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머니’ 계란 한판에 1만원

김하경 기자 , 사지원 기자

입력 2021-02-09 03:00 수정 2021-02-09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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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 살처분에 생산량 급감
30알 한판 도매가 2개월새 56%↑… ‘에그플레이션’ 신조어까지 생겨
수입 통한 가격 안정효과는 미미




8일 오전 서울 중구 대형마트 계란 코너. ‘1인 1판 한정 판매’란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도 이미 30개에 7180원인 계란은 모두 동나고 없었다. 주모 씨(56)는 “4인 가족이라 일주일이면 30개짜리 한 판을 먹는데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된다”며 “값이 싼 걸 사려고 해도 저렴한 계란은 금방 다 팔린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남대문 시장 식료품 가게에서 파는 계란은 한 판에 8000∼9000원 정도다. 한 상인은 “하루 80여 판 들여오는데 명절에 전 부치려고들 많이 찾아 금방 팔린다”며 “더 팔고 싶어도 추가 주문이 어렵다”고 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계란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일부 소매점에선 한 판에 1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계란 가격이 2017년 살충제 달걀로 인한 ‘계란 파동’ 때 수준으로 치솟으며 서민 중산층이 체감하는 물가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8일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왕란(68g 이상) 기준 계란 30개짜리 한 판의 도매가는 6233원이었다. 한 달 전보다는 1396원(28.9%) 올랐고, 두 달 전보다는 2234원(56.0%) 뛴 수치다. 일부 판매처에서 계란 소매가가 1만 원을 넘기자 ‘에그플레이션(egg+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쿠팡에서는 한 판 8000원대부터 시작해 오후면 1만 원대 계란까지 모두 품절된다. 퇴근길 마트 앱으로 장을 보는 직장인 김모 씨(37)는 “결제까지 해둬도 7000원대 미만은 ‘품절’이라고 번번이 자동 취소돼 계란을 못 사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계란 가격 급등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으로 인한 산란계 살처분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이후 총 1339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업계에선 하루 800만 개의 공급이 줄었을 것으로 추산한다. 경기도에서 닭 10만 마리를 기르며 하루 8만 개가량의 달걀을 생산하는 이모 씨(59)는 “같은 조합에 소속된 10개 농가 중 3개 농가가 살처분으로 달걀을 생산하지 못해 평소 납품 양의 60%밖에 물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밥 수요 자체가 늘어난 데다 설 연휴로 인해 소비량이 늘면서 수급 불안정은 더 심해지고 있다. 살처분으로 거래처를 잃은 유통업체들은 웃돈을 얹어 계란 확보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한 도매상은 “일부 소매상들이 개당 가격을 20∼30원씩 더 쳐주고 물건을 직접 떼어가면서 도매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계란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정부는 비축물량 180만 개를 풀었고 이달 말까지 4400만 개를 수입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가격 안정 효과를 내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수량 자체도 월평균 국내 계란 소비량의 6%에 불과한 데다 외국산 선호도도 높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미리 공급 물량을 확보하고 수입 물량이 풀리는 일정을 공개해서 가격 인하를 유도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책에 미흡했다”고 말했다.

통계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넉 달째 0%대인 데 반해 계란 가격 등 실제 서민물가 체감 격차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식료품 물가의 전반적 상승세 가운데 가공식품 등으로의 도미노 인상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사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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