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중화원은 왜 淸 황제의 사냥을 그렸을까

김상운 기자

입력 2021-02-19 03:00 수정 2021-02-19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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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8폭병풍 ‘호렵도’ 공개
황제-수행원들 정밀한 묘사 압권
작자 모르지만 도화서 그림 추정
“淸 배우려는 북학파 태도 반영”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호렵도 8폭 병풍’ 중 일부. 오른쪽 그림의 파란색 옷을 입은 인물이 건륭제로 추정되는 중국 청나라 황제다. 옷에 하얀 용이 그려져 있다. 문화재청 제공

깊은 산속으로 중국 청나라 황제의 긴 행렬이 지나간다. 황후가 탄 화려한 수레 앞으로 말을 탄 병사들이 거대한 나발을 불며 사슴을 부른다. 활과 화살로 무장한 수행원들 가운데로 하얀 용이 새겨진 가죽옷을 입은 황제가 위풍당당하게 말을 타고 있다. 그 앞으로 활과 창을 겨눈 병사들이 호랑이 한 마리를 뒤쫓는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11월 미국 크리스티 경매시장에서 사들여 18일 공개한 ‘호렵도(胡獵圖·오랑캐가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그림)’ 병풍은 인물 하나하나의 입체감이나 생동감이 그림 전체를 휘감고 있는 걸작이다. 총 8폭의 병풍은 약 1.5m 높이에 길이는 3.9m에 이른다. 병풍 속 그림에는 청 황제가 열하(熱河·지금의 청더)의 피서산장에서 여름을 보낸 뒤 가을에 무란웨이창(木蘭圍場)에서 사냥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8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호렵도는 작자 미상이다. 주변의 산과 나무를 표현한 화법 때문에 한때 김홍도(1745∼1806)의 그림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옷 주름을 부드럽게 그리는 김홍도와 달리 강렬하게 표현돼 있어 정조대 도화서(그림을 주관하는 조선시대 관청)의 궁중 화원이 그린 걸로 추정된다. 임원경제지에는 김홍도가 호렵도를 그렸다고 기록돼 있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실물은 없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호렵도는 여러 점이 전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 환수된 그림이 예술적 완성도에서 압권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림을 감정한 정병모 경주대 교수(미술사)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이 그림은 정조대 청나라의 문물을 배우려는 북학파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적지 않다.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 사대부들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빗대 경멸했다. 더구나 17세기 병자호란을 거치며 이들에 대한 적대감마저 팽배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를 거치며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우뚝 선 청나라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주자성리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청나라 고증학 등을 배우려는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북학파의 움직임도 이때 시작됐다. 북학파를 중용한 정조는 1780년 열하에서 열린 건륭제의 칠순잔치에 연암 박지원(1737∼1805) 등을 축하사절로 보내기도 한다.

비록 호렵도라는 이름에 오랑캐라는 비칭이 등장하지만, 건륭제로 추정되는 청 황제와 수행원들을 정밀하게 묘사한 화가의 시선은 오히려 존경에 가깝다. 정병모 교수는 “호렵도에는 청을 배우고자 하는 북학파의 태도가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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