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의 진수 선보이는 사찰 한정식[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입력 2021-07-21 03:00 수정 2021-07-21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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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의 전채요리와 들깨탕, 보쌈김치. 이윤화 씨 제공

사찰음식을 테마로 음식문화 탐사를 1년간 다닌 적이 있다. 말린 가죽나무 줄기로 채수(菜水)를 내는 절집의 승소(僧笑·국수) 끓이기를 배우고, 봄철 짧게 초록을 띠는 제피(조피)의 순간을 포착해 열매를 따고 껍질을 가루로 내는 비법도 익혔다. 보리등겨 메주에 고춧가루, 조청, 무, 마른 고춧잎을 넣어 등겨장을 담갔다. 그 장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을 때의 행복감을 전하는 스님도 만났다. 하지만 사찰음식의 깊이와 지혜를 알수록 감탄하면서도 사찰음식이 외식의 메인 장르에 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육류, 어류가 빠진 채 상을 차려야 하니 만드는 이는 어렵고, 먹는 사람도 제한될 수밖에 없어서다.

일찌감치 사찰 한정식을 선보인 ‘채근담’을 2002년 개점 당시부터 주의 깊게 지켜봤다. 이곳 음식이 건강에 좋을지는 몰라도 사찰음식으로 큰 규모의 식당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어느덧 설립 20년을 바라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사찰음식의 원형을 유지해 오신채(五辛菜) 사용을 자제했다. 그러다 식당을 드나드는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창의성과 대중성이 보태지며 현재의 자연주의 철학이 담긴 채근담 고유의 한식 형태를 갖췄다. 편안하면서도 색다른 센스가 돋보이고 대접받는 고급스러움이 있어 귀한 이를 모시고 가기에 손색이 없다.

조리가 쉽지 않은 채식을 기본으로 식당을 오래 유지하고 있는 김미숙 대표에게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그는 사업하는 남편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17년간 살면서 기업 관련 만찬을 손수 준비하며 한식의 가치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그의 음식 열정에 불을 붙인 막역한 인생 친구도 있었다. 서울에서 한정식 전문점을 운영하며 사찰음식에 뜻을 두고 함께 채근담을 연 올케 언니다. 안타깝게도 식당을 열고 오래지 않아 올케언니가 세상을 떠 그때부터 김 대표가 채근담을 지키게 됐다.

젓갈을 넣지 않고 담근 보쌈김치는 정갈하면서도 시원하다. 다시마, 무, 엄나무 순, 당귀 등의 채수로 끓인 들깨탕은 기분 좋은 쌉쌀함의 여운을 한결같이 남긴다. 이런 변함없는 전통식 외에 창작음식도 만들어 상차림의 조화를 이끌어낸다. 지리산에서 올라온 시금초(야생초 일종)가 올라간 토마토 콜슬로나 오이로 감싼 열대과일 모둠이 대표적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한정식과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우아한 한정식에 모던한 터치를 더하며 상차림을 조화롭게 한다. 취향의 다양성을 고려해 온전한 채식 코스는 물론 육류가 일부 포함된 자연음식 코스도 갖춰 만족스러운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 오면 전국 사찰을 돌며 음식을 하는 스님들을 만나 식재료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기억이 떠오른다. ‘절밥은 이상하게 맛있다’는 감탄사도 절로 나온다. 자연의 언어를 음식으로 경험하는 즐거운 만족감을 서울 도심 한복판 테헤란로에서도 느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이끄는외식트렌드’ 저자 yuna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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