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철거이주민 ‘건달’이 225조원 굴리는 사연 [최영해의 THE 이노베이터]

최영해 기자

입력 2021-08-08 09:00:00 수정 2021-08-08 10:4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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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2115만 명 둔 박차훈 새마을금고 회장 인터뷰]
이주 보상금 700만원 밑천으로 유통대리점 사업
발달장애아와 소외 노인에 관심 쏟으며 주민들 마음 얻어
전국 산재한 새마을금고 3241개 총 사령탑
13개 광역시도에 새마을금고음악회 열어 23만 여명 운집
“나누는 게 나의 소명, 청년들 MG 체크카드 쓰는 게 이웃 돕는 길”


‘독도’ 빼고 없는 데가 없다. 전국에 3241개 점포를 가진 회사. 직원이 2~3명인 곳도 꽤 있다, 고객 수 2115만 명으로 국민 10명중 4명이 계좌를 갖고 있는 회사다. 새마을금고(MG) 얘기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고객과 밀착 영업을 한다. ‘관계금융’ ‘밀착금융’이 MG의 영업 전략이다.

전국 새마을금고를 이끄는 박차훈 MG 회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80년대 초반 울산에 현대중공업 공장이 들어서면서 졸지에 철거 이주민 신세가 됐다. 아버지가 받은 이주 보상금으로 유통대리점을 차렸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사업 수완은 남달랐다. 그가 1997년 동울산금고 이사장으로 변신한 후 20년 만에 자산을 30배나 불렸다. 146억원이던 수탁고는 4600억원으로 급증했다. MG 회장으로 취임한 지 3년여 동안 전체 자산이 150조원에서 224조원으로 50%나 급증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길을 ‘반(半)건달’ 인생이라고 몸을 낮춰 말했다. 지난 달 28일 박 회장을 서울 삼성동 MG 본사에서 인터뷰했다.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이 서울 삼성동 새마을금고중앙회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 회장이 1980년대 울산에서 철거 이주민 신분으로 유통대리점 사업을 할 때를 회상하면서 ‘Mr. 반창고’라는 별명을 얻게 된 얘기를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현대중공업에서 앞이 안 보였다”
첫 직장은 울산 현대중공업이었다. 딱 1년만 다녔다. 성에 차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별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는 게 맞는 표현인 듯하단다. 청년이 되면서 사업한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많이 들었다. 일본의 마케팅 성공 사례도 책으로 읽었다. 유통업에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월급쟁이 인생은 안정적이지만 밋밋했다. 마을 선배가 한 말에 귀가 솔깃했다. “먹는 장사는 자고 나면 없어지지만 유통은 날만 새면 내 돈이다.”

이거다 싶었다. 박 회장의 집은 원래 울산 현대중공업 부지에 있었다. 회사가 들어서면서 가족은 철거 이주민이 됐다. 아버지한테 이주 보상금 가운데 3분의 1 가량인 700만원을 빌렸다. 1980년대 초 일이다.

이 돈으로 유통대리점을 시작했다. 동서식품 커피와 동원참치 도투락우유 제일제당 식품 등 인기 상품을 취급했다. 매장에 물건을 대느라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런데 거래처 고객들이 그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어제 만났는데도 “누구시더라?”는 반응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가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꾀를 냈다. ‘어떻게 하면 나를 금방 알아보게 만들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눈 밑에 대일밴드를 붙였다. 부인이 ‘갑자기 왜 그래?’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래처에서 알아보기 쉽도록 밴드를 얼굴에 붙이고 다닌 것이다. 며칠 지나자 사람들이 금세 알아봤다. “아, 도투락 사장님 오셨네~‘ 직원들에게도 거래처 고객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자신 만의 캐릭터를 만들라고 했다. 거래처 손님을 만나면 한바탕 크게 웃는 직원, 절을 공손하게 꾸벅하는 직원, 고객이 호감을 갖도록 하는 것은 영업의 기본이었다.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은 주 고객인 전통 시장을 수시로 찾는다. 현장에서 감동을 줘야 고객들을 유치할 수 있다는 게 경영 철학이다. 올해 5월 울주군 언양 알프스시장을 찾아 채소를 파는 상인을 위로하고 온누리상품권으로 물건을 구매했다. 사진 새마을금고 제공


