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아니라서 규제 피한 식자재마트, 골목시장 석권

황태호 기자

입력 2021-04-08 03:00 수정 2021-04-0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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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기업형 슈퍼, 매출 감소에도 식자재마트는 작년 20% 증가
식당에 재료 납품하며 출발… 골목상권 진입해 생활용품 팔아
온라인 주문-배달로 고객층 넓혀
전통시장 소상공인 “규제 늘려야”… 입법발의 했지만 국회 계류중




지난해 말 경기 시흥시 삼미전통시장 상인들과 인근 소규모 슈퍼마켓 주인들은 거리로 나섰다. 인근 재건축 아파트 상가건물에 중형마트인 ‘세계로마트’가 입점하는 것에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세계로마트가 입점하는 상가와 전통시장 간 거리는 약 400m로 유통산업발전법에서 정한 대형마트 ‘출점 제한 거리’(1km) 범위에 속한다. 하지만 세계로마트는 대기업이 아닌 데다 점포 면적도 대형마트 기준인 3000m²보다 작다. 시흥시 관계자는 “상인들의 우려를 알지만 입점을 제한할 근거가 없었다”고 말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들이 신규 매장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은 반면에 이른바 ‘식자재마트’라고 불리는 중형 마트들은 출점에 별다른 제한을 받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식자재마트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 ‘골목의 코스트코’로 약진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식자재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2019년에 비해 최대 20%까지 증가했다. 수도권에 수십 개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로마트와 세계로유통, 세계로더블유스토어 등 3개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3977억 원으로 전년(3328억 원)보다 20% 증가했다. 대구에 거점을 두고 매장 10여 곳을 운영 중인 장보고식자재마트의 지난해 매출도 3770억 원으로 전년보다 20%가량 늘었다. 경기권의 마트킹과 엘마트, 경남권의 좋은이웃마트 등 지역 업체들도 실적이 개선됐다. 대형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의 실적이 지난해 대체로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재 점포 수가 6만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식자재마트는 인근 식당 등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도매업 형태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12년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시행된 뒤 틈새를 노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영업망을 넓혔다. 상품 구색도 식자재에서 생활용품, 가전제품 등으로 확대하고 온라인 주문, 배달까지 해주면서 ‘골목의 코스트코’라고 불리기도 한다. 최근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한 자리에 엘마트가 입점하는 등 대형마트로 사세를 키우는 곳도 있다.

○ 코로나19 여파 집밥 수요 늘며 매출 늘어

유통업계 관계자는 “주요 식자재마트는 유통 규제 초기인 2015년 이전과 비하면 연매출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며 “뛰어난 접근성에 지난해 집밥 수요 증가로 가정용 식자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코로나19에도 매출이 커졌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장 출신의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일부 정치권에선 이들에 대해 대형마트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된 상태다. 유통업계에선 “업체들이 지역구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강해 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자체적으로 식자재마트를 규제하기도 한다. 장보고식자재마트는 2015년 대구시의 ‘서민경제특별진흥지구 지정 및 운영’ 조례 시행으로 출점에 제한을 받자 부산, 울산 지역으로 신규 출점 대상지를 옮겼다. 충북 제천시는 최근 지역 화폐인 ‘모아’의 가맹을 받아주지 않고, 위생관리를 수시로 점검하는 방식으로 식자재마트에 상대적 불이익을 주고 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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