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내년 1월로 연기된 가상화폐 과세, 국회는 또 “1년 유예” 논란

세종=남건우 경제부 기자

입력 2021-05-25 03:00 수정 2021-05-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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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세 6개월 앞… 여전히 찬반논쟁


세종=남건우 경제부 기자
《요즘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2030세대의 마음은 복잡하다. 문모 씨(33)는 ‘집보다 가상화폐’가 먼저다. 가상화폐에 5000만 원가량을 투자한 그는 서울의 청년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문 씨는 “마흔까지는 임대주택에 살며 투자로 자산을 불린 뒤 집을 살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난제가 생겼다. 내년부터 가상화폐 수익에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그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정부가 기본적인 투자자 보호 장치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 얻은 수익에서 세금을 떼는 건 명분이 약하다”고 말했다. 또 20대 박모 씨는 문 씨 같은 친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서울의 시세 5억 원짜리 아파트를 사는 데 이미 온갖 대출을 끌어 썼기 때문에 코인시장에 발을 담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박 씨는 “부동산 세금은 갈수록 강해지는데 가상화폐엔 아직도 과세하지 않는다니 억울하다”고 말했다.》

내년 1월 1일 가상화폐 과세가 시작된다. 과세 시기가 6개월가량 앞으로 다가왔지만 찬반 논쟁은 여전하다. 정부가 과세 방침을 정했는데도 시장은 왜 이리 시끄러운 것일까.

○ 한 번 미뤄진 과세, 시장 요동치자 또 “유예” 논의

정부의 가상화폐 과세 구상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2017∼2018년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300만 원대에서 2000만 원대까지 널뛰며 가상화폐 대란이 불거진 직후다. 2019년 12월 가상화폐 과세 방안을 추진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세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올해 10월부터 가상화폐에 투자해 연간 250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면 수익의 20%를 세금으로 걷겠다고 밝혔다. 수익은 가상화폐 매도금액에서 취득금액과 수수료를 빼고 남은 금액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을 거래해 1000만 원을 벌고, 같은 해 500만 원의 손해를 봤다면 합산 수익 500만 원이 가상화폐 소득으로 인정된다. 여기서 250만 원을 넘어서는 금액에 대해 20%를 부과하니, 50만 원을 세금으로 내면 된다.

정부는 가상화폐에 세금을 매기며 가상화폐 투자 소득을 로또 등 복권 당첨금과 같은 ‘기타소득’으로 봤다. 기타소득에 부과되는 기타소득세는 납세자가 자발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가상화폐 투자자는 매년 5월 전년 얻은 수익과 손실을 합산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가상화폐 업계에선 “과세를 위한 인프라를 마련해야 하니 과세 시기를 미뤄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정치권도 호응했다. 당시 국회 조세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업계의) 인프라와 준비 상황 등에 대해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올해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던 가상화폐 과세는 3개월 미뤄져 내년 1월부터 시작된다.


그럼에도 과세 논란은 여전하다. 올해 들어 가상화폐 가격이 요동치자 이미 한 번 미뤄진 가상화폐 과세를 다시 유예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2일 “가상화폐 투자자들까지 정부가 다 보호할 수 없다”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취업난과 자산 격차에 따른 박탈감에 코인에 투자하던 청년들이 반발했고 정치권에선 여야를 가리지 않고 다시 진화에 나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양향자 의원은 “가상화폐 과세 유예가 필요하다”며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서 과세를 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가상화폐가 무엇인지 명확한 정의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세금부터 매긴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과세를 1년 유예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식에 대한 과세와의 형평성 논란도 있다. 주식은 5000만 원이 넘는 투자 수익에만 세금을 물지만 가상화폐는 합산 수익이 250만 원을 넘으면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더는 과세를 미루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이미 가상화폐 과세를 하고 있는 데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세원칙”이라며 “도박이나 뇌물로 얻은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를 하는 것처럼 세금을 매긴다고 해서 어떤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 한국은 주무 부처도 못 정했는데, 세계 각국은 가상화폐 제도 정비


해외 주요국들은 이미 가상화폐에 세금을 물리고 있다. 일본도 가상화폐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분류해 최고 세율 55%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양도소득으로 보고 보유기간에 따라 0∼37%의 세율을 부과한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이 과열되자 세계 각국은 과세를 넘어 규제에 나섰다. 미국 재무부는 이달 20일(현지 시간) “앞으로 1만 달러 이상의 가상화폐 거래는 반드시 국세청(IRS)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한다”고 밝혔다. 탈세 등 불법 행위를 엄벌하려는 취지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회원국 27곳에 공통으로 적용할 가상화폐 규제 방안을 만들고 있다.

중국은 더욱 강력한 규제를 내놨다. 중국 금융당국은 이달 18일 은행업협회, 인터넷금융협회, 지불청산협회 등의 공동 발표를 통해 가상화폐 사용 불허 방침을 내렸다. 금융사들이 가상화폐 관련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중국 정부는 가상화폐 채굴까지 봉쇄할 방침이다.

한국 정부도 과세안과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마련하긴 했지만 주무 부처가 정해지지 않다 보니 시장이 계속 혼란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도 주무 부처를 정하지 못했다. 시장에선 “가상화폐 문제가 불거진 게 언젠데 정부가 가상화폐를 제대로 공부하지도 못해 방침을 못 정하고 책임만 미룬다”는 한탄이 들린다.

○ 정부, 책임 그만 미루고 투자자 보호 적극 나서야

과세 논란과 정부의 책임 미루기에 가상화폐 시장은 더 큰 혼란에 휩싸이지 않을지 우려된다. 특금법 시행에 따라 거래소들이 올 9월 말까지 은행에서 실명 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정을 갖춰 사업자 신고를 완료해야 영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무조정실 등 관계부처는 지난달부터 다음 달까지를 ‘범정부 차원의 특별단속기간’으로 정하고,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세탁, 사기 등 불법 행위를 집중 단속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상화폐 거래소 이용약관에 투자자에게 위험을 전가하는 불공정한 내용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 불법행위를 단속하겠다고 엄포를 놓고는 있지만,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제도를 만들지에 대한 ‘큰 그림’은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주무부처가 없으니 어느 정부기관도 가상화폐 문제에 대해 책임 있게 나서지 못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한 관점과 주무부처를 정해야 장기적 안목에서 제도를 정비하고 규제에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세종=남건우 경제부 기자 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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