그날 번 돈은 매일 어머니께 갖다 드렸다. 다음 날 아침에 은행에 입금했지만 밤 동안 어머니는 흐뭇해하셨다. 반년 만에 아버지가 빌려준 돈을 다 갚았다. 아버지는 ”넌 사업가 기질이 있다“며 등을 두드려줬다. 뿌듯했다. 이렇게 10년 동안 장사하면서 꽤 많은 돈을 모았다. ’Mr. 반창고‘라는 별명을 얻어 동네에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여기서 번 돈으로 현대중공업 모터 부문 AS사업도 벌였다. 동생에게 사업을 넘겨주면서 이듬해인 1995년 울산시의회에 2대 의원으로 진출했다. 지역에서의 왕성한 활동이 정치로 발을 옮겨 놓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시의원 생활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사실 반 건달 같은 인생이었어요. 정치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죠. 그러던 차에 몇몇 선 후배들이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연로하니까 박 의원이 맡아서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한참 고사하다가 등 떠밀려 동울산새마을금고 이사장을 맡게 됐어요.“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지방의회 의원의 겸직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140억 뿐인 새마을금고 암담했지요.“
”처음엔 앞이 깜깜했어요. 나를 포함해 직원이 7명이었는데 누가 봐도 돈을 맡기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요. 신뢰를 얻으려면 고객들에게 친절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직원들에게 우리 평생직장을 만들어보자고 했습니다. 친절보다 더 좋은 전략이 어디 있겠어요?“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이 2019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서울 광장시장에서 상인들로부터 물건을 사고 있다. 사진 새마을금고 제공

유통대리점 할 때의 서비스 근성을 발휘했다. 고객이 들어오면 직원들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하도 고함을 치니 고객들이 민망해서 점포에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울 정도라는 얘기도 나왔다. 새마을금고는 지역밀착 영업이 강점이다. 지역주민을 가족처럼 대하면서 자금을 유치해야 다른 금융회사와 경쟁할 수 있다. 촘촘한 영업망은 강점이다. 금고는 동네사랑방 같은 곳이다. 그러려면 다른 점포와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해야 한다. 마침 자매결연 맺은 쌀 도정공장이 있었다. 박 이사장은 쌀을 새마을금고에서 팔기로 했다.

”당시에 쌀가게에 쌀을 주문하면 문 앞에 두고 갔죠. 금고 직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쌀을 배달할 때 고생스럽더라도 집안에 있는 쌀통에 직접 부어달라고. 객장 영업을 마치는 오후 4시가 되면 직원들이 동네에 쌀 배달을 나갔어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죠. 직원들과 한마음이 돼 고객들 집을 드나들었습니다.“


다음엔 아파트 새마을부녀회를 공략했다. 두어 달에 한번씩 아파트 주차장에 지역특산물을 파는 직판장을 열었다. 싱싱한 농산물을 직접 공급했다. 트럭 4~5대 분을 가져오면 저녁 무렵이면 다 팔렸다. 새마을금고는 이런 행사의 홍보마당이 됐다.

”사실 전통시장에는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고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야 했습니다. 직거래장터에선 마진을 남기지 않았어요.“

●시의원 경험, 현대중공업 계좌 유치에 정치력 발휘
박 회장의 울산시의원 경력은 동울산새마을금고에서 정치력을 발휘하는 데 한몫 했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을 찾아갔어요. 동울산새마을금고 재무제표를 들고 가 ’직원들이 급여 이체를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직원들 동의서만 받으면 새마을금고로 급여가 이체될 수 있는데, 이게 성사가 됐습니다. 당시 현대중공업 직장금고가 1조원이 넘었을 때죠.“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이 2018년 겨울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연탄 나르기 봉사 활동을 임직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사진 새마을금고 제공



그는 흥이 많은 사람이다. 타고 난 천성인지도 모른다. 열악한 지방에 문화행사를 유치했다. 연예인과 가수를 초청해 울산동구 주민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열었다. 가요콘서트, 가을맞이음악회 등 다양한 이름이 붙여졌다. 행사장에서 행운권을 추첨해 사은품도 듬뿍 안겼다. 동울산금고회원에게 추첨 기회가 주어지다 보니 계좌를 옮겨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박 회장의 음악회 아이디어는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이 된 뒤에도 빛을 발했다. 2019년 13개 광역시도에서 돌아가면서 순회음악회를 열었다. 전국 투어에 평균 1만8077명, 총 23만4000명이 음악회에 다녀갔다. 자산 200조원 달성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수탁고가 크게 늘어나는 데 한 몫 했다.


