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회장이 강남 아파트를 사지 않는 이유[최영해의 폴리코노미]

최영해기자

입력 2021-02-12 16:00:00 수정 2021-02-12 1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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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더 오를까?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빌라에 살고 있다. 방배동 빌라에 산지 20년 가까이 되지만 그는 집값에 별 관심이 없다. 오랫동안 살아온 주거 공간으로 집을 투자 대상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작고한 모친이 살던 광주의 집을 물려받아 서류상 2주택자이지만 그는 “시골집을 빼면 집이 1채”라고 했다. 박 회장은 최근 “강남 아파트 값이 폭등했지만 내가 살고 있는 빌라는 크게 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재산이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자산가이지만 그의 재산목록에 아파트나 부동산은 없다는 것이다. 투자회사 대표인 박 회장의 재산은 대부분 주식이다.

박현주 회장은 개인 재산이든 회사 돈이든 이미 지어진 아파트에는 투자하지 않는 것을 투자원칙으로 삼고 있다. 앞으로도 ‘금융회사의 탐욕’을 연상시키는 투자는 일절 하지 않을 방침이다. 동아일보DB


##아파트 투자 않는 미래에셋
박 회장은 최근 회사 유튜브 채널인 ‘스마트머니’에 출연해 “미래에셋은 해외에 빌딩을 많이 샀지만 지어진 집이나 아파트를 갖고 투자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투자 대상에서 아파트나 집은 빠져 있다. 미래에셋은 오피스 빌딩은 샀지만 아파트를 사서 이를 기반으로 펀드를 만들어 팔지는 않았다. ‘금융회사가 너무 탐욕스럽다’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고 한다. 박 회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키는 투자 철학이다. 회사가 나서 투기를 조장하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 청계천변 옆에 위치한 미래에셋 본사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공사 삽을 뜰 무렵 박현주 회장이 직접 부지를 물색해 건물을 올렸다. 미래에셋 센터원 전경. 사진 미래에셋 제공

박 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폭등한 한국 아파트 값을 요즘 걱정 어린 눈으로 보고 있다. 유튜브에서 ‘부동산편’을 따로 찍기로 한 것도 이런 염려를 전달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아이템을 고르고 기획했다. 지난해 가계부채가 100조원이나 늘어났다. 자영업자들이 위기를 겪는 가운데 개인들이 주식을 사고, 집을 산 돈이 너무 늘어난 게 아닐까. 선진국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한국처럼 부동산이 가계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단독 주택이 서울 아파트보다 싸다?
그는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닌다. 코로나라는 역병(疫病)이 돌기 전에는 1년에 절반 가까이 해외에 나가 있던 적도 있다. 출장길에 미국의 주요 도시는 빼놓지 않는다. 워싱턴이나 뉴욕에 빌딩을 사는 등 1년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큰 딜(거래)이 직간접적으로 200~300여개에 달한다. 미래에셋 창업 후 24년 동안 한 해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주주를 위해 일하는 경영인에게 ‘적자는 죄악’이라고 믿고 있다. 돈 버는 재주는 타고 난 모양이다.

“실리콘밸리의 단독 주택이 한국의 아파트보다 훨씬 쌉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의 주택이 강남 아파트 정도 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해안 절벽에 위치한 리츠칼튼 하프문베이. 미래에셋은 미국 최고급 호텔 15곳을 7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가 취소했다. 사진 미래에셋자산운용 제공

바닷가의 풍광 좋은 곳에 위치한 실리콘밸리 아파트는 미국에서도 집값이 높기로 소문난 곳이다. 날씨 좋고, 직장 가깝고, 아이들 교육 환경도 좋은 곳이다. 샐러리맨들에겐 월급 타서 집세 내기에 바쁠 정도다. 서울 강남을 미국의 맨해튼에 비유하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아파트 천지인 강남과는 주거 환경을 비교하기는 어렵다. 박 회장은 “미국은 경치가 좋은 단독주택을 선호하지만 아파트에 대해선 수요가 많지 않다”고 했다. 문화적 차이가 있지만 한국인의 아파트 선호 현상은 남다르다.

