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규제 대상 플랫폼, EU 10개 - 日 5개 - 韓 80개

황태호 기자

입력 2021-04-27 03:00:00 수정 2021-04-27 08: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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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추진 ‘온플 공정화법’ 논란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 A사는 여행지에서 돌아다니는 일정과 방법을 이용자의 성향에 맞게끔 추천하고 예약을 중개하며 수수료를 받는다. 2018년 서비스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넘겼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80명이 넘던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인 뒤 지금은 여기저기서 끌어 모아둔 투자금으로 버티는 중이다.

A사는 당장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온플법)이 시행되면 플랫폼 갑질을 막기 위한 규제 대상으로 분류돼 모든 입점업체에 영업비밀로 볼 수 있는 정보들을 알려줘야 한다. 연매출이 100억 원 이상인 온라인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보고 벌거벗은 채 경쟁하라는 꼴”이라고 말했다.

○ 규제 대상 기업 80곳에 이르러

26일 스타트업 이익단체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이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온플법 규제 대상 기업은 80개에 이른다. 온플법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이 입점업체에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걸 막겠다”며 지난해 마련한 법안으로 올해 1월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의 민형배, 김병욱 의원도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다.


적용 대상이 되는 기업 범위는 ‘매출 100억 원 이상 혹은 거래액 1000억 원 이상’이다. 스타트업들은 “쿠팡, 네이버 잡으려다가 스타트업들을 고사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올 2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대상 기업이 20∼30개”라고 밝혔지만 법안에 명시된 매출, 거래액 기준으로 보면 두 배 이상으로 많다. 특히 규제 대상 80개 기업 중에는 서비스업종 중소기업 분류 기준상 매출 600억 원 이하로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기업도 40개나 포함돼 있다. 일례로 유통 스타트업인 B사는 2019년 기준 연매출이 49억 원, 직원 수는 90명에 불과하지만 거래액이 1500억 원이라는 점 때문에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온플법 제정 당시 정부가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진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 제정안은 유럽 내 매출이 65억 유로(약 8조8000억 원) 이상 혹은 기업가치 650억 유로 이상인 10개 기업이 규제 대상이다. 일본의 ‘특정 디지털 플랫폼법’은 매출 3000억 엔 이상 이커머스 사업자와 2000억 엔 이상 앱마켓 사업자로 범위를 좁혀 5개 기업만 규제한다. 구글 아마존 애플 라쿠텐 등 모두 거대 플랫폼 사업자다. 정미나 코스포 정책실장은 “현재 법안 기준대로라면 창업 4, 5년 차로 입점 판매자에 지배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소규모 플랫폼도 규제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 “영업비밀 침해… 변화 속도 못 따라갈 것”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 시행되면 일정 규모 이상의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입점업체에 수수료 부과 기준, 광고비 산정 기준, 검색 및 노출 기준을 공개해야 한다. 의원입법안 중에는 플랫폼 이용사업자에게 단체구성권과 거래조건 변경협의권을 부여한 것도 있다.

스타트업들은 수수료의 부과 기준이나 온라인 플랫폼에 노출되는 순서, 형태 등을 계약서에 기재하도록 한 점에 특히 반발하고 있다. 명품 전문 이커머스 스타트업 관계자는 “상품 노출 순서는 핵심 영업비밀”이라며 “공개되면 경쟁사가 따라하거나 어뷰징 등으로 비즈니스가 망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입점업체에 일정 수준의 예측 가능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도록 한 것이며, 알고리즘을 공개하진 않는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플랫폼 규제 강화 기조가 이달 말 발표 예정인 대기업집단 현황에서 김범석 쿠팡 의장의 ‘동일인’ 지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는 지금껏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지 않았고 미국 국적의 김 의장에게도 ‘동일인 없는 대기업집단’ 방식을 적용할 것이 유력했다. 하지만 이달 21일 이례적으로 전원회의를 열고 이 사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경 서울과기대 IT정책대학원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법이 제시하는 거래기준이 변화의 속도를 맞출 수 없다”며 “규제 일변도로는 결국 경직된 거래관행만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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