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놓친뒤 ‘LH 수사판’에 檢 뒷북투입…우왕좌왕 文정부

이태훈 기자

입력 2021-03-31 11:24 수정 2021-03-3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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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당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수사에 검찰 참여를 배제했던 정부가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상황이 다급해지자 검찰에 다시 손을 내밀고 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며 검찰을 공중분해할 것 같은 기세였으나 부동산 민심이 들끓고 선거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간 경찰이 주도한 ‘LH 수사판’에 검찰을 다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LH 사태 초기에는 수사력과 경험이 검증된 검찰을 배제했다가 한 달이 지나 수사의 ‘골든타임’을 놓친 상태에서 뒤늦게 검찰 투입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시기도 놓치고 실효성도 떨어지는 때늦은 지각 투입”이라며 “나중에 LH 수사가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면피성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에서는 ‘전국 43개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 사범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500명 이상의 검사와 수사관을 투입하고,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부동산 부패 관련 송치 사건과 검찰 자체 첩보로 수집된 6대 중대범죄를 검찰이 직접 수사하도록 한다’는 29일 정부 발표가 사실상 ‘말장난’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제한돼 있는 데다 핵심 의혹인 LH 투기는 경찰이 이미 수사를 하고 있어 검찰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은 국가수사본부의 지휘로 전국에서 LH 직원 등의 땅 투기 의혹을 1차적으로 광범위하게 수사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검찰은 고육지책으로 과거 검찰이 최근 5년간 처리했던 부동산 투기 사범 사건을 뒤져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자투리 단서를 찾고 있다. 또 올해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송치한 범죄와 관련해 추가로 인지한 관련 범죄는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활용해 경찰의 부동산 수사를 보완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돌파구를 모색하든지 간에 현행 수사 체계와 경찰이 이미 스타트를 끊은 LH 수사판에서 검찰에게 과거 같은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검찰청에 설치될 전담수사팀은 부동산 투기 관련 경찰 송치 사건을 처리하는 담당 창구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대검찰청 청사 전경. 동아일보 DB.
또 검찰 내부에서는 정부의 지시로 뒤늦게 수사에 합류했다가 이미 정치 이슈로 비화된 LH 수사의 풍파에 검찰이 휘말리게 될까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선거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정면 돌파를 택한 정권 입장에서는 검찰까지 총동원하며 비리 척결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반면 검찰로서는 사태 초기 수사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나중에 결과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책임을 안 질 수는 없는 난감한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검찰총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조남관 대검 차장이 31일 전국 검사장 화상회의에서 “법령상 한계라던가 실무상 어려움은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국가비상상황에서 검찰공무원들이 책임 있는 자세로 지혜를 모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힌 것도 현재 검찰이 안고 있는 애로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조 직무대행은 “중대한 부동산 투기 범죄는 기본적으로 공적 정보와 민간 투기세력의 자본이 결합하는 구조로 이루어지며 이 부패 고리를 끊을 필요성이 크다”며 “5년간의 사건을 분석하는 것도 예전 사건을 다시 처벌하자는 취지가 아니라 기록에 숨겨진 투기세력들의 실체를 파악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과거 투기세력들이 새로운 개발 사업에도 참여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기획부동산 등 투기세력들을 발본색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에 빠진 여권에 검찰이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지 향후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골든타임이 지나고 검찰에 여러 수사 제약이 많다는 점에서 여권의 기대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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