##10년 뒤 아파트 값 어떨까?
실리콘밸리 단독 주택과 단순 비교했지만 박 회장의 의문은 10년 뒤 부동산 값이 어느 정도 될까에 쏠려 있다. “10년 뒤 지금의 높은 부동산 값을 누가 받쳐줄까?”라는 것이 ‘퀘스쳔 마크’다. 지금 같은 인구 구조와 자산 구조로는 쉽지 않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젊은 세대들은 자동차도 공유하는 세대입니다. 꼭 내가 큰 집에 살면서 무슨 역할을 할까라는 질문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큰 집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부동산을 살 수 있는 세대 또한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미래에셋 상하이타워가 있는 중국 상해의 즐비한 빌딩 숲. 사진 미래에셋자산운용 제공

실질적인 1인 가구 비중이 절반에 육박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아파트를 큰 평으로 지을 게 아니라 1인 가구에 적합한 15~20평을 대량으로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값이 상승한 과거의 경험 때문에 집값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박 회장 생각은 이미 오를 만큼 올랐다는 판단이다. 더욱이 정부의 세금 정책은 갈수록 부담이 될 것이다. 세금을 간과한 상태에서 부동산을 생각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시장에서 100전 100패였다. 정부 규제책에도 아랑곳 않고 아파트 값은 올랐다.

“미국에선 Fed(연준)에 저항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국에선 ‘정부에 저항하지 말라’로 통합니다.” 한국에서도 ‘관군(官軍)에 맞서지 말라’는 유명한 말이 회자(膾炙) 된다. 부동산 보유세가 연 2%일 경우 10년이면 20%, 복리(複利)로 따지면 25% 가량 되기 때문에 부동산 투자에서 세금을 간과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홍콩에서 가장 비싼 건물인 더센터 빌딩.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미래에셋대우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에 참여했다. 동아일보DB

##강남 아파트 불패(不敗)?
박 회장은 강남 아파트를 콕 짚어 얘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보면 고공 행진하는 강남 아파트 값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 녹아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를 사놓고 더 올라가는지, 안 올라가는지를 놓고 지금 고민하는 형국입니다. 정부의 부동산 조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아주 강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직 (현실을) 못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동산 불패라는) 과거의 경험 때문이 아닐까요? 겁이 나는 것은 지금의 부동산 부자가 앞으로 부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리스크가 어느 때보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대통령은 “강남 부동산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라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강남 집값은 고공 행진했다. ‘대통령 불패’ 얘기를 듣고 기다리던 사람들은 ‘대통령 참패(慘敗)’를 목격해야 했다. 이런 학습 효과 때문일까?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인수한 하와이 소재 ‘페어몬트 오키드 하와이’ 전경. 사진 미래에셋자산운용 제공

박 회장은 “지금은 자산배분을 하기 좋은 시기”라면서도 “개인 의견이니까 참고만 하면 될 것 같다”고 선을 그었다. 투자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고 못 박은 것이다. 다만 세금인하 가능성이 별로 없고 저금리 영향이 부동산시장에 이미 반영된 상황이므로 너무 낙관적으로 보지 말 것을 경고했다. 강남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쯤 현금을 챙겨야 하는 것일까?

##‘네 돈으로 월세 살아라’
박 회장의 집에 대한 메시지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또 있었다.

“주변을 보면 자식들이 결혼할 때 부모들의 스트레스가 꽤 심한 것 같습니다. 전세는 부모가 얻어 줘야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자신들의 노후를 불안하게 만들면서 너무 (자식에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식에게 ‘네가 월세 내고 살아라’라고 하면 됩니다. 외국에선 자녀가 대학에 가면 학생 대출(student loan) 받는 게 당연하게 돼 있잖습니까?”

2006년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는 박현주 회장. 그 때나 지금이나 그의 집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빌라이다. 동아일보DB

대학만 들어가면 집에서 쫓아내는(또는 도망가는)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인 차이는 있다.

집을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 간의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투자의 귀재가 바라보는 아파트 값의 미래는 그리 밝아보이진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최 기자, 강남 아파트 한 채가 20억 원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혀를 찼다. 그러면서 사회의 위화감을 조성하는 아파트 값은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 아파트가 이제 3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박 회장에게 “은퇴한 강남 거주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글쎄요, 나 같으면 지금 팔아 현금을 챙기고 수도권 외곽으로 옮겨 노후를 세금 걱정 없이 보낼 것 같은데…”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박 회장이 이번에도 통할까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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