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學-硏-病 협력 백신혁신센터, 8월 정릉에 문연다

김상훈 기자

입력 2021-05-29 03:00:00 수정 2021-05-29 07: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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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사이언스 리포트]〈1〉백신 주권 넘어 백신 허브로

고려대 의대 바이러스병연구소의 연구진이 배양한 바이러스 상태를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백신을 개발하려면 바이러스를 추 출한 뒤 배양 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려대의료원 제공

《의학과 과학이 융합하는 이른바 ‘메디사이언스(메디컬+사이언스)’가 미래 의학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일보는 고려대의료원과 공동으로 현재 주목받고 있는 메디사이언스 리포트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 면역은 언제쯤 가능할까. 연내에 마스크를 벗을 수는 있을까. 이는 백신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백신 주권’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향후 더 많은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백신 원천기술을 확보하느냐가 미래의학의 최대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와 박만성 고려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에게 백신 주권에 관한 전망을 물었다.

○ ‘질병 엑스’ 언제든 다시 온다

1918년 스페인독감(H1N1)으로 세계에서 1억 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957년 아시아독감(H2N2), 1968년 홍콩독감(H3N2)이 유행할 때엔 각각 100만 명과 70만 명이 사망했다. 2009년에는 스페인독감과 항원이 같은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가 유행했다. 돼지에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 바이러스가 인체로 넘어오면서 90년 시차를 두고 다시 유행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는 뿌리가 같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면서 발생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대유행은 이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기존에 알려진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킬 수도 있고, 에이즈나 에볼라처럼 동물에게만 침투하던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들어오면서 전염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바이러스의 공격에 당장 면역력이 없는 인류는 속수무책이다. 문제는 앞으로 어떤 바이러스가 유행할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2018년 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8종류의 바이러스를 발표하면서 맨 마지막 전염병을 ‘질병 엑스(Disease X)’라 명명(命名)했다. 코로나19 위기를 넘기더라도 질병 엑스는 다시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세계 유일의 백신, 우리도 만들었었다

유행성출혈열(신증후출혈열)은 들쥐가 옮기는 감염병이다. 발열과 출혈에 이어 신부전으로 이어진다. 치사율이 최근에는 5% 이내로 줄었지만, 한때 20%를 넘길 정도로 심각했다.

이 병은 6·25전쟁 때 3000여 명의 유엔 병사들에게 증세가 나타나면서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다가 1976년 이호왕 현 고려대 명예교수가 들쥐의 폐 조직에서 원인 바이러스를 처음 분리했다. 쥐를 잡은 지역이 한탄강이라 한타바이러스라 명명했다. 세계 최초로 바이러스 정체를 규명한 데 이어 GC녹십자가 세계 최초로 백신을 개발했다. 이것이 한타박스다. 유행성출혈열 백신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이 세계를 리드했다.

2009년 신종플루 사태 이후 신종인플루엔자 범부처 사업단이 가동됐다. 이 사업단은 고려대 의료원이 주도했다. 그 전까지 독감 백신은 전량 수입했다. 사업단은 정부 지원을 받아 다양한 백신을 개발했다. SK케미칼과 함께 4가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4가 세포배양 백신을 개발하고 생산했다. 유정란을 배양해 독감 백신을 만드는 방식에서 한걸음 나아간 새로운 방식이었다. 덕분에 생산 기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당시 사업단은 30∼40개의 과제를 이행하면서 백신의 기초와 원천기술 개발부터 생산과 상용화까지를 시도했다. 인플루엔자 백신 주권의 역사를 써냈다.

○코로나 사태, 왜 백신 개발에 뒤처졌나


사업단은 6년 만에 해체됐다.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는 잊혀졌고, 백신 연구인력도 뿔뿔이 흩어졌다. ‘백신 인프라’를 구축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백신 개발에는 많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하다. 개발하고도 해당 질병이 퍼지지 않으면 팔 수 없다. 그러니 자금력이 열악한 국내 제약회사나 바이오 기업은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백신 부재’의 책임을 기업에만 물을 수 없는 이유다.

김 교수는 “백신 개발 작업은 일종의 오케스트라와 같다”고 말했다. 모든 악기가 어우러져야 멋들어진 협주가 나오듯 면역학, 감염의학, 바이러스학, 역학, 통계학 등이 동원되고 체계적인 협업이 이뤄져야 백신이란 작품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백신이 개발된 뒤에도 마찬가지다. 동물실험, 임상시험, 정부 허가, 접종 부작용 모니터링, 가격 책정, 생산 등 여러 단계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돼야 한다.

박 교수는 “이런 점 때문에 백신 사업은 다른 질병 치료제와 달리 산업체, 학교, 연구소, 병원이 함께 움직이는 이른바 ‘산학연병(産學硏病)’ 협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이를 위한 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다.

○‘산학연병’ 협력, 새 모델 필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글로벌 기업들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이미 10년 이상 백신 연구와 개발에 전념했기 때문에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 기업이 독자적으로 백신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지도 않았다. 이번 코로나19 백신에서 배울 점이 이것이다. 화이자는 독일 바이오 기업인 바이오엔텍과 함께 백신을 개발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 옥스퍼드대와 공동 개발했다. 모더나는 정부의 전적인 지원을 받았다. 일종의 ‘산학연병’ 시스템이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는 말이다.

고려대 메디사이언스 파크 조감도. 고려대의료원 제공
전문가들은 백신 주권을 확보하려면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침 국내에도 이런 모델이 등장했다. 고려대가 8월 서울 정릉에 문을 여는 ‘메디사이언스 파크’가 그것이다. 이 캠퍼스 안에 국내 처음으로 백신의 ‘산학연병’ 협력을 추진하는 백신혁신센터(VIC-K)가 운영된다. 백신혁신센터는 △감염병 연구와 전문가 양성 △백신과 신약 개발 △다양한 백신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한다. 고려대와 고려대병원, 제약 및 바이오 기업이 참여한다. 대학과 연구소는 백신 개발에 필요한 기초연구와 동물연구를 진행한다. 원천기술을 개발하면 산업체에 기술을 이전하게 된다. 임상시험과 시판 후 부작용 연구는 병원이 맡는다.

○범용 백신 이어 암 백신에도 적용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mRNA 기술로 만들어졌다. 이 기술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단백질을 인체가 생성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기존 방법에 비해 생산하기가 쉬워 6개월이면 백신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고려대 백신혁신센터는 이 mRNA 백신 플랫폼을 바탕으로 다중 백신과 범용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잡았다. 다중 백신은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를 동시에 예방하는 백신을 말한다. 범용 백신은 코로나19의 모든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백신을 뜻한다.

이게 가능할까. 김 교수는 “현재 세계적으로 이와 관련된 특허가 300여 종이 있다. 이 특허를 우회하거나 응용을 통해 독창적 방법으로 우리만의 원천기술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술을 활용해 암, 면역질환 등 다양한 분야의 백신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센터는 2, 3년 안에 mRNA 플랫폼을 이용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어 5년 내에 이를 이용해 여러 백신을 상용화하며, 10년 후에는 아시아 지역에까지 백신을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교수는 “백신 주권을 확립하면 그 다음은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 무상 혹은 저가에 공급하는 백신허브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동아일보-고려대 의료원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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