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7명 더 찾았다고? 국민을 바보로 아나” 투기의혹 들끓는 민심

황재성 기자

입력 2021-03-11 15:54 수정 2021-03-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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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LH 땅 투기 의혹 관련 정부합동조사단은 1차 조사 전수조사 결과 20명의 투기 의심자를 적발했다고 11일 발표했다. 2일 시민단체가 의혹을 제기한 지 9일 만에 나온 결과로, 시민단체가 의혹을 제기한 인원에 7명이 추가됐다. 청와대도 이날 비서관급 이상 고위직 참모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투기 의심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 발표가 야당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제시된 투기 의심 사례 수치와 큰 차이를 보이자 누리꾼과 3기 신도시 지역 주민들이 “바보로 아느냐”며 불만 섞인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부실 조사 논란도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투기 여부를 가리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하지만 1차 조사 결과가 예상을 밑돌면서 부실 논란을 피하기 위한 추가 작업이 크게 늘어나게 됐다. 또 정부가 수사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어서 최종 결과를 내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투기 혐의자, “20명” VS “74명”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2시 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와 LH의 전 직원 1만4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명의 투기 의심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번에 확인된 투기 의심 사례자는 모두 LH 직원이며, 주로 투기 의혹 거래는 광명·시흥 지구에 집중됐지만 다른 3기 신도시 지구에서도 일부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는 이어 “이번 조사에서 토지와 아파트 등 주택 거래내역도 확인했다”며 “거래내역 모두를 특수본에 이첩해 수사참고 자료로 활용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범죄 혐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땅과 아파트 등을 포함한 부동산 거래자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조사를 펼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사는 △3기 신도시 6곳(광명 시흥·남양주 왕숙·하남 교산·인천 계양·고양 창릉·부천 대장)과 △택지면적 100만㎡ 이상인 과천 과천지구, 안산 장상지구 △고양시 행신동과 남양주 다산신도시 등 총 10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도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1차로 비서관급 이상 본인과 배우자 및 직계가족 368명에 대한 토지 거래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투기를 의심할 만한 거래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언론보도 등을 통해 나오고 있는 투기 의심 사례와 수치가 크게 차이가 난다”며 “부실 조사와 늑장 수사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국민의힘 부동산투기조사특별위원회 소속 곽상도 의원실은 이날 2018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광명·시흥 7개 동의 토지거래 내역을 조사한 결과 LH 직원과 같은 이름을 가진 토지 보유자 74명, 64건의 토지거래 내용을 확인했다고 공개했다.

토지 매입자와 같은 이름의 LH 직원 40명의 근무지는 수도권이었고, LH 직원과 이름이 같은 2명 이상이 ‘지분 쪼개기’로 의심해 볼 수 있는 공동 소유 필지는 10곳이나 됐다. 직접 거래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채무자’로 등기부 등본에 이름을 올려 지인 또는 가족의 이름을 빌려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양측의 수치가 큰 차이를 보이면서 3기 신도시 주민과 누리꾼들은 “10여 일 동안 조사해서 1만4000명 직원 중에 고작 20명! 국민이 바보인가요?(네이버 이용자 akcb****)”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3기 신도시 거주자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서 조사 같지도 않은 조사를 진행한 후에 7명의 추가 의혹을 발표한 것 같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 불법 투기 색출에 상당 시간 걸릴 듯

정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특수본에 넘기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도록 할 방침이다. 2차 조사 대상은 △국토부·LH 직원의 가족 △신도시 가 위치한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직원(6000여 명)과 지방 공기업 직원(3000여 명) 등 직원 9000여 명과 그 가족이다. 정부는 전체 대상인원이 1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범죄 여부를 밝혀낼 추가 수사에 상당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10만 명에 달하는 대상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차명 및 가명 거래자를 추가로 찾아내야 한다. 또 필요에 따라서는 수사대상지역을 확대될 수도 있다.

여기에 투기 의혹 대상자가 내부 정보를 이용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것이 관건인데, 당사자가 이를 부인할 경우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지난한 재판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을 받아내야 한다. 국민들이 원하는 ‘투기꾼 적발과 그에 따른 처벌’까지 생각보다 매우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LH 투기 의혹 제기 이후 전국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 제보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이번 조사 결과처럼 특수본 수사 결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커질 대로 커진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수 있어서다.

이를 의식한 정부도 1차 조사 발표에서 ‘부동산 범죄의 전쟁’을 선언하며 강도 높은 투기 조사 방침을 밝혔다. 정 총리는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운 공기업과 공무원들의 범죄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며 “모든 의심과 의혹에 대해서 이 잡듯 샅샅이 뒤져 티끌만한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 커지는 정부와 여당의 고민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신도시시 땅 투기 의혹 1차 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번 결과 발표로 인해 한 달도 남지 않은 서울·부산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여당에 비상등이 켜지게 됐다.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각종 부동산 규제책으로 국민 불편만 가중시킨 정부에서 투기꾼(LH)만 키웠다”며 폭발하고 있는 민심의 불만을 잠재울 만한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 셈이기 때문이다.

‘2·4대책’을 차질 없이 이끌겠다고 공언한 정부로서도 발목이 잡히게 됐다. 신규 택지 후보지는 물론 도심 고밀개발 후보지의 토지소유주들이 “LH의 투기 의혹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정부의 토지 매수 등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어서다.

정부가 ‘2·4 대책’을 통해 공급하기로 한 83만6000채 가운데 거의 대부분은 민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신규 택지도 토지보유자들이 보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7월로 예정된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은 사실상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부인했음에도 ‘변창흠 장관의 책임론’과 ‘사퇴론’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선 주무부처 장관의 책임 있는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변 장관이 ‘LH 옹호성’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것도 이런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게다가 이번 1차 조사 결과 투기 의심이 확인된 20건 중 11건이 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임 중이던 시기에 일어났다. 관리 책임론이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 총리도 “변 장관이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의 걱정과 심경을 잘 아는 만큼 어떤 조치가 필요할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변 장관은 이날 “LH 사장 재직 시절 받은 성과급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분노한 민심을 달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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