가며 어렵사리 구한 매물이었다. 아파트는 예산에 맞지 않아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1년 뒤 재계약 시기가 되자 집주인은 계약형태를 월세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집주인이 제시한 월세 금액은 부담되는 수준이었다. 결혼생활 내내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겠구나 싶어 진이 확 빠졌다. 치열한 직장생활에 지쳐가기도 하던 때였다. 그동안 구상해온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황 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당신 고향인 강릉에서 살면 어떨까. 새로운 일도 해보고 싶어. 바다가 가까운 것도 좋잖아.”

김 씨는 망설였다. 주말엔 뮤지컬을 보고, 미술관을 즐길 수 있는 서울의 인프라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서울에서 아등바등 사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싶었다. 어느날 남편이 강릉의 한 2층 단독주택이 매물로 나왔다고 했다. 매매가는 당시 살던 용산구 빌라의 전세금과 비슷했다. 결심이 선 두 사람은 2016년 8월 직장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떠났다.

서울을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릉의 단독주택은 30년 이상 된 오래된 집이었다. 1000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해야 했다. 부부가 손품 발품을 팔아가며 집을 꾸몄다. 66㎡인 2층은 주거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거실 1개, 방 2개, 화장실 1개, 창고 1개라 두 사람이 살기엔 충분했다. 차를 타고 3분만 가면 해변이었다. 100㎡인 1층은 자영업 가게로 꾸몄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황 씨와 출판 업무를 맡았던 김 씨의 이력을 살려 셀프 웨딩 촬영업체를 차렸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서울에서 맞벌이 직장생활 할 때보다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지만 지출도 절반 가까이 줄었어요. 서울에선 돈 버느라 받은 스트레스를 돈을 쓰면서 풀었는데 강릉에선 바다와 산을 걸으며 공짜로 스트레스를 풀죠.”

부부는 강릉 이사 후 두 딸을 낳았다. 아이들은 해변을 벗 삼아 커가고 있다. 물론 아직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 교육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부부 역시 큰 질환을 겪지 않아 의료 문제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5년 전과 현재 강릉의 집 시세가 다른 만큼 그는 현실적 조언도 덧붙였다.

“전 강릉이 고향이라 적응이 쉬웠지만 낯선 지역으로 이사 후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무작정 자영업을 한다고 오는 것도 금물이에요. 냉철하게 고민하고 준비한 분들이 내려와서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강릉 이주를 고민한다면 한 달 살기를 미리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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