●발달장애인, 소외층 돌보며 신뢰 쌓아
청년 차훈은 발달 장애인에 관심이 많았다. 소외된 이웃을 돌보기 위해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울산시 보건복지국장과 박맹우 당시 울산시장을 차례로 면담했다.

”수익에는 관심 없으니 복지재단을 만드는 데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덕분에 새마을금고 최초의 사회복지법인인 ’느티나무복지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발달 장애아를 위해 주간보호센터를 만들었어요. 울산시에서 부지를 제공하고 우리는 건물을 지었습니다. 집안에 발달 장애아가 있으면 누구 하나 꼼짝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복지센터에서 맡아주니까 가정에선 큰 짐을 덜었지요. 말이나 언어가 느린 아동을 위한 아동청소년발달센터도 운영했습니다. 노인복지회관에는 1000원만 들고 오면 점심 식사에 노래교실, 헬스, 당구 등을 즐길 수 있도록 했고요. 별도로 노인요양원에는 의료 지원이 필요한 어르신 60명을 모실 수 있도록 했어요.“



느티나무복지재단 운영은 정부 보조금과 개인 후원금에다 동울산새마을금고에서 지원한 돈으로 운영했다. 박 회장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주변에서 어려운 이웃을 많이 보고 자란 ’촌놈‘이었다. 지역에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일이 입소문을 타면서 자연스레 새마을금고를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노인복지회관에 다녀온 어르신들이 며느리와 자식들에게 새마을금고에 통장을 틀 것을 권유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회공헌 사업에 거액, 공동체로서의 금고 역할 중시
그는 42세에 새마을금고 울산지부 회장이 됐다. 이사장들 평균 나이가 66세인데 ’젊은 피‘였다. 울산지부 회장을 3번이나 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이사도 한차례 역임했다. 2014년 새마을중앙회장에 도전했지만 7표차로 낙선했다. 4년 동안 더 현장을 누볐다. 전국의 새마을금고에서 느티나무복지재단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울산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2018년 재도전해 중앙회장에 당선됐다. 전국 새마을금고 이사장 1300명의 뜻이 간접 투표로 반영된 결과였다.

취임하자마자 그는 ’금고가 먼저다‘라는 경영 방침을 내세웠다. 중앙회 규제를 받지 않고 일선 금고의 경영을 자율에 맡기는 것이었다. 21년 반 동안 지부장을 한 경험에 비춰 일선 금고에서 중앙회의 규제나 간섭을 받지 않도록 한 것이다. 중앙회에 납부하던 각종 분담금을 경감해 부담을 덜어줬다. 중앙회관 방문 견학 등 소통 창구도 다양하게 마련했다. 집중된 권한을 현장에 내려놓는 일이었다.

”새마을금고의 주 고객은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입니다. 전국에 산재한 점포가 3241개, 농촌에만 600여개가 있습니다. 고객들에게 감동을 주자고 얘기했습니다. 일선 금고를 찾은 고객들에게 임직원들이 업무 마감 후에 감사 전화를 걸도록 했어요. 고객들은 사소한 부분이지만 자신이 존중 받는다는 데에 감동을 받습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전통시장 상인들을 돕기 위해 시장에서 물건을 산 고객들이 영수증을 갖고 금고에 오면 사은품을 줬습니다. 이렇게 지원한 사은품이 19억 원어치나 됐습니다. 시장 상인들에겐 적지 않은 힘이 됐습니다.“

새마을금고는 박차훈 회장 취임 이듬해인 2019년 9월 전국 13개 시도에서 MG새마을금고 순회음악회를 열었다. 우중(雨中)에도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음악회에 2만여 명의 고객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메우는 등 성황을 이뤘다. 사진 새마을금고 제공

