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확대 난항-무너지는 규제 옹벽…‘집값 고점론’ 흔들린다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7-13 12:00 수정 2021-07-1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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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집값은 지금 오를 만큼 올랐다. 추격 매수를 자제해야 한다.”

최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에서 잇따라 쏟아내고 있는 ‘집값 고점론’은 대체로 이같이 요약된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도 거의 비슷하다.

그동안 집값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오른 상황에서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고 △도심주택 공급 확대로 수급불안은 해소되며 △부동산 규제는 흔들림 없이 지속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정부 고점론의 근거들이 흔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변종 바이러스 확산으로 경기 회복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연내 금리 인상 방침이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도심 공급 확대방안은 주민반대 등에 부딪히면서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고, 부동산 관련 규제도 종합부동산세, 재건축 규제 등을 중심으로 당초 계획보다 후퇴하거나 아예 철회되고 있다.

● 제동 걸리는 금리 연내 인상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오늘(13일)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국내 실물경제가 전반적인 회복 흐름이 이어지는 상황이지만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는 등 상황이 엄중하다”고 말했다. 이어 “변이 바이러스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에 따라 향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세계 경제 동향과 관련해 “주요국의 방역 재강화 조치가 이어지며 회복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며 “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미국 국채 금리도 2월 말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는 등 전반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다소 확대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발언에 한국은행의 연내 금리인상 방침이 수정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이 자산가격 상승과 양극화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전 세계가 금리 완화 기조를 유지한다면 한국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무너지는 규제 옹벽
정부가 전문가들과 시장의 우려에도 강행했던 각종 부동산 규제 방안들이 철회되거나 완화되는 등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단지 2년 실거주 의무가 결국 백지화된 일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는 어제(12일)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실거주 의무 조항을 빼기로 수정 의결했다. 민주당과 정부는 지난해 6·17 대책 등에서 재건축 조합원이 2년 실거주 요건을 충족해야만 조합원 분양 자격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대책 발표 1년여 만에 당정이 2년 실거주 의무를 자진 철회한 것이다.

여야는 또 재건축 사전 단계인 ‘안전진단’ 수행 기관을 시장·군수가 아닌 시도지사가 정하도록 하는 조항 역시 삭제했다. 법안을 발의할 때 당정은 “시장·군수·구청장의 경우 재건축조합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안전진단기관의 독립적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재건축 안전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재건축 재개발이 남발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도 담겨 있었다.

민주당은 또 7일 공시가격 9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해 부과하는 종부세법 대상을 축소하는 내용의 개정안도 내놨다. 개정안은 1가구 1주택 종부세 부과 대상을 공시가격 기준 상위 2%에 해당하는 고가주택으로 바꾸도록 했다. 이 법안은 이달 중 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 막혀버린 공급 확대
정부가 서울 도심 내 주택 공급 확대를 목표로 추진 중인 ‘2·4대책’이나 ‘8·4 대책’ 등은 난항을 겪고 있다.

‘2·4대책’은 발표 직후 터진 LH발 공직자 부동산 투기 논란에 발목이 잡히면서 핵심 분야 가운데 하나인 신규 택지(공급계획물량·26만3000채) 후보지 공개는 중단된 상태다. 당초 상반기 중에 모두 마무리할 방침이었지만 후보지에 대한 사전 검증 등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2·4 대책’의 또다른 핵심 사업인 공공주도의 도심 고밀개발 사업과 소규모 재개발(30만6000채)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주민동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업자체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인데 부산과 서울 등 일부 지역에서 주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가 민간 주도의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를 강력히 추진하면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발표한 ‘8·4대책’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소유한 공공용지를 최대한 활용해 3만3000채의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지만 1년이 다되도록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규모가 가장 큰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1만 채)의 경우 올해 안에 지구 지정 등 사전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주민과 노원구의 반발에 1년 이상 일정이 늦춰진 상태다.

정부과천청사 여유부지에 4000채를 짓겠다고 한 계획은 주민반대에 아예 무산됐다. 또 용산 캠프킴 부지(3100채)는 용산구가 최근 공고한 도시계획 결정안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지정해 주택 공급 자체가 불확실해진 상태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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