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공장 누비는 금발의 여성 공장장 “내 의무는 후배 여직원 롤모델”

뉴스1

입력 2021-03-08 08:17:00 수정 2021-03-08 11: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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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아슈키나 한국필립모리스 양산공장장(한국필립모리스 제공)© 뉴스1

산업 현장에서 여성 공장장은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특히 ‘금녀’의 구역으로 치부되는 국내 담배 공장에서 여성의 모습은 손에 꼽힐 정도로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2018년부터 한국필립모리스 경남 양산공장을 이끄는 우크라이나 출신 이리나 아슈키나 공장장은 이 모든 편견에 균열을 낸 주인공이다. 그는 현재 연간 300억개비가 넘는 담배 생산을 진두지휘하며 700명이 넘는 직원을 이끌고 있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전자담배 아이코스의 전용스틱 히츠(HEETS)는 모두 그의 검수를 거쳐 탄생한다.

지난 2001년부터 우크라이나부터 스위스·루마니아를 포함해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PMI) 그룹에서만 20년 넘는 경력을 쌓은 베테랑에게 한국 사회의 ‘유리천장’은 넘지 못할 과제 중 하나다.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조직의 일원으로서, 한 가정의 아내 또는 엄마로서 한국 커리어우먼이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고민도 풀어가고 있다.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이리나 아슈키나 공장장의 삶과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일은 문밖에 두고”…아시아 유일 ‘히츠’ 생산 공장 리더 이리나 공장장

“남편과 아들은 저에게 가끔 ‘일을 문밖에 두고 가족으로서 집에 들어오라’고 말합니다”

이리나 공장장은 가족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에게 한국은 2013년 루마니아에 이어 두 번째 공장장 커리어를 안겨준 나라다. 2018년 한국필립모리스 양산공장 공장장에 부임한 이후부터 그는 집에 와서도 일을 손 놓지 못하는 날이 부쩍 늘었다.

그는 “그동안 양산공장에 새 건물을 짓고 수백 명에 이르는 직원이 조직에 새로 합류했다”며 “한국에서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의 ‘담배연기 없는 미래’라는 비전을 실현하는 원동력이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담배연기 없는 미래’를 경영 비전으로 삼고, 지난 10여년간 연초 담배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등 비연소 담배로 시장 전환을 위해 집중 투자했다. 그간 아이코스와 히츠 등 비연소 제품군에 투자한 금액은 8조원이 넘는다. 양산공장 건립도 이러한 전략적 투자 결과물 중 하나다.

현재 아시아·태평양 지역 유일의 히츠 생산기지인 양산공장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일본에 히츠를 공급하는 허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연간 말보로를 포함한 일반 담배 200억개비와 히츠 120억개비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자랑한다. 이리나 공장장이 지휘하는 직원 수는 700명이 넘는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가 담배 제조 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지난 2001년 우크라이나 필립모리스에 행정 보조로 사회에 첫발을 뗀 그는 “29살 당시 함께 일했던 기술자와 작업자 100명 중 95%가 40대 남성이었다”며 “여러 회의와 행사에 참여했을 때도 유일한 여성이어서 겁이 났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좋은 팀을 만드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꿈은 변치 않았다. 비흡연자인 그가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담배 회사에서 리더 자리에 오르기까지 숱한 도전에 부딪히면서도 견딘 이유다. 그는 2001년부터 우크라이나와 스위스에서 생산관리와 구매·기획팀을 거치며 현장에서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았다.

특히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에서 경험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였다. 그는 “제조 현장에서 안전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다. 모든 직원을 위해 신속하게 안전조치를 도입했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직원과 동료 모두의 헌신으로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여성 임원 수 뒤처져…후배 여성 직원 롤모델이 의무”

많은 ‘커리어우먼’이 그렇듯 그동안 일과 가정 사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고민도 많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그의 가장 큰 조력자가 됐다고 했다. 그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며 “학교에서 아들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우선순위일 때는 내 일정을 조정하고, 서울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어 집을 떠나 하룻밤을 보내야 할 때는 가족들이 자기 일을 스스로 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바쁜 틈을 쪼개 양산 에덴밸리와 무주·평창에서 가족들과 스키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 장소로는 문화유산을 경험할 수 있는 경주를 꼽았다.

유럽과 중동 시장을 누빈 여성 리더로서 그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 한국의 ‘유리천장’이 가장 크게 와 닿는 차이점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이리나 공장장은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OCE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국가 중 한 곳(2019년 기준)이고, 여성 임원 수는 여전히 다른 국가에 뒤처져 있다”고 꼬집었다.

그가 한국의 후배 여성 직원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기도 하다. 이리나 공장장은 “모든 주니어 직급 여성 직원의 롤 모델이 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그들이)새로운 역할로 승진하거나 성공한 인재를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필립모리스인터내셔널은 꾸준히 성 차별적인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19년엔 비영리재단인 양성평등기업재단으로부터 글로벌 기업 최초로 ‘양성평등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오는 2022년까지는 여성 임원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리나 공장장은 그의 뒤를 이을 여성 리더들을 위해 무엇보다 ‘자신을 신뢰하라’고 조언한다. 가정과 직장에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경력 발전을 도와줄 멘토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한 역량이라고 설명했다.

“겸손함을 잃지 말고 주변을 배려하며 스스로 재능과 능력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충분히 똑똑하지 않고 빠르거나 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여러분의 힘과 가치, 독특한 관점과 의견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래 리더를 꿈꾸는 한국 여성들을 위한 이리나 아슈키나 공장장의 당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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