박 회장 취임 후 나타난 변화는 적지 않았다. 21년 동안 현장에서 금고 이사장을 하면서 겪은 문제점을 하나 둘 풀어 나갔다. 일선 금고마다 환경이 달라 운영 전략도 차별화해야 했다. 중앙회에 컨설팅팀을 만들어 지원이 필요한 금고에 파견했다. 고객에 밀착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고칠지 점검하고 맞춤형 전략을 마련해줬다. 지시와 통제 위주였던 중앙회 역할도 점점 바뀌었다. 중앙회에서 일선 금고에서 업무 감사를 나가는 경우 감사반이 대접을 일절 받지 못하도록 했다. 대신 현장 감사가 끝난 날 감사반이 피자와 통닭을 피감 직원들에게 사주면서 격려했다. 직원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역발상 경영이었다. 박 회장의 서비스 정신에 직원들 사기도 진작됐다. 2017년 말 150조원이던 새마을금고 자산이 224조원으로 3년 반 동안 50%나 늘어나게 된 것은 이런 혁신과 섬김의 리더십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해마다 새마을금고가 쓰는 복지사업 투자비는 1700억원이나 된다. 무의탁노인 소년소녀가장 쪽방촌 독거노인 지원과 노인복지관 보육원 장애인복지관 임신육아지원센터 등에 기부된다. 농어촌 의료사업과 복지매장 미곡처리장 농수산물직거래 농어촌 체험시설 등 지역 사회 개발사업에도 새마을금고가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우간다 등 개도국에 새마을금고 수출
지난 해 11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새마을금고는 미얀마 새마을금고 운영진을 대상으로 역량 강화를 위한 비대면 온라인 현지 연수를 실시했다. 3일 동안 진행된 연수에서 새마을금고의 성공사례를 전했다. 사진 새마을금고 제공

새마을금고는 2016년부터 미얀마를 시작으로 우간다와 라오스 등 개발도상국에 새마을금고 모델을 전파하는 국제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해외에 전파하듯 새마을금고의 지역공동체 의식과 자립심, 공익성 등을 해외에 전수하는 일이다.

”새마을금고 모델을 통해 주민들에게 저축 습관을 기르고 자본을 모아 사업자금을 대출해줍니다. 개도국의 새마을금고 회원들은 자립과 저축의 중요성을 경험하고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지역 공동체에선 소득이 증가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죠. 우간다 정부가 최근 새마을금고에 영구법인 설립 인가를 내줘 빈곤 감소의 플랫폼으로 새마을금고의 위상이 주목 받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주한 베트남대사는 최근 박 회장을 찾아와 베트남협동조합과 새마을금고가 자매 결연을 맺자고 제안해왔다. 새마을금고의 글로벌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이 서울 삼성동 MG중앙회에 마련된 MG블루원정대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했다. 캐릭터인 파랑새는 코로나에 지친 고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고안한 것이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새마을금고는 1963년 경남 산청에서 협동조합 형태로 시작됐다. 박 회장은 58년의 역사를 가진 새마을금고역사관을 본산지인 산청군에 짓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내 완공을 목표로 새마을금고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박 회장은 젊은 세대들이 새마을금고를 보다 많이 이용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지난해부터 방송중인 새마을금고 광고에선 ’트로트 영탁‘이 출연하고 있다.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한 포석이다.

”새마을금고는 순수 민족자본입니다. 시중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60~70%나 됩니다. 이익을 내면 금고에선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지만 은행은 외국인 주주들 배만 불리는 셈이죠.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 때 많은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이 들어갔지만 새마을금고엔 정부 돈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자력으로 극복해냈지요.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면 새마을금고 체크카드 하나만 써줘도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챙길 수 있습니다.“

박 회장은 청소년 장학사업과 함께 사회적 기업 지원, 청년 창업에도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다. 철거 이주민 출신으로 사회의 그늘진 곳과 소외층을 챙기는 박 회장을 울산에서는 아직도 ’Mr. 반창고‘로 기억한다. 고객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한다는 경영 철학은 철거 이주민으로 유통 대리점을 할 때 시작된 것이었다.

박차훈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은 올해 준공을 목표로 경남 산청에 새마을금고역사관을 짓고 있다. 이 곳에서는 새마을금고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담겨 민족자본에서 출발한 MG의 생생한 기록을 볼 수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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