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짓는 ‘이장 목사’… “함께 살며 섬기는 게 참된 목회”

진안=김갑식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3-29 03:00 수정 2021-03-2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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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옥토성결교회 최인석 목사
2010년 정착해서 밭 일구며 목회, 홀로 사는 이웃 어른들 돌보고
청소년 그룹홈 운영하며 멘토 역할… 이장까지 맡아 마을 대소사 챙겨
“나누며 사는 게 사람 사는 재미”


농부와 이장, 목회자로 살고 있는 전북 진안 옥토성결교회 최인석 목사는 부활절(4월 4일)을 앞두고 “다시 사신 예수 부활의 소망, 기쁨이 코로나로 힘든 대한민국 위에 함께하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진안=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오늘 퇴비 와요.” “예, 시간 내서 TV랑 화장실 고쳐 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할머니 댁에 가 봤는데 별일 없더라고요.”

9일 찾은 전북 진안군 오천리 평촌마을 ‘이장 목사’ 최인석 씨(54)의 휴대전화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 마을은 41가구에 80명이 거주하는데, 노인 혼자 사는 집만 19가구나 된다.

진안 옥토성결교회 최 목사는 농부이자 이장, 보살핌이 필요한 청소년들의 삼촌, 목회자로 1인 4역을 꾸려가고 있다. 처음부터 농촌 목회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1992년 서울신학대를 졸업한 뒤 터키에서 10년간 선교사로 활동했다. 2002년 귀국한 그는 청년 사역에 이어 충남 당진시의 한 양로원 원목으로 있다가 2010년 진안에 정착했다.


―어떻게 이곳에 정착했나.

“양로원에서 1년 넘게 노인들을 섬겼는데 정작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는 못 모시고 있어서 귀농을 결심했다.”


―여기가 고향인가.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전북 완주군 삼례읍이 고향이다. ‘무진장’의 진안이 청정 지역인 데다 귀농을 위한 지원 등 조건이 좋아 정착했다.”

2010년 진안 읍내에 아동보호시설 ‘창조의집’을 연 그는 2012년 귀농정책자금 등으로 평촌마을에 밭과 집을 마련했다. 2016년 가로 6m, 세로 3m의 컨테이너에 작은 나무십자가를 달았다. 그해 12월에는 마을 이장이 됐다. 고추재배와 함께 기관지, 염증 치료에 좋다는 개복숭아 농사를 지어 즙을 판매하고 있다.


―새 교회는 단층이지만 번듯하다.

“컨테이너 교회는 좁은 데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웠다. 하나님께 교회를 달라고 함께 기도했는데 기적이 이뤄졌다. 고추 농사짓던 땅이 교회 부지가 되고 주변에서 건축비도 도와줘 2018년 새 예배당에 입당했다.”


―농부, 이장, 목사 중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

감자를 심기 위해 골을 만드는 모습. 진안=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한 가지 더 보태 삼촌 역할이 있다. 청소년을 위한 그룹홈을 운영 중인데 지금까지 30여 명이 거쳐 갔다. 농촌엔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사랑에 배고픈 아이들이 적지 않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힘들면서도 보람 있는 일이다.”


―이장은 어떤가.

“이장은 재미있다. 마을에서 젊은 편이라 마을 간사와 노인회 총무를 맡고 있는데 ‘간사님, 우리 마을에 살게 해야 된다’며 이장 감투까지 주셨다. 마을에서 30년 살아도 외지인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장을 두 번째 하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마음을 얻은 비결이 뭐냐.

“여기 어르신들은 한동안 내가 목사인 줄 몰랐다. 그런 티도 내지 않았으니까. 그냥 농사지으며 아이들과 같이 살았다. 그러면서 마을회관에서 한글과 산수 교실, 건강 체조, 한지 공예처럼 화투를 대신할 수 있는 문화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했다.”


―일 잘하는 ‘젊은’ 이장 있으니 평촌마을이 복 받았다.

“보람 있는 머슴이 됐으니, 복은 내가 받았다.”


―뒤편에 양로원도 보인다.

“지난해 10월 완공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다. 방 5개와 거실, 부엌 등이 있다. 어르신은 손자들을 보고 싶고, 아이들은 가족의 정이 그립다.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 가을 무렵 교회 앞 공간에 빵 카페가 있는 작은도서관 ‘상상공유소’를 개관해 문화복지프로그램을 재개할 생각이다. 뒤쪽에는 4계절 이용할 수 있는 실내 수영장을 만들어 어르신들 건강에 도움을 주고 싶다.”


―농부 성적표는 어떤가.

“고추 농사는 웬만한 편이다. 개복숭아즙이 잘 팔려 교회도 자립하고, 문화 프로그램 운영계획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웃음).”


―농촌 목회를 위한 조언을 준다면….

“지역에서 함께 살고, 어르신들을 잘 섬기는 게 목회다. 나누고 살다 보면 어느 날 교회 앞에 감자, 양파, 마늘이 놓여 있다. 이런 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닌가.”

진안=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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