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일손가뭄’에 속타는 농어촌… “일당 3배 준다 해도 못구해”

괴산=유채연 기자 , 박종민 기자 , 세종=주애진 기자

입력 2021-04-28 03:00 수정 2021-04-2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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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외국인 근로자 신규입국 사실상 중단… 인력수급 절벽

23일 오전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담배 농사를 짓는 여정순 씨(57·여)가 밭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여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1년 넘게 외국인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괴산=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외국인근로자는 일당 3배를 준다 해도 찾을 수가 없어요. 한국인은 아예 오려고도 안 하고…. 정말 올해 농사도 앞이 깜깜합니다.”

23일 오전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 있는 한 담배밭. 900평(약 2975m²)이 넘는 넓은 밭엔 주인인 여정순 씨(57) 부부와 나이 지긋한 어르신 3명밖에 없었다. 한참을 밭을 갈다 ‘에구구’ 소리를 내며 겨우 허리를 편 여 씨는 “저쪽 밭은 또 언제 간대”라며 혼잣말을 했다.

봄을 맞아 갈수록 할 일이 늘고 있지만 여 씨 부부는 걱정이 태산이다. 외국인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통사정 끝에 친척 3명이 도우러 왔지만 모두 일흔이 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 씨 부부가 하루 12시간씩 강행군해도 농사 일정을 맞추기 어렵다. 여 씨는 “지난해부터 외국인근로자 씨가 말라 인건비가 몇 배로 든다. 올해는 일당이 15만 원까지 치솟았다. 농사를 30년 지었지만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라며 속상해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1년 넘게 이어지며 힘겹지 않은 국민이 없지만, ‘일손 공백’까지 겪고 있는 농민과 어민 등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외국인근로자 신규 입국이 사실상 중단돼 인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광어 양식을 하는 지상일 씨(43)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지 씨는 체류기간이 만료된 외국인근로자 3명을 떠나보낸 뒤 추가 인원을 못 구해 큰 손해를 입었다. 남은 직원 넷과 열심히 노력했지만 10월에만 광어 20t을 폐사로 잃었을 정도다.

올해도 눈앞이 캄캄하다. 외국인근로자 배정을 신청한 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소식이 없다. 지 씨는 “수온이 오르면 광어를 분산해야 하는데, 일손이 달려 이틀 걸릴 작업이 열흘 넘게 걸렸다”며 “대안이 없으니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간다”며 한숨지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비전문취업(E-9) 비자를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근로자는 3650명. 2019년 3만7213명이 입국했던 것과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현재 국내에 있는 외국인근로자는 16만8940명(3월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약 5만 명이 줄어들었다.

현장의 일손 부족은 외국인근로자에게도 커다란 고역이다. 경기도에 있는 한 소규모 제조업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A 씨(42)는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노동 강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11월 체류기간이 끝난 동료 3명이 떠난 뒤 남은 동료들이 부족한 인력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고용부는 이달 2일 태국과 베트남 등 비교적 코로나19 상황이 나은 5개국에서 신규 외국인근로자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농가에 ‘내국인 파견근로자 고용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파견근로업체를 통해 근로자를 고용한 농가에 4대 보험료와 수수료 등 1인당 월 36만 원을 대신 내주는 방식이다. 외국인근로자 체류 연장 카드도 내놓았다. 법무부 등은 13일 “올해 말까지 체류 및 취업활동기간이 끝나는 외국인근로자는 기간을 1년 연장해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선 실효성 없는 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상황이 유동적이라 외국인근로자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고, 이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남은 이들의 체류 연장으로 버티긴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어민 오재혁 씨(42)도 “이미 외국인근로자들은 다 출국했는데 이제와 기간을 늘려준들 무슨 소용이냐”고 푸념했다.

한 노동 전문가는 “장기적으로는 외국인근로자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개선해야겠지만 당장 생계가 걸린 농어민들을 도울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현장 실태를 파악해 맞춤 처방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괴산=유채연 ycy@donga.com /박종민 / 세종=주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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